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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로 간 ILO 협약…정부 '폭탄 돌리기' 꼼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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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로 간 ILO 협약…정부 '폭탄 돌리기' 꼼수일까

    국회서 비준동의·법 개정 다룰 ILO 협약, 노사 모두 '개악' 우려
    보수야당 반대 속 협약 논의 장기화될 듯…최종 승자는 협약 부담 비껴간 정부?

     

    정부가 ILO(국제노동기구) 핵심 협약 비준을 직접 추진하겠다고 나섰지만, 노사간 입장이 엇갈리고 있어 결론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국회 통과도 쉽지 않은데다 정부의 협약 비준 의지도 불확실해 애초 취지대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도록 협약을 비준할 수 있을지 우려되고 있다.

    ◇정부, ILO 협약 비준-입법 동시추진 밝혔지만…노사 입장 대립 여전

    정부는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 법 개정을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지난 22일 밝혔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지난해 7월부터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 여건을 조정했지만, 끝내 지난 20일 노사정 대화가 결렬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경영계는 한마디로 '입법 없이 비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 입법안의 토대가 될 경사노위 공익위원안도 노동편향적이라며 경영권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경영계는 △파업시 대체근로 인정 △부당노동행위제도 형사처벌 폐지 등 경사노위 공익위원조차 "지나친 면이 있다"고 비판한 요구사항을 계속 제시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국회 동의 즉시 우선 비준하고, 협약이 발효되기까지 1년 동안 ILO 자문을 받아 국내법을 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법 개정 과정에서 협약 비준을 명분으로 오히려 노동자 권리를 제약하도록 법이 '개악'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류미경 국제국장은 정부가 내놓을 협약 관련 법 개정안의 기초가 될 경사노위 공익위원 권고안에 대해 "이미 단협 유효기간을 연장하거나 사업장 내 쟁의행위를 제한할 길을 터주는 등 노동기본권을 위축시키는 개악 요소를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류 국장은 "따라서 권고안 내용도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의 기존 발표에 따르면 이미 결사의 자유 협약을 위반했다고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며 "여기에 정부가 각계 각층의 의견을 듣고, 국회가 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보수야당의 입김을 받아 더 개악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정부가 협약을 비준한다면서 동시에 법을 개악한다면 국제사회의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협약 비준이 권리 보장 수준을 후퇴시켜서는 안되고, 국내법이 협약에 보장된 권리를 침해하는 방식으로 적용되면 안된다고 ILO 헌장과 협약에 명시됐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ILO 헌장 19조 8항은 "어떠한 경우에도 협약 비준이 노동자에게 유리한 조건을 보장하는 법률이나 관습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87호 협약 8조는 "국내법은 협약에 규정된 보장사항을 저해하거나 저해할 목적으로 적용돼선 안 된다"고 각각 명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협약 관련 법 개정 장기화 전망…'동시추진'은 국회에 책임 떠넘긴 정부 꼼수였나

    이처럼 노사 의견이 접점을 찾지 못하다 보니 자연스레 국회 사정도 녹록치 않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노조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불식되는 전기가 마련될 수 있길 기대한다"며 "국회는 마땅히 이 문제를 논의하고 비준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국회로 보내면 뭐든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국회를 정권의 '커피 자판기'쯤으로 여기는 행태"라며 강경 입장을 내비쳤다.

    바른미래당 이종철 대변인 역시 "민주노총, 전교조 등의 '촛불 영수증'에 떠밀려 무리하는 것"이라고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일단 정부는 가을 정기국회에 제출해 안건을 제출해 올해 안에 통과시키겠다지만, 보수 야당이 상임위 차원에서 법 개정을 막아세우면 총선을 앞둔 내년에는 관련 논의가 흐지부지될 수 있다.

    게다가 이미 탄력적 근로시간제 개편과 최저임금 결정체계 문제로도 벅찬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ILO 협약 비준 문제는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

    더 큰 문제는 협약 비준을 추진하겠다고 나선 정부부터 강한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애초 ILO 협약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만만치 않으리라고 뻔히 예상됐기 때문에 노동계는 이러한 갈등을 방지하도록 협약 비준을 우선 추진하는 '선비준 후입법' 방식을 요구해왔다.

    실제로 정부가 노동계 요구와 유사하게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시한 데 대해 양대노총도 "진일보한 결정"이라며 환영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동부 이재갑 장관은 "선비준은 우리나라 헌법체계상 사실상 어렵다"며 "선비준 후입법이 아닌 동시추진"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실제로 비준동의안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법 개정안은 환노위에서 각각 검토하게 되는데, 동시에 본회의에 상정하려면 우선 환노위가 법 검토를 마친 뒤 협약을 비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내용상으로는 '선입법 후비준'이나 다름없다.

    결국 정부의 선택은 앞장 서서 국회를 설득해 협약 비준의 동의를 받아내는 대신, 경사노위에서 벌였던 논란을 고스란히 국회로 떠넘기는 '폭탄 돌리기'인 셈이다.

    협약 비준을 앞두고 노사 양측의 압력을 국회로 떠넘길 수 있는데다, 만약 협약 비준이 늦어져도 '국회 탓'을 할 수 있고, 비준에 성공하면 정부가 안건을 제출해 협약 비준을 이끌었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는 '꽃놀이패'이기도 하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김형동 부원장은 "애초 지금은 '입법' 얘기가 들어갈 단계가 아니었다고 본다"며 "국회 동의 여부가 중요할 뿐, 어차피 법 개정은 조약 비준 후 사후에 진행하면 되는데 이제는 법 개정 여부가 '비준 반대론자'의 명분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부원장은 "내년 국회에서 노동기본권 협약은 후순위 중의 후순위로 밀릴 것이 명백하다"며 "정부가 할 도리는 (동시추진으로) 다 했다고 얘기하는 것은 전문가 뿐 아니라 시민들이 봐도 얕은 꼼수"라고 비판했다.

    류 국장은 "지금 정부는 이번 동시추진 결정으로 EU(유럽연합)와의 분쟁을 무마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하지만 정부가 관련 안건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해서 '노력을 다했다'고 해석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EU가 분쟁을 제기하면서 보낸 서한을 보면 협약 비준 외에도 결사의자유 등 4대 기본 원칙과 권리를 법과 제도에서 실현하고 촉진하라는 의무를 한국이 어기고 있다고 지적했다"며 "경사노위 공익위원안이나 여당의 관련 발의안에는 이러한 원칙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에 '협약상 의무를 다했다'는 해석을 받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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