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식 저축은행중앙회장(사진=저축은행중앙회 제공)
올해초 취임한 박재식 저축은행중앙회장이 예금보험료 인하를 추진하고 있으나 저축은행 예금자보호를 위해 미리 쌓아둬야 하는 기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무리한 요구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경제관료 출신인 박 회장은 지난 1월 21일 모두 7명의 후보가 나선 가운데 2차 투표까지 치른 끝에 회장에 당선된 뒤 저축은행 업계에 대한 규제 완화에 주력하겠다면서 '규제완화 대상 1호는 예금보험료 인하'라는 입장을 밝혔다.
예금보험은 예금보험공사가 예금을 취급하는 금융회사로부터 일정 요율의 보험료를 받아서 기금을 적립해뒀다가 해당 금융회사가 부실해져 문을 닫게 되면서 예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예금자 한 명당 5천만원까지 보전해주는 예금자보호제도다.
이 예금보험의 요율은 은행과 증권, 보험, 저축은행 등 업권별로 건전성이나 위험요인 등을 따져 차등 적용되고 있다.
저축은행업계는 예금 잔액의 0.4%로 은행업 0.08%, 금융투자업(투자매매업자・투자중개업자)과 보험업, 종합금융업의 0.15% 등에 비해 높은 요율을 적용받고 있다.
이에 대해 저축은행중앙회 측은 2011년 2월 7개 저축은행에 줄줄이 영업정지 조치가 내려졌던 이른바 '저축은행사태' 당시에 비해 업계 전반의 건전성이 크게 개선돼 부실 위험도 줄었다면서 보험요율을 인하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실제 79개 저축은행들은 지난해말 기준으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이 평균 14.33%로 2011년 6월의 0.84%나 저축은행 사태 이전의 8~9% 보다도 높아졌고, 지난해 전체 당기 순이익을 1조 1086억원 낸 것으로 저축은행중앙회가 공시하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회원사들이 원하는 보험요율은 신협과 같은 상호금융권에 부여되는 0.2% 수준"이라고 말했다.
결국 예금보험료를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깎아주기를 원한다는 것이지만 예금보험공사나 금융당국은 저축은행 업계가 이런 인하요구를 할 상황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예보는 예금자보호법에 의해 예금보험기금을 금융권역별로 계정을 두고 따로 적립하고 있다.
그런데 은행과 금융투자, 보험 등 타 금융업권의 계정과는 달리 저축은행의 이 기금 계정엔 현재 쌓인 돈이 없다.
(자료=예금보험공사 홈페이지, 2018년말 기준 통계)
예보의 경영공시를 보면 지난해말 현재 각 업권별 예보기금 적립현황은 ▲은행 8조 9008억 5천만원 ▲금투(투자매매업 및 투자중개업) 3295억 3백만원 ▲생명보험 4조 8604억 3천 2백만 원 ▲손해보험 1조 3286억 7천 7백만원 ▲종합금융(1개사) 306억 6천 3백만원인데 비해 저축은행은 마이너스 1조 7196억 1천 2백만원이다.(예보 홈페이지→경영공시→경영일반→자체공시→요약재무현황-예금보험기금 및 공사회계 통합(재무상태표) 중 '자본총계')
지난해말까지 저축은행 사고에 따라 지급된 예금보험금 규모가 받은 보험료 규모를 1조 7천억원 이상 웃돌았다는 의미다.
더구나 다른 권역의 금융회사들이 부실 저축은행 정리에 드는 비용 충당을 위해 분담금을 내고 있기 때문에 저축은행의 보험요율 인하요구에 타 금융업권이 동의하기도 어렵다.
예금보험기금은 예금자보호법 개정을 통해 2003년부터 공적자금 상환기금과 분리돼 새롭게 적립하게 됐으나 이 해부터 2009년까지 해마다 저축은행의 사고가 잇따르면서 저축은행 계정의 지출이 수입을 초과해 적자가 누적돼 2008년엔 적자폭이 2조원을 넘겼다.
여기에 2011년 '저축은행 사태'까지 겹치자 우여곡절을 거쳐 2011년엔 법 개정을 통해 저축은행 부실을 정리하고 건전화를 돕는 목적으로만 쓰는 '저축은행 구조조정 특별계정'이 설치됐다.
이 계정에는 2026년까지 한시적으로 저축은행권이 내는 보험료 100%와 은행이나 증권, 보험사 등 다른 금융업권에서 내는 보험료의 45%가 들어간다.
국민의 혈세인 공적 자금 투입을 피하기 위해 금융업권이 부실 저축은행 정리에 드는 비용을 함께 분담하는 구조다.
그러나 이 특별계정 역시 지난해말 현재 마이너스 11조 2321억 7천 8백만원으로 대규모 누적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적자의 이유는 2011년 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31개 저축은행에 27조 1718억원이 지원됐지만 회수된 자금은 지난해말 현재 12조 1620억원에 그친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예보측이나 금융당국 관계자들이 저축은행중앙회측의 보험료율 인하 주장에 고개를 내젔는 것이다.
예보 관계자는 "저축은행중앙회나 업계로부터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요율 인하 요청이 접수된 바는 아직 없다"면서 "저축은행 특별계정의 대규모 적자도 메워야하는 실정에서 저축은행들의 예보요율을 인하한다면 다른 업권으로 부담이 전가되기 때문에 그런 요청을 해오더라도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예금보험료는 예보가 금융회사들의 부실에 대비해 미리 받아두는 돈"이라며 "이런 돈이 전혀 쌓여 있지 못한 실정에서 요율 인하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예보를 관리 감독하는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의 관계자도 "예금보험료 인하를 일부 업계에서 요구한다지만 금융업계 전체가 재무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라 검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 업계만 요율을 인하한다면 다른 업계도 인하 요구를 하지 않겠느냐"며 "그래서 전체 요율을 내리게 된다면 결국 국민의 부담이 커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박재식 회장이 "이 문제는 서둘러서 될 일은 아니라고 했다"면서 당장은 연구용역 발주 등 예보요율 인하를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기 보다는 중장기 과제로 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