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포용성장'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 중 하나다. 이에 발맞춰 올해부터 아동수당, 돌봄교실이 큰 폭으로 확대되며 '사회 복지'가 중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복지는 삶의 질 향상과 직간접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므로, 우리나라의 현 사회복지가 어떤 상황인지 객관적으로 진단할 필요가 있다. CBS노컷뉴스는 한국사회복지사협회와 함께 우리 사회복지의 실태를 점검하고, 바람직한 여론 형성을 통해 정책 의제를 설정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칼럼을 연재한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우리나라 노인빈곤의 심각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OECD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빈곤율은 2006년에 43.9%로 이 때 이미 OECD 국가들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는데 그로부터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2017년에도 43.8%로 2006년과 비교하여 거의 변화가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일반적으로 빈곤은 경제적 자원으로 측정하지만 실제로 빈곤은 삶의 여러 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노인빈곤이 심각한 탓인지 우리나라 노인자살률도 매우 높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노인자살률은 10만명당 29.0명이었는데 이것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39.8명으로 증가하였다가 그 후에도 계속 증가하여 2010년에 81.9명으로 최고조에 달했고 그 후 조금씩 감소하여 2017년에는 47.7명까지 내려왔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사진=연합뉴스)
우리나라 노인빈곤이 이처럼 심각하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지금의 노인들은 그들이 어린 시절에는 풍족한 삶을 살지 못하였지만 경제활동을 시작했을 때에는 우리나라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였고 또 그런 빠른 경제성장은 지금의 노인들이 보여준 성실한 노력에 힘입은 것이었다.
사실 현 노인세대들은 부자는 아니더라도 적정한 노후생활을 보장받을 충분한 자격을 가진 세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노인세대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노인은 가난한데, 그 이유 중 하나로는 우리나라 공적연금의 미성숙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는 당초 1973년에 국민복지연금법이라 하여 일반 국민 대상의 공적연금을 최초로 입법한 적이 있지만 그 이듬해 발발한 석유위기로 시행하지 못하였고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1986년에 국민연금법을 제정하여 이를 1988년부터 시행하였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서구 국가들과 비교하면 50년 내지 100년 가까이 뒤쳐진 것이다. 이처럼 일반 국민 대상의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의 시행이 늦다보니 현재 국민연금으로부터 연금급여를 받는 노인은 전체 노인의 1/3 정도에 불과하다.
국민연금공단 자료에 의하면 2019년 1월 현재 노령연금을 받는 수급자 372만 6천명 가운데 중 65세 이상 수급자는 269만 1천명으로 이는 65세 이상 노인인구 768만명의 35.0%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런데 이처럼 뒤늦게 시작한 국민연금도 시행 후 두 차례에 걸쳐 급여수준을 대폭 삭감하는 개편을 하였다.
즉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1988년 시행 후 1998년과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개편했는데 이 두 번의 개편 모두에서 이른 바 ‘재정안정론’에 근거하여 연금급여를 삭감하는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당초 국민연금의 노령연금급여의 소득대체율은 40년 가입기준으로 70%였는데 1998년에 이를 60%로 삭감하였으며 2007년에는 이를 다시 50%로 삭감하였고 2009년부터는 매년 0.5% 포인트씩 내려 2028년에 40%가 되도록 하였다.
하지만 재정안정론에 기초한 이러한 연금개편이 실제로 재정안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는지는 의심스럽다.
재정안정론은 국민연금의 재정적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재정불안감을 부추겨왔고 또 사실상 재정안정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닌 기금소진을 강조하여 제도불신마저 초래하였다.
재정안정론자들은 항상 국민연금 기여금의 인상을 주장하고 기여금 인상은 필요하지만, 기금소진이나 재정불안을 막기 위한 것이라는 ‘공포마케팅’에 의존해서는 기여금 인상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기여금 인상은 국민연금이 노후보장의 든든한 울타리가 될 수 있다는 신뢰감에서 가능하다. 이런 신뢰는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국민연금법은 제1차 개편 때인 1998년에 법을 개정하여 매5년마다 장기재정계산을 하도록 하였고 그에 따라 2003년에 제1차 재정계산을 실시했으며 2008년 제2차 재정계산, 2013년 제3차 재정계산에 이어 작년에 제4차 재정계산이 실시되었고 8월에 그 결과가 발표되었다. 제4차 재정계산결과가 발표되자 언론은 예년처럼 기금소진시점에 주목하여 보험료 인상 및 급여 인하에 초점을 맞춘 보도를 쏟아냈는데 이는 우리 사회가 그만큼 재정안정론적 시각에 물들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재정계산결과를 둘러싼 논의에는 예년과 조금 차이나는 점도 있다.
첫째, 대부분의 언론이 재정안정론적 시각에 입각한 좁은 시야를 가지고 재정계산결과 및 그에 따른 연금개편에 대해 보도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재정안정론의 지배적 지위가 예년에 비해 다소 약해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둘째, 연금개편에 관한 사회적 대화를 위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노사정위원회의 후신)에 연금특위를 설치하여 여기서 연금개편안을 논의키로 했다는 점이다.
셋째, 재정계산결과에 의거하여 정부가 제시한 연금개편안에 보장성강화론에 입각한 대안이 명시적으로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이 셋째의 점은 이 글의 주제인 노인빈곤해소와 관련해서도 중요할 뿐만 아니라 공적연금의 발전과 관련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정부가 내놓은 연금개편안은 제4차 국민연금종합운용계획안으로 발표되었는데 여기에는 모두 네 가지 안이 담겨 있다.
그것은 ① 현행유지안(국민연금급여 40%), ② 기초연금강화안(국민연금급여 40%+기초연금 40만원), ③ 노후소득보장 강화안1(국민연금급여 45%), ④ 노후소득보장 강화안2(국민연금급여 50%)이다.
여기서 현행유지안은 지난 2007년 제2차 연금개편 때 정해진 연금급여삭감계획에 따라 2028년까지 연금급여수준을 40%까지 떨어뜨리는 방안을 그대로 시행하자는 것으로 한마디로 제2차 연금개편안을 그대로 시행하자는 안이다.
기초연금강화안은 국민연금급여는 현행유지안대로 하되 기초연금만 40만원으로 인상하자는 안이다. 노후소득보장강화안1은 제2차 연금개편 때 매년 0.5%포인트씩 삭감키로 한 연금급여수준을 2018년의 소득대체율(즉, 45%) 수준까지만 떨어뜨린 후 더 이상 삭감하지 말자는 안이며, 노후소득보장강화안2는 연금급여의 소득대체율을 제2차 연금개편 때 삭감된 2008년 소득대체율(즉, 50%) 수준까지 끌어올리자는 안이다.
그리고 국민연금 기여와 관련해서는 위 네 가지 안 중 현행유지안과 기초연금강화안은 현행 9%를 그대로 유지하자는 안을 가진 것이며 뒤의 두 안 중 노후소득보장강화안1은 매5년마다 국민연금기여율을 1%포인트씩 인상하여 2031년까지 12%로 올리자는 안이며 노후소득보장강화안2는 기여율을 매5년마다 1%포인트씩 인상하여 2036년까지 13%로 올리자는 안이다.
네 가지 안이 연금개편의 전부는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다양한 경로로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내놓은 안인만큼 우리사회에서 논의해볼 수 있는 대안의 범위를 설정했다는 의의도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단일한 개편안을 내놓지 못하고 마치 사지선다형으로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했다는 비판을 하고 있는데 이런 비판은 정부가 연금개편안을 발표하기 전에 먼저 경사노위의 연금특위에서 연금개편에 관한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한 무책임한 비판이다.
만일 정부가 연금특위에서의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면서도 연금개편안을 단일안으로 내놓았다면 아마 그들은 정부가 연금특위를 무시한 안을 냈다고 비판했을 것이다.
또 일부 재정안정론자들은 정부의 연금개편안이 재정안정대책을 결여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는데 이 역시 비현실적인 비판이다.
그들은 연금의 재정안정을 위해서는 당장이라도 연금기여율을 16% 이상으로까지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현세대가 책임을 이행하지 않는 것이며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육과 의료, 주택을 위해 사적으로 비용을 너무나 많이 부담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연금기여율을 16%까지 올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설사 연금기여율을 올릴 필요가 있다 해도 그것은 기금소진이나 재정불안을 강조하는 것으로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연금이 노후보장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때 달성될 수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에 대한 재정안정론적 접근과는 약간 다른 접근으로 최근에는 기초연금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이 주장은 연금개편안에서도 기초연금강화안으로 반영되어 있다.
기초연금강화론자들은 노동시장의 변화로 사회보험방식의 국민연금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어렵고 또 국민연금이 오히려 역진적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초연금을 강화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기초연금강화론은 일면 타당한 점이 없지는 않지만 국민연금이 역진적이라는 주장은 과도한 주장이다. 기초연금강화론자들 중 일부는 저임금노동자들이 가입기간이 짧거나 수명이 짧아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다고 주장하는데 가입기간이 짧거나 수명이 짧은 문제는 엄밀히 말해 국민연금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노동시장의 문제 혹은 불평등의 문제이다.
국민연금이 노동시장의 문제나 불평등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적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문제들의 원인을 국민연금에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기초연금강화론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기초연금을 강화한다고 해서 그것이 노인빈곤문제를 해소하는 데 크게 기여하지는 못한다는 데에 있다. 예컨대, 2019년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수급자 선정기준은 1인 가구의 경우 월 51만 2천원인데 현재 소득하위 20%의 노인들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액은 30만원이며 위에서 본 기초연금강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기초연금급여액은 40만원이다.
이 금액들은 모두 기준중위소득의 30%인 51만 2천원보다 작은 액수이다. 이는 기초연금의 인상만으로는 노인빈곤의 해소가 어려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자료로는 작년 9월에 정부가 발표한 포용국가 비전 자료를 들 수 있다. 이에 따르면 기초연금을 30만원으로 인상할 경우 노인빈곤율은 42.7%로 떨어지고 40만원으로 인상할 경우 38.5%로 떨어지는 것으로 추정된 바 있어 생각만큼 노인빈곤율이 하락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그렇다고 기초연금이 갖는 사각지대 해소의 효과와 노인들의 소득수준을 전반적으로 향상시키는 기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어느 하나만을 강조하기보다는 둘 다 강화하여 서로 조화를 이루게끔 하는 것이다. 즉, 기초연금은 보편적 연금으로서 노후의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국민연금은 소득비례연금으로서 퇴직 전의 소득수준을 보장해주는 소득유지의 역할을 적절히 수행하게 함으로써 노인빈곤의 해소와 더불어 경제활동기의 생활수준을 유지하게 하는 노후보장체제를 갖추어나가야 할 것이다.
글 싣는 순서 |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릴레이 칼럼 ① 절망적 아동복지예산 ② 포용국가와 사회복지 ③ 사회복지사 임금과 전문성 ④ 장애인의 날,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⑤ 노동절 특집, 인권 문제 단상 ⑥ 노인 빈곤율과 저출산 문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