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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희와 녹양'은 돌고 돌아 다다른 제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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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희와 녹양'은 돌고 돌아 다다른 제목이었다

    [노컷 인터뷰] '보희와 녹양' 안주영 감독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압구정의 한 카페에서 영화 '보희와 녹양'의 안주영 감독을 만났다. (사진=KT&G 상상마당 측 촬영)

     

    ※ 이 기사에는 영화 '보희와 녹양'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영화관에 자주 들락거리면서 자연스럽게 '영화'란 매체에 익숙해졌다. 대학에서도 다른 걸 전공하다가 KAFA(한국영화아카데미)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지난달 29일 개봉한 '보희와 녹양'은 KAFA의 장편과정 11기로 제작된 작품이다.

    '보희와 녹양'은 소심하고 여린 소년 보희(안지호)가 대범하고 당찬 소녀 녹양(김주아 분)과 아빠를 찾으러 다니는 소동을 그린 이야기다. '아이들은 모르는 어른들의 세계'와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들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맑고 싱그러운 영화다.

    안 감독이 평소 성장드라마를 좋아하고 아이들을 주제로 한 로드 무비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보희와 녹양'은 원래 단편이었다. 단편이 주인공 보희에게 더 집중했다면, 장편으로 발전하면서는 이야기도 길어지고 등장인물도 더해졌다고.

    영화 개봉 사흘째였던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압구정의 한 카페에서 안주영 감독을 만났다. 그는 영화를 본 지인에게서 들은 가장 기분 좋은 말로 "애들이 귀엽다"를 꼽았다. 이날 안 감독에게서 들은 '보희와 녹양'을 둘러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옮긴다.

    다음은 일문일답.

    ▶ 영화가 5월 29일에 개봉했다. 영화를 본 주변인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면.

    애들이 귀엽다! 저는 그 말이 제일 좋다. 배우 좋다는 이야기 듣는 게 제일 좋다.

    ▶ '보희와 녹양'으로 처음 장편영화에 도전했다. 이 작품의 출발점이 어디였는지 궁금하다.

    원래 단편으로 써놨던 거를 바꿔서 한 거라서, 시작한 지는 7~8년 정도 됐다. 7~8년. 일단은 캐릭터도 많아지고 이야기가 더 커졌다. 아카데미 되고 나서도 좀 많이 고쳤다.

    ▶ 단편부터 장편으로 발전하기까지 유지된 대명제가 있는지.

    보희가 아프다는 설정을 계속 가져갔다. 아빠를 찾으러 다닌다는 것도. 주변인물은 훨씬 더 많아졌다. 성욱(서현우 분)도, 녹양(김주아 분)도 새로 생겼다. 보희에 집중한 작품이었다.

    ▶ '보희와 녹양'을 장편으로 바꾸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여기서 장편을 쓰긴 써야 되는데… (웃음) 인제 처음부터 거대한 틀을 만들기는 힘드니까 이걸('보희와 녹양'을) 바꿔볼까 생각했던 것 같다.

    '보희와 녹양'에서 각각 보희 역을 맡은 배우 안지호(오른쪽)와 녹양 역을 맡은 배우 김주아 (사진=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진흥위원회, KT&G 상상마당제공)

     

    ▶ '보희와 녹양'이라는 제목은 처음부터 유지된 것인가.

    바뀌지 않았던 것 중 하나가 여름 배경이었다. 그래서 날씨 관련한 제목이었다가 (웃음) 아빠 찾는 것에 대한 제목이었다가… '보희와 녹양'이라고 하면, 영화를 보지 않고서는 아무도 안 올 것 같았다. 근데 영화 다 찍고 완성하고 나니까 이 제목밖에 없더라. 원래 영제(A BOY AND SUNGREEN)도 이거였다. 처음에는 제목이 너무 어렵다는 반응도 있었는데, 다 완성하고 나니까 이것밖에 없더라.

    ▶ 두 주인공의 이름도 인상적이었다. 흔치 않고. 어떻게 짓게 됐나.

    영어로 '소년'(BOY)이란 의미와, 보통 여자친구들에게 많이 쓰는 이름으로 해서 보희가 나왔다. 녹양은 '선그린'(SUNGREEN)에서 가져왔고.

    ▶ 동갑내기 소년 소녀인 보희와 녹양의 이야기다. 언론 시사회 때도 실제 그 나이대의 배우들과 작업해 보고 싶다고 했는데, 배우들과 함께하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애들이다 보니까, 그냥 평범한 거 물어본 것 같다.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가족관계는 어떤지. 그 대답에 따라서 꼬리를 물고 계속 좀 더 들어가는 식으로 했다.

    ▶ 그때 나눈 대화가 보희, 녹양 캐릭터를 잡는 데 도움이 됐나.

    완벽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는 없다. (배우들이) 아직 경험이 많지 않으니까, 본인이 그런 상황이거나 그런 걸 가지고 있으면 이해하는 데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알고 있다고 해서 연기가 될까 여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알고 있는 거랑 표현하는 거는 완전히 다른 문제니까.

    ▶ 보희와 녹양의 캐릭터를 만들면서 가장 중점에 두었던 부분은.

    어쨌든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되길 바랐다. 한쪽이 잘하면 (다른 쪽이) 잘못하는 게 있는, 그게 제일 중요했던 것 같다. 지금은 녹양이가 뭐든지 잘할 수 있는 것처럼 나오지만 사실 녹양이도 보희의 다른 면이 필요하다. 보희도 마찬가지고. 보희는 어쨌든 녹양이가 없었으면 아예 아빠를 찾으러 갈 동력이 없었으니까.

    ▶ 장편이 되면서 새로운 캐릭터가 많이 생겼다고 했는데, 다른 캐릭터가 탄생한 배경도 듣고 싶다.

    일단은 뭐, (녹양의) 할머니부터 (보희의) 엄마(신동미 분)까지 여자 캐릭터들을 자기 말을 할 수 있게 했다. 보희 누나도 그렇고. 그리고 성욱(서현우 분)은 녹양이랑 비슷하지만 성별이 다른 어른 같은 느낌으로 잡았다. 아빠 역은 캐릭터가 주는 느낌보다는, 아빠의 존재가 보희한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까를 더 생각했다. 그게 이제 보희가 아빠를 알게 됐을 때 아빠에 대해서 좋다, 싫다 이런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는 느낌이 아니라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 이런 캐릭터이길 바랐다. 그 캐릭터(아빠)가 보희한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되게 많이 했던 것 같다.

    '보희와 녹양'에 나오는 어른들은 생각보다 따뜻하고 속이 깊으며 아이들을 위한다. (사진=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진흥위원회 제공)

     

    ▶ 아이들이 만나는 어른들이 위험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 성욱이 나왔을 때 혹시 보희에게 못되게 굴지 않을까 걱정했다.

    다들 그러신다. (웃음) '배심원들' 보시고 바로 이 영화 보신 분들은 등장하자마자 너무 무서웠다고도 했다. 그러니까,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 제일 맞는 말 같다. (위험한 상황을) 보여줄 수는 있는데, 이 인물이 살아 움직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찍었다. 어차피 (무서운 어른들이) 현실에 만연해 있는데, 그런 과정(아빠 찾는 과정)을 그렇게 힘들게 하고 싶진 않았다.

    ▶ 보희와 녹양은 중학생이다. 교실 풍경은 어떻게 담아내려고 했나.

    근데 교실은 크게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시대가 바뀌어도. 애들이 교실 안에서 노는 모습은 크게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제가 더 보여주고 싶었던 건, 그 아이들 사이에서 둘만 어떻게 따로 노는지였다. 중간에 춤추는 아이들이 나오는데, 얘들은 그걸 바라보지 않나. 항상 주변에 있고, 둘이 같이 있는 느낌을 가져가고 싶었다.

    ▶ 보희와 녹양 사이를 못마땅해하고 괴롭히는 승현(김현빈 분)은 왜 등장한 건지 궁금하다.

    너무 스테레오타입처럼 보일 순 있는데, 전 애들이 다 착하다고는 생각 안 한다. (승현은) 악인까진 아니지만 타고난 성격이 조금 전투적이어서 부딪힐 수 있는 아이다. 교실도 하나의 정글 같은 곳이니, 그런 관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보통 저런 아이는 (부모님도) 좀, 이럴 것 같은데 다르게 보여주고 싶었다. 보희한테 승현은 달갑지 않고, 어쩌면 속으로는 뭔가 더 나쁜 생각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승현 부모를 보는 순간 '아, 저런 사람들을 갖고 싶다'는 되게 복합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다.

    ▶ 승현은 왜 보희와 녹양 두 사람에게 시비를 걸까. 안지호, 김주아의 답이 각각 달랐다. 안지호는 아마도 승현이 녹양을 좋아했을 것 같다고 했고, 김주아는 보희와 녹양 같은 친구 관계를 부러워했을 것 같다고 했다.

    둘 다 맞는 것 같다. 둘 다 맞는 것 같고. 가끔은 다 가진 것 같은 사람들이 부족한 걸 보고 되게 부러워할 때가 있지 않나. 얘네(보희와 녹양)는 서로밖에 없는데, 아무래도 승현이 캐릭터는 주변에 따르는 남자애들이 많은 설정이었다. 승현은 (보희와 녹양을 보고) 사실 친구 한 명만 있어도 되는데, 하고 그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 '여름'이라는 배경도 출발부터 변하지 않았던 부분이라고 했는데, 특별히 신경 쓴 점이 있다면.

    촬영을 여름에 하고 싶었는데 일정상 9월에 찍게 됐다. 단풍이 오기 전에 빨리 찍기 위해서 노력했다. 지금도 (영화를 보면) 살짝 보인다, 단풍이. (웃음)

    지난달 29일 개봉한 영화 '보희와 녹양' (사진=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진흥위원회 제공)

     

    ▶ 어떤 모습이 영화 안에 담기길 바랐나.

    되게 일상적인 공간이 담기길 바랐다. 한강도 많이 가고 지하철도 그렇고, 눈에 익숙하지 않은 공간은 아마 없었을 거다. 조금 다르게 보였다면 그 공간에 애들 둘이 있기 때문일 거다. 보통은 어른이 다니는 곳이니. 어린 애들 둘이 학교와 주택가 단지를 넘어서서 있는 것, 분명히 일상적인 공간인데 그게 좀 묘하게 충돌이 일어나는 지점을 갖고 있었다. 이태원, 바도 그렇고 우리는 다 아는 데지만 (거기 있는) 둘을 볼 때 생경한 느낌을 좀 가져가고 싶었다.

    ▶ 보희는 결국 아빠를 만난다. 결말 부분에서 아빠의 모습을 그렇게 그린 이유는.

    아빠가 게이인 설정은… 원래는 아빠를 안 만나게 하려고 했다. 못 찾는 거였는데 쓰다 보니까 만나도 괜찮겠다 싶더라. 아빠가 왜 떠났는가를 고민했을 때, 그 이유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고를 당하거나 다른 여자를 만났거나 하는 것보다는 좀 더 개인적인 이유이기를 바랐다. 보희가 알게 됐을 때도 '어, 그래 이해돼' 혹은 '아니, 싫어'가 아니라 좀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기를 원했고. 어쨌든 저희 영화는 전반적으로 약간, 다른 사람들을 보는 시선이 담겨 있는 영화다. 그런 것들을 생각했을 때 아빠를 게이로 하면 어떨까 싶었다. 영화 앞부분에도 그런 뉘앙스를 깔아놨다.

    ▶ 아이들이 영화를 보는 장면이 들어가 있다. 액자식 구성처럼 느껴졌는데, 어떤 의도였는지.

    자기 모습을 보면서 울고 있는 걸 찍으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영화 볼 때, 감동 받거나 슬퍼서 울거나 웃는 것들이 캐릭터랑 자기를 동일시한 상태에서 나오는 것이지 않나. 영화 보는 행위와 연결하고 싶었다.

    ▶ 영화의 주요 카피로도 쓰이는 "꼭 뭘 해야 돼요?"라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작업을 하다 보면 계속 개연성이나 기획의도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면서 찾는다. 그런 과정에서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모든 게 명확하게 이유가 있고 짜 맞춰지고 그렇다기보다는, 일상을 살다 보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경우도 많지 않나. 되게 짧은 단상에서 출발한 것들도 많고. 그래서 (이런 대사를) 쓰게 됐다.

    ▶ '보희와 녹양' 관객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웃음) 좋아하는 사람이랑 와서 같이 보시면 좋을 것 같다.

    '보희와 녹양' 안주영 감독 (사진=KT&G 상상마당 측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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