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 나온 중앙일보·뉴스1 등의 '보험금 최대 1억원' 기사, 포털 화면 갈무리 (사진=민주언론시민연합 제공)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발생한 유람선 침몰 사고와 관련해 사고 당일 일부 언론이 '보험금' 내용 등 본질과 관련 없는 보도를 하며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5월 29일(한국 시간 30일 오전 4시쯤)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부다지구에서 우리 국민 단체여행객을 태운 유람선이 크루즈선과 충돌해 침몰하며 7명이 숨지고 19명이 실종됐으며 7명이 구조된 상태다.
사건 당일 헝가리 당국이 구조·수색 작업에 나서며 추가 생존자 소식 등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일부 언론에서 보험금 액수 등을 언급하는 보도를 내보내 비난을 받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달 31일 모니터 보고서를 통해 '헝가리 유람선 침몰' 관련 보험금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 명단을 공개했다.
민언련이 5월 30일과 31일 이틀 동안 모니터한 결과 '보험' 또는 '보험금' 관련 내용이 들어간 기사는 포털 검색 결과 총 209건(31일 오후 3시 기준)으로 나타났다. 그중 제목에 보험금 액수를 명시했거나 내용에서 보험금 액수를 구체적으로 논한 기사가 총 25건(지면 기사 포함)으로 집계됐다.
5월 30일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망자 여행자보험 보험금 최대 1억원'(중앙일보, 수정 전),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망자 여행자보험 보험금 1억원'(뉴스1, 수정 전), '[헝가리 유람선 침몰] 피해 관광객들 보상 얼마나 받나'(아주경제), '헝가리 유람선 침몰사고…관광객 가입 여행자보험금 최대 1억'(한국경제) 등 보험금이 최대 1억 원이라는 내용을 보도하고 제목에 명시하기도 했다.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중앙일보와 뉴스1은 이후 제목을 각각 '헝가리 유람선 침몰 처벌·배상은 헝가리서 진행…여행사도 책임'(중앙일보),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배상 어떻게 진행되나'(뉴스1)로 수정했다. 그러나 제목만 바뀌었을 뿐 내용은 보험금에 대한 것 그대로다.
해당 보도 내용을 살펴보면 "참좋은여행사에 따르면 침몰한 유람선에 탑승한 한국 여행객은 모두 DB손해보험 여행자보험에 가입했다. 해당 상품은 사망에 1억원, 상해 치료비에 최대 500만원을 보장한다"(뉴스1,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 배상 어떻게 진행되나'), "보험업계 관계자는 "배상책임보험 보험금은 통상 가입자의 귀책이 확인돼야 지급 가능하다"며 "지금은 사고 초기이기 때문에 보험금 지급 여부나 규모를 산출하기에 이르다"고 말했다"(중앙일보, '헝가리 유람선 침몰 처벌·배상은 헝가리서 진행…여행사도 책임') 등 여행자보험 상품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참사 당일과 이튿날에 걸쳐 이 같은 보도가 나오자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는 긴급지침을 통해 "일부 매체에서는 온라인판 등을 통해 사고의 본질과 관련이 없는 보험금, 유언비어 등만을 부각하는 보도가 나오고 있어, 언론노조 민실위에서는 아래와 같은 지침을 각 지본부에 요청한다"라며 관련 보도에 대해 재난보도준칙을 준수할 것을 요청했다.
이 가운데 한국기자협회 재난보도준칙 제15조(선정적 보도 지양)는 "피해자 가족의 오열 등 과도한 감정 표현, 부적절한 신체 노출, 재난 상황의 본질과 관련이 없는 흥미 위주의 보도 등은 하지 않는다. 자극적인 장면의 단순 반복 보도는 지양한다. 불필요한 반발이나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지나친 근접 취재도 자제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2014년 4월 16일 MBC '이브닝뉴스' (사진=자료사진)
이처럼 사고 직후 사망자와 실종자가 다수 발생하고 구조 작업에 난항을 겪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보도보다 참사 희생자의 '보험금'을 보도한 데 대한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중앙일보도 보도했듯이 사고 초기라 보험금 지급 여부 등을 따지기에 이른 시기임에도 성급하게 보험금 보도를 했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전원 구조" 오보 이후 희생자 보험금 보도를 내보내며 '기레기(기자+쓰레기의 합성어)' 비판에 직면했던 그 날과 비슷한 행태에 언론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는 더 큰 상황이다.
민언련은 "구조 작업이 아직 한창 진행 중이다. 시민들은 이들이 살아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받으면 그 액수가 얼마인지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다"라며 "언론은 구조 상황과 현지 분위기를 계속 전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 시민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시민들이 사망 보험금, 배상액을 궁금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민언련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일부 언론에서 세월호와 단원고 학생들의 보험 가입 사실을 보도했다. 그때도 지금과 똑같이 '구조작업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미리 사망을 전제로 보험금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비난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당시 MBC의 사례를 모두 기억하고 있다"라며 "세월호 참사 보도에서 불거졌던 문제들을 바탕으로 언론단체들이 모여 '재난보도준칙'을 만들었고, 언론단체 대표들은 '준칙을 만드는 것보다 철저히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반복된 '보험금' 부각 보도는 이러한 준칙의 의미를 무색케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민언련은 "구조작업이 완료되거나 실종자의 생환 여부가 확정되기도 전에, 사망을 전제로 한 보험금 액수를 논한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소중한 생명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라며 "이는 희생자 가족에 큰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번 보도 행태에 관해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3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참사와 관련해 사건의 원인이나 희생자가 어느 정도 되는지, 그리고 가능하다면 여러 취재를 통해 사건 발생 책임과 향후 대책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보도하는 게 중요하다. 그게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이고 언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보험금이나 보상금은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이 사건을 보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언론들이 사고가 나자마자 그런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의 전형이다. 이 같은 보도는 저널리즘의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라며 "언론과 기자가 양심과 가치관을 가지고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키려면 사건의 실체와 원인을 파악해 그런 부분을 집중 보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