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영상과 한모 교수의 교수실 앞에 붙은 규탄 피켓과 대자보(사진=서민선 수습기자)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에서 현직 교수가 여학생을 성추행하고 수업 시간에 외모를 평가하는 등 희롱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학교 측이 징계 절차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전에도 이 학교에서 교수들의 성추문 폭로가 여럿 제기돼 징계 조치가 내려진 상황에서, 예술계의 고질적인 '위력에 의한 성폭력' 문제가 또 터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 학생들 "술자리·수업 등지에서 신체 만지거나 외모 평가했다" 주장하는 폭로
8일 한예종 교내에 게시된 대자보들의 내용을 보면, 이 학교 여학생 A씨는 방송영상과 한모 교수가 지난 2018년 학생들과의 뒤풀이 자리에서 신체를 만지는 등 자신을 추행했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가 공개적인 수업 자리에서도 비슷한 행동을 했다고 주장하는 폭로도 이어졌다. 교내의 또다른 대자보는 지난 2016년 한 교수가 수업 도중 여학생 B씨를 강의실 앞으로 부른 뒤, 촬영 장비를 다루는 법을 시범보인다는 이유로 자신의 신체 근처에 손을 댔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학생들은 한 교수가 지속적으로 수업이나 술자리 도중 여학생들의 외모를 평가하는 등 부적절한 발언을 해 왔다고 여러 대자보를 통해 주장했다.
학교 측은 한 교수를 지난 3월 학과장으로 임명했다가, 같은 달 중순 교내 인권센터에 사건이 접수되면서 한 교수를 학과장에서 보직해임하고 수업 정지 조치를 내렸다.
한예종 관계자는 "인권센터에서 자체 진상조사를 하고 있고 조사가 진행 중이라 정확한 사항은 밝히기 힘들다"면서 "결과에 따라 징계 등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고 설명했다.
한예종 윤리강령 교원실천지침 제10호는 "학생을 차별하지 않고 존중해야 하며 교육이 목적이라고 해도 동의하지 않은 신체 접촉과 수치심을 유발하는 인격 비하와 성적 발언 등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사자인 한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따로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며 "나중에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을 아꼈다.
◇ 계속 이어지는 한예종 '스쿨미투'…"예술계 도제식 문화 문제"한예종의 교수 성추문 의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학교 측은 지난해 2월, 22년 전 학생에게 성적 농담을 하고 강제로 입을 맞췄다는 의혹이 폭로된 김석만 전 연극원 교수에 대해서 명예교수직을 해촉했다.
또 같은 해 6월에는 유명 화백 박재동 교수와 영화 '왕의 남자' 원작자인 김태웅 교수에게 각각 정직 3개월, 시인 황지우 교수에게 정직 1개월 처분을 내렸다.
황 교수와 김 교수는 한예종 학생들이 공동 계정주로 이름을 올린 트위터 아카이브 계정에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논란에 휘말렸다.
이들은 강의 중 여성의 신체 부위를 비속어로 표현하거나, 여학생의 외모 또는 노래 실력에 순번을 매기는 등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학생들에게 부적절한 말을 하고 후배 웹툰 작가를 성추행했다는 논란이 일었던 박 교수는 지난 1월 서울행정법원에 한예종과 국가를 상대로 징계처분취소소송을 내,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다.
전문가들은 스승의 영향력이 강하고 '도제식 문화'가 일반적인 예술계의 특성 때문에 이런 일이 계속해서 벌어진다고 분석하고 있다.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윤김지영 교수는 "도제식 문화 특성상 인맥을 중심으로 졸업 이후 업계 진출을 할 수 있고, 한예종 교수라고 하면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졸업을 한 뒤에도 학생의 커리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성추문 폭로를 하게 된다면) 스승의 인맥을 통해 전시를 한다든가 하는 기회들도 모두 막히게 된다"고 성폭력이 빈발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윤김 교수는 "때문에 폭로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커리어를 걸고 하는 것이다. 몇십년 전부터 있던 일이 미투 운동을 통해 촉발됐고 견디다 못한 학생들이 폭로를 하게 된 것이라고 판단한다"며 "차후 징계위원회에도 학생 대표가 참여를 하고, 외부 감사를 위한 전문가를 투입하는 등 징계 과정에서도 견제장치를 충분히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