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개봉한 영화 '보희와 녹양'에서 각각 보희 역을 맡은 배우 안지호(오른쪽)와 녹양 역을 맡은 배우 김주아(왼쪽) (사진=한국영화아카데미, 영화진흥위원회 제공)
지난달 29일 개봉한 영화 '보희와 녹양'(감독 안주영)은 녹양 역의 김주아가 직접 표현했듯 "초록초록한" 영화다. 녹음이 짙푸른 여름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고, 작은 모험을 벌이며 쏘다니는 소년 소녀의 어우러짐이 싱그럽기 때문이다.
얼핏 보면 여자아이 이름 같은 '보희'는 여리고 수줍음이 많은 소년이다. 나서지 않는 성격이다. 보희와 한날한시에 태어난 소녀 '녹양'은 훨씬 활기차고 웬만한 일엔 주눅 들지 않는다. 밝고 씩씩하다.
'보희'와 '녹양'을 처음부터 또래 배우들에게 맡기고 싶었다는 안주영 감독의 바람은 현실이 됐다. 각각 '보희'와 '녹양'을 연기한 배우 안지호와 김주아는 극중에서처럼, 실제로도 중학생이다. 2004년생으로 올해 열여섯 살이 된 동갑내기다.
'보희와 녹양' 개봉 사흘째였던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의 한 카페에서 배우 안지호와 김주아를 만났다. 두 사람의 하교 시간에 맞춰 인터뷰는 해가 질 무렵인 이른 저녁에 이뤄졌다. 연기를 시작한 시기가 비슷해 '보희와 녹양' 전부터 구면이었다는 두 사람의 '자기소개'를 들어보자.
◇ 안지호 : 연기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는 배우 되기안지호는 초등학교 5학년 후반에 연기를 시작했다. 이후, 영화 '가려진 시간'(2016)의 상철, '궁합'(2018) 덕구 역을 연기했다. 천만 영화인 '신과함께-인과 연'(2018)에는 거란소년 역으로 출연했다. 올해 5월에는 '나의 특별한 형제'에서 어린 세하 역을 연기해 '신하균 아역'으로 얼굴을 알렸다.
의사, 과학자 같이 여느 또래와 비슷한 꿈을 꾸던 안지호는 전교 부회장에 출마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리더십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이 프로그램 안에 연기가 포함돼 있던 건 우연이었으나, 이때의 첫 만남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배우 안지호를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KT&G 상상마당 측 촬영)
1시간 반 정도는 리더십 과정으로 꾸려져서, 연기 수업은 30분에 불과했지만 안지호는 그 30분이 너무 재미있었다.
"대본 읽고 상황이 주어지면 자유 연기와 즉흥연기를 하는 것, 그게 너무 재미있는 것 같더라고요. 연기에 흥미를 가지다가 배우라는 꿈을 꾸게 됐어요."
즉흥연기의 어떤 부분이 재미있었는지 묻자, 어릴 적 이야기를 꺼냈다. 외동이어서 혼자 인형을 가지고 놀았던 경험 하나하나가 다 즉흥극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안지호는 "어릴 땐 저희가 파워레인저 놀이도 하고 소꿉놀이도 하지 않나. '야, 너 이걸 왜 이렇게 했냐' 이러면서 즉흥연기 했을 때 되게 재미있었다. 책을 안 읽는 편은 아닌데 저는 대본 읽는 게 더 재미있더라"라고 웃었다.
학교에 다니면서 연기도 병행 중인 안지호는 짬이 나면 그림을 그린다. 연기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는 하정우가 롤 모델이라고 수줍게 밝혔다. 안지호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프랑스에 가서 전시회 여는 게 꿈이다.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전했다.
'나의 특별한 형제', '보희와 녹양'으로 올해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는 안지호의 차기작은 영화 '우리집'이다. '콩나물', '우리들' 등을 만든 윤가은 감독의 신작으로 올해 여름쯤 개봉한다.
영화 '가려진 시간', '궁합', '신과함께-인과 연', '나의 특별한 형제', '보희와 녹양'에 출연한 배우 안지호 (사진=KT&G 상상마당 측 촬영)
◇ 김주아 : 해 보고 싶은 게 많아서 '배우'가 되다김주아도 안지호와 같은 시기인 5학년 끝날 때쯤 연기에 발을 들였다. 지금까지는 '선아의 방'(2017), '변성기'(2017), '그녀의 욕조'(2018) 등 개봉하지 않은 단편영화에 출연해 왔다. '보희와 녹양'이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사실 배우가 되고 싶다는 명확한 꿈이 있던 건 아니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게 김주아의 고민이었다. 그런데 TV를 보니까 배우는 의사도, 선생님도, 여러 가지 직업을 두루 경험해 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김주아는 "배우는 한 사람이어도, 여러 가지를 할 수 있지 않나"라며 "제가 꿈을 갖게 되는 데에도 드라마나 영화가 영향을 많이 줬다. 멋있으니까"라며 웃었다.
김주아의 마음을 뺏은 '멋진 직업'은 무엇이었을까. 변호사, 검사, 기자… 이종석-박신혜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 '피노키오'를 특히 재미있게 봐서 기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근데 공부를 잘해야 (기자가) 된다는 건 몰랐어요. (웃음) 기자의 현실적인 모습을 담았다고 하는데 기자분들은 (극중 상황이) 너무 깨끗하다고 하던데요? 아무튼 취재하고 뭔가 사건의 진상을 밝힌다는 게 멋있잖아요! 변호사, 검사는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보영 선배님을 인상 깊게 봤어요. 되게 재밌었어요."
법조인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결정적 작품은 영화 '변호인'(2013)이었다. 그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김주아의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가장 좋아하는 배우' 송강호의 대표작이기 때문이었다.
배우 김주아를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KT&G 상상마당 측 촬영)
"진짜 최애 배우님이 송강호 선배님이세요. 왠지 모르게 '변호인'은 시험 기간에 독서실에서 맨날 보고 있어요. (웃음) 최다 클릭 기간이 시험 기간이에요. 진짜 그, 소름 끼치는 연기! 송강호 선배님 부분만 자주 보는데요. 표준어를 쓰다가 흥분하면 사투리가 나오는 것까지 그게 너무 멋있는 거예요! 캐릭터에 동화된 것 같아서요."
안지호와 마찬가지로 학업과 연기를 동시에 하는 김주아. 짬 날 때 뭘 하냐고 묻자 "잠자는 걸 정말 너무 좋아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제일 좋아하는 건 해가 떠 있을 때 잠들었는데 일어났을 때 아직도 해가 떠 있는 것이라고.
맛있는 것 먹기도 무척 좋아한다. 요즘은 돼지 껍데기가 눈물 나게 맛있는 곳을 알게 돼서 가고 싶다는 이야기도 이어졌다. 김주아는 "정해진 취미라기보다는 맛있는 것 먹기, 자는 것, 친구들이랑 전화하기, 음악 듣는 것 같은 작은 걸 좋아한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필라테스에 관심이 생겼는데 그즈음에 다리가 부러져서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김주아는 "이제 예쁜 몸을 만들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옷 입었을 때 깔끔하게 태가 났으면 좋겠다. 타고나는 게 아닌 것 같다. 다들 노력하고 있는 거였다"면서 웃었다.
향후 계획 질문에 "삐까뻔쩍한 걸 얘기하고 싶은데 없다"고 답했지만, 김주아는 차기작이 3편이나 된다. 웹드라마, 독립 장편, 독립 단편을 올해 촬영할 예정인데, 모두 고3에서 스무살이 넘어가는 역할이 들어왔다며 신기해했다. 아쉬움은 있다. "독립영화는 (개봉을 안 하기도 해서) 많은 분들에게 못 보여드리니까 그게 너무 아쉬워요."
'선아의 방', '변성기', '그녀의 욕조' 등 주로 단편영화에 출연하다가 '보희와 녹양'으로 장편영화에 데뷔한 배우 김주아 (사진=KT&G 상상마당 측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