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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이희호, 과감한 쓴 소리로 정치인 김대중 만들어"

정치 일반

    박지원 "이희호, 과감한 쓴 소리로 정치인 김대중 만들어"

    이희호 여사, 찬송가 따라부르다 편안히 소천
    신앙인으로서 사랑, 인권, 평화 강조하고 실천
    전두환 정권 DJ 사형선고가 가장 힘들었다 회고
    날카로운 조언으로 정치인 김대중 탄생시킨 분
    북한에 소식 알렸으니 반드시 올 것이라 생각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 1 (18:15~19:55)
    ■ 방송일 : 2019년 6월 11일 (화요일)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 정관용> 어젯밤 우리 곁을 떠난 고 이희호 여사, 오랜 시간 고인을 지켜보셨던 분이죠. 민주평화당의 박지원 의원 먼저 연결해서 이 고인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박 의원님 나와 계시죠?

    ◆ 박지원> 네, 박지원입니다.

    ◇ 정관용> 네, 많은 분들이 빈소 찾고 계시죠?

    ◆ 박지원> 네, 그렇습니다. 여러 지방에서도 빈소를 차려주시고. 신촌 세브란스 빈소를 이낙연 총리, 문희상 의장 등 많은 분들이, 시민 분들이 찾아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 정관용> 네. 마지막 순간, 어떻게 소천 하셨는지 좀 알려주시면요.

    ◆ 박지원> 사실 어제, 그제부터 주치의들로부터 오늘, 내일을 넘길 수 없다고 했고 3개월 간 이상을 입원하고 계셨기 때문에 저희들은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11시 넘어서 혈압이 급하강하니까 가족들과 친지들이 찬송가를 불렀더니 여사님께서도 막 입으로 따라 부르시려고 그렇게 노력하시다가 아주 편안하게 소천하셨습니다.

    ◇ 정관용> 네, 유언 남기신 것 좀 전달해 주세요.

    ◆ 박지원> 유언은 생전에 계실 때 남기셔서 두 아드님과 세 며느님, 그리고 변호사의 공증을 받아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일부를 공개했지만 우리나라의 평화, 특히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위해서 기도하겠다고 말씀하셨고 동교동 사저와 지금까지 여사님이 보관하시던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기금을 김대중평화센터를 운영하면서 사용하라, 그런 말씀 등을 남기셨습니다.

    ◇ 정관용> 네, 이희호 여사는 젊은 시절부터 여성운동가로, 그다음에 김대중 대통령과 결혼하신 후로는 반독재 민주주의운동가로, 또 남북문제에 관심 갖는 평화운동가로 그리고 인권운동가로 여러 모습이 있는데 우리 박지원 의원은 어떤 모습이 제일 기억에 남으세요?

    ◆ 박지원> 무엇보다도 이희호 여사님은 신앙인이었습니다. 지금 마지막 순간까지도 입원하시기 전에는 돋보기를 활용해서 계속 성경을 읽으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모태신앙인으로서 신앙에 철저한, 그래서 그러한 박애주의, 사랑, 인권, 평화, 이런 것을 강조하면서 실제로 실천하고 사랑을 베푸신 그런 어머님 같은 분이었다, 이렇게 추모합니다.

    ◇ 정관용> 네, 특히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 군사독재 정권 시절 참 어려움이 많았는데 어떤 순간을 가장 힘겨워하셨다고 하세요?

    ◆ 박지원> 전두환, 신군부독재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가장 괴로우셨고 어떠한 경우에도 기도를 하시면서 하나님이 내 남편을 살려낼 것이다 하고 동분서주하고 전두환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는 등 노력하셨던 그때가 가장 어려우셨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 정관용> 네, 그러셨겠군요. 박지원 의원 수십년 옆에 계셨잖아요. 그렇죠?

    ◆ 박지원> 30년 모셨습니다.

    ◇ 정관용> 혹시 기억에 남는 일화 같은 거 있으세요?

    ◆ 박지원> 글쎄요. 저는 평소부터 김대중 대통령은 이희호 여사로부터 나왔다. 그래서 김대중은 이희호로부터 탄생한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해 왔습니다. 이희호 여사님께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삶을 사셨고 그러한 말씀을 많이 하셨고 평소에 이희호 여사님과 김대중 대통령님은 꼭 동반하고 함께 식사, 여러 손님과 대화를 하시지만 몇 시간을 하셔도 이희호 여사님은 그 대화에 절대 끼어들지 않고 경청만 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그러한 말씀을 들으시고 두 분이 계실 때는 가차 없는 지적을 하시더라고요. 왜 그렇게 당신은 자랑을 하느냐. 정치인은 흔히 이제, 저도 똑같습니다마는 그러한 경우가 있잖아요.

    ◇ 정관용> 그렇죠.

    1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희호여사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이 조문하고 있다. (사진=이한형기자)

     


    ◆ 박지원> 그런 지적을 과감하게 하시고 또 성경에 쓰여 있는 그대로의 말씀을 하시면 실질적으로 실천은 김대중 대통령님이 하셨거든요. 그래서 저는 김대중은 이희호로부터 탄생했다,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 정관용> 가차 없이 쓴 소리도 하고 그렇셨군요.

    ◆ 박지원> 아주 심하시고요. 제가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지적을 하시고. 이 여사님이 평소에는 정치적 얘기를 일체 하시지 않지만 저하고 앉아서 여러 가지 방법이나 정치적 논리를 세우실 때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 대화에 함께 참여하지 않지만 두 분이 많은 얘기를 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고. 대통령님 서거 전에는 두 분이 밤에 늘 손을 잡으시고 노래도 부르시고 그래서 부부 간에 엄청난 소통과 사랑을 실천하셨는데 그러한 때도 대통령님에게 정치적 조언을 많이 하셨지 않는가. 실제로 앉아서 얘기를 하면 날카로운 분석과 방안을 제시하는 모습이 기억됩니다.

    ◇ 정관용> 또 그런 쓴 소리나 날카로운 지적을 하면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는 꼼짝 못 하고 들으시던 가요?

    ◆ 박지원> 처음에는 변명을 하시고. 당신은 왜 내가 잘한 점은 한 번도 칭찬하지 않고 못한 것만 얘기하느냐 하고 화를 내셔요. 김대중 대통령님은 평소에도 저한테도 그렇게 화를 내셨는데 참 좋으신 게 내가 화낸 게 잘못이다, 당신이라도 그러한 것을 지적해 줘서 고맙다, 또 금세 그러시더라고요. 실제로 저한테도 야단치시고 나서 금세 얘기하세요.

    ◇ 정관용> 알겠습니다. 북한 쪽에서 조문단이 올까요? 어떻게 보세요?

    ◆ 박지원> 저는 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 김연철 통일부장관과 여러 가지 얘기를 했습니다만 우리가 부고장을 북한에 보냈기 때문에 10년 전 김대중 대통령 서거 때도 제가 주도적으로 보내서 김기남 비서 등 고위간부들이 내려오셨잖아요. 그리고 또 김정일 위원장이 사망하셨을 때 이 여사님이 가셨단 말이에요.

    ◇ 정관용> 맞아요.

    ◆ 박지원> 그러면 우리 동양 미덕은 항상 그러한 애경사에 오시면 가시고 이런 게 있기 때문에 북한에서 반드시 저는 올 것이다. 오셔야 된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아직은 연락이 없죠? 북한 쪽에서

    ◆ 박지원> 네, 아직은 연락이 없고. 아무래도 연락이 오면 통일부를 통해서 오기 때문에 정부에서 적절하게 잘 협력해 주실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여사님 잘 모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박지원> 네, 감사합니다.

    ◇ 정관용>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의 말씀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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