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노컷뉴스

완벽주의자 허용순이 보여줄 불완전함의 미학

공연/전시

    완벽주의자 허용순이 보여줄 불완전함의 미학

    • 2019-06-26 06:30

    유니버설발레단과 '불완전하게 완전한' 세계 초연

    허용순 신작 '불완전하게 완전한' 연습장면 (사진=유니버설발레단 제공)

     

    오는 29∼30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 오르는 공연 '불완전하게 완전한'(Imperfectly Perfect)이 발레 팬들 사이에서 화제다. 제9회 대한민국발레축제 공연 가운데 유일한 신작인 데다, 독일 뒤셀도르프 발레학교 교수인 허용순(55)이 세계에서 초연한다는 점에서도 관심이 뜨겁다.

    허용순은 25일 서초동 한 호텔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고국에서 신작을 선보이는 게 오랜만이라 떨린다. 부담감도 있지만 신나는 마음이 더 크다"고 말했다.

    '불완전하게 완전한'은 허용순이 꾸준히 천착하는 주제인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이다. 나와 타인의 관계, 나를 제외한 타인 간의 관계, 나와 자신과의 관계를 춤으로 풀어낸다. 독일에서 활동 중인 무용수 원진영과 사울 베가 멘도자, 마리오엔리코 디 안젤로가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강미선, 콘스탄틴 노보셀로프와 합을 맞춘다.

    "관객들이 작품을 볼 때 무용수 신체의 아름다움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길 바랐어요. 마치 한 권의 책을 읽은 것처럼 이야기를 얻어가길 원했죠.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란 없으니, 제 작품에서 저마다 이야기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사실 작품 제목의 '불완전한'은 허용순의 평소 모습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단어다. 그의 매끈한 작품 전개는 완벽한 사전준비에서 나온다. 안무를 구상할 땐 동작 하나하나를 직접 소화해 영상으로 찍어둔다. 이를 위해 현역 못지않은 체형 관리는 필수다.

    무용수들에게 전달할 내용을 적어둔 노트는 작품당 책 한 권 분량이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이 카메라 앵글, 동선, 배경 등을 디테일하게 그린 스토리보드 없이는 촬영을 시작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옛날엔 정말 완벽주의자였죠. 모든 일은 100% 준비해야 직성이 풀렸어요.(웃음) 요즘은 조금 유연해졌어요. 무용수들에게 재량권을 많이 넘기고, 오디션에서 어떤 무용수가 선발되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 맞춰서 연출을 바꾸기도 해요."

    허용순은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김인희 STP발레협동조합 이사장,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과 함께 국제무대 진출 1세대 무용가로 꼽힌다. 한국무용을 전공한 어머니를 따라 3세 때부터 한국무용을 했고 피아노와 성악, 미술을 배웠다. 선화예중에 입학해 뒤늦게 발레에 두각을 나타냈고, 선화예고 재학 중 모나코 왕립발레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졸업 후 독일 명문 프랑크푸르트발레단을 거쳐 취리히발레단, 바젤발레단, 뒤셀도르프발레단에서 주역무용수 겸 발레마스터(지도위원)로 활약했다. 자기 분야 깊이가 없었다면 이룰 수 없었던 성취다.

    "요즘 시대에 이게 좋은 표현일지 모르겠는데… 사실 전 워커홀릭이에요. 처음 유학길에 올랐을 때 제 키 164㎝면 그리 작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외국 무용수들과 비교하니 어찌나 부족해 보이던지요. 매일 스튜디오에서 죽어라 연습했어요. 그때 습관이 지금까지 가네요. 새벽 5시면 일어나고 하루에 4∼5시간만 자며 일해요."

    춤이 지겨웠던 적은 없었냐는 물음에는 가만히 고개를 내저었다.

    "잠시 마음이 뜬 적은 있었지요. 1992년 스위스 바젤에서였던가, 부상 때문에 6주쯤 쉬던 시기가 있었어요. 통·번역이나 사람 만나는 일을 워낙 좋아해서 호텔 비즈니스를 해볼까 싶었지요. 그런데 부상에서 회복하니 금세 다시 춤추고 싶더라고요."

    허용순은 2003년 출산 전후로 안무 창작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01년 창작 안무작 '그녀는 노래한다'를 시작으로 '글라스 하우스'(Glass Haus·2007), '카르멘'(2010), '카르미나 부라나'(2012), '더 모먼트'(2013), '일루전'(2015), '이프'(IF·2017), '르미네상스'(Reminiscence·2018) 등 40여 편에 달하는 작품을 쏟아냈다.

    바쁜 나날 속에 든든한 버팀목은 남편 외르크 지몬, 그리고 딸 알리나 유진 지몬(16)이다. 허용순은 휴대전화 배경화면의 딸 사진을 보여주며 "저보다 더 예쁘지 않으냐"고 행복한 눈으로 물었다. 유진이 9세쯤에 '발레리나가 되지 않아도 괜찮냐'고 물었을 때 흔쾌히 '괜찮아'라고 답했다고 한다.

    "유진이가 토요일마다 한국학교에 다녀서 한국말을 꽤 해요. 한국어능력시험(TOPIK)도 보는 걸요. 블랙핑크와 방탄소년단을 좋아해서 K팝 댄스도 추러 다녀요. 요즘은 무대에서 연극하고 춤추는 게 좋다고 하니, 아마도 뮤지컬 쪽으로 가려나 봐요."

    안무가이자 교육자, 무용수로서 분초를 쪼개 쓰는 허용순에게 어떤 앞날을 계획하고 있냐고 물었다.

    "지금 뒤셀도르프발레단 '백조의 호수'에 오데트 계모 역할로 출연하는 게 무용수로서는 마지막일지도 몰라요. 유진이 어른이 되기 전에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으니, 들어오는 일을 다 해서도 안 되겠지요. 하지만 언제 어디서든 제 인생에서 춤이 떠날 일은 없을 거예요. 전 아마도 춤추라고 태어났나 봐요."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