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28일 오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북미대화 재개 여부가 중대 분수령을 맞고 있는 가운데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북핵 해법의 '동시적·병행적(simultaneously and in parallel)' 진전을 다시 거론하고 나서 배경과 함께 북한의 반응이 주목된다.
스티븐 비건 대표는 28일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의 북핵 수석대표 협의에서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동시적·병행적'으로 진전시키기 위해 북측과 건설적인 논의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북한 비핵화 방법론은 비핵화 범위와 함께 북미간에 의견이 가장 첨예하게 맞서는 부분이다.
미국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일괄타결식 빅딜'을 전제로 한 '선(先) 비핵화 후(後) 제재완화'를, 북한은 '단계적·동시행동'을 주장하고 있다.
북미가 이후 대화의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에 대한 간극이 너무 큰 탓이다.
비건 대표가 이날 내놓은 '동시적·병행적' 해법이 주목되는 것도 기존 '일괄타결식' 해법과 결이 확연히 다르고 북한의 '단계적·동시행동'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비건 대표와 미국 국무부가 '동시적· 병행적' 해법을 제시한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24일 북한이 새로운 계산법을 갖고 나올 것을 촉구한데 대한 입장을 묻는 언론 질의에 "북미정상이 싱가포르에서 합의한 목표들을 향해 '동시적·병행적' 진전을 이루기 위해 북한과 건설적인 논의에 관여할 준비가 여전히 돼 있다"며 이 번과 똑같은 답변을 내놨었다.
미 국무부에서 북핵 해법의 '동시적·병행적' 접근법이 처음 나온 것은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을 한달 앞둔 지난 1월말 바로 비건 대표의 입에서였다.
그는 당시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북한이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약속을 지킨다면 두 정상이 지난 여름 싱가포르 공동성명에서 했던 모든 약속을 동시에 그리고 병행적으로 추진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2월말 하노이 북미회담에서 미국이 일괄타결식 빅딜로 선회하면서 회담이 결렬됐다.
이후 미국 내에선 북핵의 일괄 타결식 빅딜론이 굳어졌다.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좌관의 이른바 '리비아식' 해법이다.
협상파인 비건 대표 스스로도 지난 3월 11일(현지시간) 카네기국제평화기금이 주최한 핵정책 콘퍼런스에서 "북한 비핵화를 점진적으로 진행하지 않겠다"며 "우리는 '토털 솔루션(a total solution·일괄 해결)'을 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때문에 북미대화 재개여부가 분수령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다시 '동시적·병행적' 해법을 제시하고 나온 것은 협상에 유연하게 대응하겠다는 점을 비쳐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은 비핵화의 최종상태(end state)와 거기에 이르는 로드맵에 먼저 합의한 뒤 비핵화 조치와 상응조치는 동시적 병행적으로 하자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완전한 비핵화가 전제되지 않으면 제재완화도 없다는 볼턴식 해법보다 유연하지만 북한의 단계적 해법과는 거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김준형 한동대 교수는 "비건 대표의 동시적· 병행적 해법은 북한의 단계론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은 아니고 우리 정부의 '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과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은 신뢰가 없으니 단계적으로 확인하면서 이행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비핵화의 최종상태와 로드맵 합의 등 북한에 기본적인 것은 요구하겠지만 그래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미국에서 굳어져온 볼턴식 선 비핵화 주장에서는 많이 유연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