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비정규직의 파업은 일단락됐지만, 공공부문 비정규직 총파업 사태의 불씨는 그대로 남아있어 한동안 공공부문 정규직화를 둘러싼 노정 갈등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학교 파업' 끝났다지만…불씨 그대로 남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파업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연대회의)는 사흘간 총파업을 끝내고 8일부터 학교에 복귀한다.
하지만 불씨는 남아있다. 연대회의는 '파업중단'일 뿐이라면서 오는 9∼10일 진행할 교섭 결과에 따라 '2차 파업'에 돌입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학교 비정규직 파업은 소강국면에 들어갔지만, 이제 전국집배노조(집배노조)도 파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집배노조는 지난 5일 우정사업본부와 최종 쟁의조정에 나섰지만, 본부 측이 정규 집배원 대신 위탁택배기사 500명 증원안 등을 내놓자 비정규직 확대안이라고 반발하며 합의에 실패했다.
다만 집배노조는 본부 측의 추가 제안 등을 감안해 파업 여부를 8일 집행부를 중심으로 결정할 계획이다.
자회사 전환을 거부하다 1500명 대량 해고 사태를 맞은 톨게이트 요금 수납노동자들의 서울톨게이트 고공농성도 계속되고 있다.
◇勞"무늬만 정규직화" VS 政"고용안정이 우선, 처우개선은 나중에"공공부문 전반에 걸쳐 벌어진 대규모 연대파업인만큼 이번 파업 사태는 특정 사업장·직종만의 문제로 풀이하기 쉽지 않다.
단순히 특정 노동조건을 놓고 대립을 빚고 있다기보다는,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작업 과정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 쌓여온 불만이 한꺼번에 터졌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이처럼 정부와 날카롭게 대립하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모습은 문재인 정부 집권 초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인천공항 비정규직을 직접 만나 내린 업무지시 1호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였다.
이를 토대로 정부는 2020년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20만 5천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실제로 지난 달 말 기준 18만 2584명(89.3%)이 정규직으로 전환 결정됐고, 그 중 14만 1329명(77.4%)을 실제 전환 작업을 마쳤다.
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치는 '무늬만 정규직화'라는 것이 노동계의 불만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정규직 전환 작업에서 배제된 이들이다. 전체 공공부문 비정규직 40여만 명 중 절반 이상은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빠져있다.
당장 학교 비정규직의 경우 정부의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기간제교사, 영어회화전문강사 등은 아예 정규직 전환 대상에서 배제돼 전환 작업 초기부터 논란이 일었다.
정부가 약속한 '정규직'과 실제 전환 결과와의 괴리도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만을 샀다.
고용노동부는 "'고용안정'이 우선이고, 국민 부담을 고려해 처우개선은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정규직 전환 목표를 못박았다.
그 결과 정부는 '중규직'으로 불리는 '무기계약직'이나 사실상 기존 자회사 간접고용과 큰 차이가 없는 '자회사'를 통한 고용방식도 모두 정규직 전환 사례로 계산하고 있다.
무기계약직·자회사의 노동 조건이 일반적인 '정규직'에 비해 부족하더라도, 일단 고용안정은 보장됐다는 논리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정부의 주장이 실제 현장 상황과 동떨어진 주장이라고 지적한다. 대표적 사례가 37일에 걸친 단식 투쟁까지 벌였던 서천 국립생태원이다.
이 곳에서는 오히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면서 임금이 1인당 최대 25만원 삭감된 반면 노동시간은 20여 시간 늘어나면서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한 바 있다.
자회사의 경우에도 사측이 자회사 운영비용을 감내하더라도 직접고용을 회피하는 이유를 놓고 노동자들은 중장기적으로 노동조건이 악화되거나, 다시 고용불안정 상태로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의 근본 원인은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있다. 정부는 노·사·전문가 협의회를 통해 각 사업장이 '자율적으로' 전환방식을 결정하도록 하고 있는데, 정작 자회사 설립 등에 대해서는 뚜렷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결국 인건비 감축을 바라는 사측과 직접고용을 통한 처우개선을 노리는 노측 간에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정규직 전환 이상없음" 안이한 정부 인식이 문제 키워이번 사태를 키운 또 다른 원인은 정규직 전환 과정에 대한 뾰족한 문제의식이 없었던 정부에 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과 정부 간의 갈등이 불거질 것이라는 우려는 지난 2년 동안 꾸준히 제기됐다.
당장 정규직 전환의 첫 실험대가 됐던 인천공항조차 아직도 비정규직 전환 작업을 마치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갈등을 겪어왔고, 이후에도 전국 곳곳의 공공부문 사업장에서 산발적인 노사 대립이 계속됐다.
하지만 정부의 문제인식을 안이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으니 상황이 더 좋아진 것 아니냐는 논리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 이재갑 장관은 지난달 언론인터뷰에서 "공공기관 정규직 전환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며 "일부 갈등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지난 4일 "노조는 주로 처우개선을 요구한다"며 노조의 요구를 좁혀 해석하고는 "노사가 대화로 접점을 찾아 달라"고 요구하는 데 그쳤다.
노동계는 이처럼 정부의 안이한 태도가 일선 기관에는 '무늬만 정규직화'에 머물러도 괜찮다는 잘못된 시그널을 줬고, 결국 무기계약·자회사 방식의 정규직 전환이 확산된 배경이 됐다고 지적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의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동안 각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 과정에 불만을 제기해도 자회사-본부 기관-상위 부처 등 첩첩산중으로 쌓여있는 공공부문의 특성 탓에 노사 대화의 속도를 내지 못했다.
특히 '인력과 예산을 관장하는 기획재정부'와 협의가 되지 않아 재원이 없다는 주장은 노정 대화를 번번이 가로막았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이사장은 "공공부문 비정규직은 공무원, 공기업과 함께 일하며 오히려 상대적 박탈감을 더 품기 쉽다"며 "정부의 정규직 전환 약속에 기대가 컸을텐데 전환과정이나 전환 후 처우 등에 대한 불만이 누적돼 파업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지금보다 상태가 개선되니까 된 것 아니냐'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며 "최근 이 총리의 발언 등을 보면 아직도 정부가 이번 문제를 크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가 정규직 전환만 할 뿐 아니라 그 이후의 계획과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데, 아직 충분한 노력이 없었다"며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교섭 창구를 만들자고 요구하고 있는 까닭도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했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