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청와대와 대법원 법원행정처간 부적절한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받는 곽병훈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증인으로 나와 "후회스럽다"는 심경을 밝혔다. 곽 전 비서관의 청와대행에 법원행정처가 필요 이상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박남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의 재판에는 곽 전 비서관이 증인으로 나왔다.
곽 전 비서관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문제가 된 사건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련 있다고 하지 않았지만 직관적으로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며 "지금 와서 보니 (법원행정처에 대해) 부적절한 요청이었다는 후회스러운 마음이 든다"고 밝혔다.
곽 전 비서관은 특정 법무법인의 소송 수임 현황 등을 알아봐달라며 당시 법원행정처 임종헌 차장에게 요청하고 관련 자료를 받아 우 전 수석 등 청와대에 보고한 인물이다. 해당 정보는 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김영재·박채윤 부부의 특허소송과 관련한 것이었다.
이 사건의 피고인인 유 전 수석재판연구관은 법원행정처 지시로 김·박 부부가 운영하던 와이제이콥스메디칼의 소송 자료를 유출한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을 받는다. 곽 전 비서관은 이 과정에 연루된 인물이어서 이번 재판의 증인으로 소환됐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우 전 수석은 '법무법인 다래(와이제이콥스 소송 상대방 법률대리)가 전관예우를 많이 받는 것으로 의심된다'며 곽 전 비서관에게 파악할 것을 지시했다. 곽 전 비서관은 "당시 평판을 확인한 후 '전관예우를 받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보고했다"며 "다시 숫자 등으로 확인해보라고 해서 임 전 차장에게 수임건수 등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 전 수석재판연구관 측 변호인이 당시 법무비서관으로서 청와대와 법원행정처 사이 문서가 오간 것을 범죄로 인식 했는지 묻자 곽 전 비서관은 "아니오"라고 답했다.
다시 변호인이 "범죄가 아니라면, 잘못됐다고는 인식했나"라고 묻자 "그때는 서로 교감하고 그런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검찰은 청와대와 법원행정처 간 부적절한 정보 교류의 원인을 지적하기 위해 곽 전 비서관의 임용 배경을 언급하기도 했다. 사법연수원 22기 판사 출신인 곽 전 비서관은 2011년 박병대 전 대법관의 재판연구관을 끝으로 법복을 벗었다. 이후 김앤장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중 2015년 1월 임 전 차장으로부터 "법무비서관 자리에 갈 생각이 있느냐"는 전화를 받았다. 곽 전 비서관이 동의 의사를 밝히자 2~3일 후 우 전 수석이 전화를 걸어 내정 사실을 알려줬다.
검찰 측이 "법무비서관 임명할 때 법원행정처의 의사 반영된 것이냐"라고 묻자 곽 전 비서관은 "그렇게 짐작한다"며 "다만 우 전 수석이 여러 군데 추천을 받아 검증했다고 했으니 법원행정처 의사도 반영·참작된 것일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곽 전 비서관과 임 전 차장이 같은 사적 모임에 참여해온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현직 법원행정처 판사와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근무하는 판사 출신 변호사들의 모임인 일명 '신기조'다. '신광렬(전 서울중앙지법 형사 수석부장판사)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의 준말로 추정되는데, 곽 전 비서관과 임 전 차장 모두 해당 모임의 존재와 참석 사실을 인정했다. 신 전 수석부장판사 역시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곽 전 비서관은 이날 증인으로 재판에 나왔지만 앞서 이번 사건의 피의자 신분으로 5번 이상 검찰 조사를 받았다. 아직 기소나 불기소 결정은 내려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증인으로 소환된 임 전 차장은 "자신의 재판에 불리할 수 있다"며 대부분의 질문에 증언을 거부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기소된 임 전 차장이 다른 재판의 증인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변호인 측이 "법관의 재외공관 파견 확대 등 법원행정처가 원하는 사항에서 청와대 도움을 받으려 피고인과 범행을 공모한 적이 있냐"고 묻자 "없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