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민간택지 아파트까지 분양가 상한제를 다시 확대하기로 가닥을 잡으면서, 구체적인 적용 대상과 지정요건 완화 수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9일 "주택법 시행령에 명시된 분양가 상한제의 적용 요건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질 것"이라며 "다만 구체적으로 어느 항목을 손볼지는 막바지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분양가 상한제는 아파트를 분양할 때 택지비와 건축비에 건설업체의 적정이윤을 보탠 분양가격을 산정한 뒤 그 이하로만 분양하게 하는 제도다. 현재 공공택지엔 적용되고 있지만, 민간택지엔 까다로운 요건을 내건 바람에 2015년 4월 이후 한번도 적용된 적이 없다.
현재 공공택지 아파트의 경우 지방자치단체별 분양가심사위원회가 분양가 적정성 여부를 심사·승인하고 있는 반면, 민간택지 아파트는 HUG(주택도시보증공사)를 통해 간접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건설사 등 사업주체가 HUG의 분양보증을 받기 위해선 주변 시세의 105% 이하로 분양가를 책정해야 하지만, 서울 강남 등 재건축 단지에서 이를 피하기 위해 후분양제로 돌리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게 당국 판단이다.
하지만 민간택지에도 상한제가 적용되면 분양가는 크게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분양원가의 절반 이상은 택지비가 차지하는데, 시세가 아닌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심사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당국이 발표한 올해 표준지 공시지가의 시세반영률은 평균 64.8% 수준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강남 재건축 단지의 분양가는 HUG의 산정액보다도 훨씬 낮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강남 재건축 단지들이 후분양할 경우엔 시세 기준으로 3.3㎡당 6천만~7천만원 수준이 될 전망이지만, HUG가 요구하는 분양가는 3.3㎡당 4500만원선이다. 여기에 상한제가 적용되면 분양가는 한층 더 낮아질 거란 얘기다.
국토부 김현미 장관이 전날 국회에서 "민간택지 아파트에도 분양가 상한제 도입을 검토할 때가 됐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앞서 김 장관은 지난달말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도 "HUG가 운영하고 있는 고분양가 관리 시스템은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고 있다"며, 민간택지로의 상한제 확대 여부에 "고민중"이라고 답한 바 있다.
하지만 국회 답변에선 "주택시장의 투기과열이 심화될 경우 적극적으로 고민할 것"이란 전제를 달긴 했지만 "주택법 시행령을 개정해 민간택지 지정 요건을 개선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현 정부 들어 분양가 상한제 보완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 8·2대책 발표 이후 같은해 11월에도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지정요건을 완화하는 주택법 시행령 개정이 이뤄진 바 있다.
개정된 시행령은 최근 3개월간 주택가격 상승률이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2배를 넘어야 일단 지정 요건을 충족한다고 명시했다. 여기에 더해 △직전 2개월간 청약경쟁률이 5대1(85㎡ 이하는 10대1)을 초과하거나 △직전 3개월 주택거래량이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증가하거나 둘중 하나를 충족해야 한다.
하지만 지정요건이 엄격하다보니 실제 적용된 사례는 전무했다. 따라서 '물가상승률의 2배 초과' 기준을 '물가상승률 초과'로 강화하는 방안이 일단 거론된다. 소비자물가지수가 6개월째 '0%대'에 머물러있는 상황인 만큼, 이 기준만 바꿔도 적용 대상이 크게 늘어날 수 있어서다.
적용 시점 변경 여부도 관심사다. 지금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에서 규제 도입 이후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하는 재개발·재건축 단지에 적용된다. 하지만 이를 '입주자모집 승인을 신청한 단지'로 바꿀 가능성이 제기된다.
후분양을 통해 분양가를 높여받으려는 개포주공1·반포주공1·둔촌주공 등 강남 재건축 단지들이 이미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한 만큼, 서둘러 제도를 바꿔봤자 효력이 없는 '뒷북 대책'이 될 수 있어서다. 다만 이 경우엔 소급 입법 논란도 불거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정부가 개선책 시행일 이후 '입주자모집 공고'를 하는 단지까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확대할 경우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은 물론, 여의도 MBC부지에 들어설 브라이튼여의도, 세운3 재정비촉진지구의 힐스테이트세운 등 주요 단지들도 영향을 받게 된다.
정부는 분양가 상한제 확대를 위한 '사전정지작업'도 마친 상태다. 지난 5일 입법예고한 주택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9월부터는 아파트 분양가심사위원회의 위원 명단과 회의록을 공개하도록 했다.
시장·군수·구청장이 위촉하는 6인 이상 위원으로 구성돼 아파트 분양가 산정의 적정성을 심사하는 기구로, 앞으로는 등록사업자의 임직원이나 퇴직후 3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은 위원 구성에서 배제되고 회의자료 사전검토기간도 기존 2일에서 7일로 연장된다.
상한제 지정요건을 완화하는 시행령 개정 역시 국회 입법 절차가 필요없기 때문에, 이달중 국무회의 의결이 이뤄진다면 40일간의 입법예고 등을 감안하더라도 이르면 9월부터 시행에 들어갈 수 있다. 다만 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해 일정 기간 유예기간을 둘 거란 관측도 나온다.
또 막바지 검토와 의견 수렴 등을 거쳐 8·2대책이나 지난해 9·13대책처럼 8~9월에 개선책을 내놓을 경우엔 10월이나 11월부터 시행에 들어갈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