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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준 '불법촬영'이 드러낸 바닥친 언론 性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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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준 '불법촬영'이 드러낸 바닥친 언론 性인식

    [뒤끝작렬] 김성준 전 SBS 앵커 사태로 본 언론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
    조직 내 위계와 남성이라는 권력이 결합한 성폭력 거듭 발생
    언론인 단톡방 사태, 언론의 '강간문화' 민낯 드러낸 대표적 사례
    범죄 보도 뒤에서 범죄 저지르는 언론인 모습에 '불신' 커져
    "늦은 만큼 언론의 치열한 반성과 노력 뒤따라야 해"

    김성준 전 SBS 앵커 (사진=방송화면 캡처)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날. 뉴스 하기도 싫은 날이다. 내가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리는 날이다. 성추행이고 뭐고 청와대 대변인이란 사람이 정상회담과 의회 연설 사이에 나이 어린 인턴 직원과 운전기사를 데리고 술을 먹으러 다녔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질. 기사 한 줄 표현 하나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데 프레스센터나 상황실을 비우고 개인행동을."(2013년 5월 10일 김성준 당시 SBS '8뉴스' 앵커의 SNS 글)

    김성준 전 SBS 앵커는 2013년 윤창중 당시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 파문이 일자 "부끄럽다"고 말했다. 성폭력이 갖는 무게뿐 아니라 기사 한 줄, 표현 하나가 갖는 책임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윤창중 사건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김성준 전 앵커가 여성을 불법 촬영해 경찰에 입건됐다. 성폭력 가해자를 "나쁜 사람들"이라 했던 김 전 앵커의 말은 공허해졌다. 언론이 가진 성인식의 민낯이 다시금 드러났다. 그의 말마따나 "부끄럽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지난 8일 김성준 전 앵커를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 전 앵커는 지난 3일 오후 11시 55분쯤 지하철 영등포구청역에서 여성의 하체 부위를 몰래 촬영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지난 8일 사직 처리됐다.

    김성준 전 앵커가 그간 메인뉴스 앵커로서 클로징 멘트를 통해 보인 사회에 대한 분노와 약자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은 '불법촬영'이라는 사건이 드러나며 공허해졌다. 그의 말에 공감하고 같이 분노했던 사람들도 공허함과 불신을 느꼈다.

    같은 날 한겨레는 KBS의 팀장급 이모 기자가 지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후배 기자들과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을 상습적으로 성희롱·성추행한 사실을 보도했다. 이모 기자는 '팀장급', 그리고 '남성'이란 위계질서를 내세워 후배들에게 노래방 회식에서 노래와 춤을 강요하고, 성희롱 발언과 불쾌한 신체접촉을 일삼았다. 타사 기자와 늦은 밤 유흥업소로 후배 여성 기자를 불러내는 것을 두고 내기를 벌이기도 했다.

    김성준 전 앵커, 그리고 KBS 이모 기자의 성폭력은 남성중심 언론문화 속에서 바닥을 친 언론의 성인지 감수성과 윤리의식 부재를 다시금 드러냈다. 그리고 불과 2개월여 만에 똑같은 물음을 던지게 됐다. 과연 언론을 신뢰할 수 있느냐는 물음 말이다.

    앞서 지난 4월 말 미디어오늘을 통해 언론인들이 익명의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이 보도됐다. 단톡방 안에서는 취재 중 획득한 '클럽 버닝썬 영상', 성폭력 피해자 등의 신상 정보, 성관계 영상 등이 유포 및 공유됐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동영상이 보도된 이후에는 해당 영상을 공유해야 한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성희롱 발언은 물론 단톡방에 참여한 기자들은 성매매 업소를 서로 추천해주기도 했다.

    김세은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당시 언론인 단톡방 사태를 두고 "언론이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시대착오적인 인식 속에서 깨이지 못하는 상황을 여실히 드러낸 중요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제작한 '상담소가 친절하게 알려주는 기자들에 의한 집단 사이버성폭력사건 A to Z' (사진=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관행처럼 굳어진 언론의 '강간문화'(강간과 여성에 대한 성적 공격이 용인되거나 정당화되는 것)는 여전하다.

    언론사의 간판이라고 하는 메인뉴스의 앵커를 지냈던 사람은 지하철에서 여성의 신체를 불법촬영하다 들켜 도망가다 붙잡혔다. 팀장급 기자는 자신이 가진 위치를 이용해 후배 기자들에 대한 성폭력을 반복적으로 자행했다. 언론인들은 익명성이 보장된 사이버 공간에서 여성들, 심지어 성폭력 피해 여성들까지 품평했다.

    지난 5월 '강간문화 카르텔 : 언론의 젠더감수성과 저널리즘 윤리' 긴급토론회에서 김경희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20년이 지난 시점에도 비윤리적 행위를 공유하며 남성적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그것도 기자 사회에서 그런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게 슬프다"라며 "이 비윤리적인 언론 관행이라는 문제가 단지 젠더 차원의 논의가 아니라는 데 큰 방점이 있다. 바로 한국 언론의 문제라는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뉴스를 통해 성폭력 문제를 비판하는 언론인이 뉴스 뒤에서는 성범죄를 저지르고, 그 민낯이 다시 뉴스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는 현실. 남성 중심의 강간문화라는 유산이 언론에 뿌리 깊게 남아 있고, 언론인의 성인지 감수성 부재도 여전하다는 사실이 거듭 증명되는 게 부끄럽다. 김성준 전 앵커의 말을 빌리자면 "내가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리는 날"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이윤소 미디어운동본부 부소장은 긴급토론회에서 "밝혀지지 않은 정말 많은 사건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라며 "사건이 밝혀졌다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시작해야 한다. 늦긴 했지만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언론인 단톡방 사태 2개월여 만에 김성준 전 앵커가 불법촬영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김성준 전 앵커의 사례는 밝혀지지 않은 정말 많은 사건 중 하나일지 모른다. 다시 치열하게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일련의 사태를 바라보자면 '강간문화'를 두고 '관행'이라 부르는 남성중심 언론문화에서는 성폭력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다시금 김성준 전 앵커의 말을 빌려 본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나온 몰래카메라. 이런 게 인터넷에 떠돈다고 하면 기분이 어떨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피해자는) 평생 멍에가 돼 살아야 하는 고통인데, 가해자는 벌금만 얼마 내고 나온다. 나쁜 사람들."(2018년 5월 2일 SBS 러브FM '김성준의 시사전망대' 중 김성준 전 앵커의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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