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노컷뉴스

안데스의 진주 '메데진'…21세기 '엘도라도' 꿈꾼다

사회 일반

    안데스의 진주 '메데진'…21세기 '엘도라도' 꿈꾼다

    안데스 고산지대 케이블카.에스컬레이터가 '대중교통수단'
    주민의 변화 열망에 탁월한 리더십이 이뤄낸 혁신…세계도 인정
    "삼양동 수유리 산동네도 모노레일 엘리베이터 놓이면 관광마을"

    안데스 산맥 위의 도시 메데진. 산 중턱까지 집들이 들어찬 풍경이 이채롭다. (사진=이재기 기자)

     

    마르케스는 그의 걸작 '100년 동안의 고독'에서 중남미 대중들의 고통과 핍박을 리얼하게 그려내 세계인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얼마나 지긋지긋하게 내전이 지속됐는 지 그 과정에서 또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쓰러져 갔는 지를 사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서술기법을 동원해 담담히 묘사해 남미 민중들의 암울한 현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줬다. 나중에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21세기로 접어들면서 남미대륙에도 직선제를 통한 민주주의가 완전히 뿌리를 내리고 끝간데 없이 이어질 것 같던 내전의 포화 속에서 '화해와 협력'이 싹트고 마약생산과 거래의 온상이자 소굴이었던 안데스 고산 빈민굴은 이른바 '마약굴'의 오명을 벗어 버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인들이 찾는 관광명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 메데진 고산지대 마약굴이 글로벌 관광지로

    남미의 지붕 안데스산맥의 영험한 기운 속에 살포시 내려앉은 듯한 도시 메데진, 콜롬비아에서 페루 쪽으로 3갈래로 뻗어 내려가는 안데스 산록의 한 가운데에 자리 잡아 3~4천미터 고봉준령들이 에워싼 거대분지 속에 위치해 있다.

    남미의 대도시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콜롬비아 제 2의 도시 메데진 역시 평균 고도 1800m의 전형적인 고산도시, 그런 만큼 산비탈을 따라 빼곡하게 들어선 집들이 유난히 많아 이방인들에게는 매우 독특한 첫인상을 남긴다.

    마약과 범죄가 많았던 메데진 서쪽 고산마을 코무나13이 재생된 뒤의 모습이다. (사진=이재기 기자)

     

    코무나13 마을의 벽화들. (사진=이재기 기자)

     

    코무나13(Comuna13)도 메데진 서쪽 2000m 고산지역에 있는 빈민가 중 한 곳이다. 다른 고산마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최근 도시재생을 거치면서 마약과 범죄가 판치던 우범지대에서 활력 넘치는 관광도시로 거듭났다는 점이다.

    남미지역이 전반적으로 잃어버린 20세기를 뒤로한 채 변화와 발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범죄가 많고 빈부격차가 사회 불안정을 유발시키는 원인으로 남아 있는 게 현실이다.

    이 때문일까? 마약의 '메데인 카르텔'로 유명했던 메데진이 2013년 월스트리트 저널 선정 '혁신도시'에, 또 2016년 리콴유 세계도시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 쉽사리 믿겨지지 않았다.

    ◇ 세르히오 파하르도의 리더십…잠자는 대중 깨웠다

    메데진은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하는 4차 산업혁명 대륙별 센터 가운데 남미대륙의 거점에도 선정됐다.

    변화의 동력은 대중들의 마음속에 내연하고 있던 변화열망이 탁월한 리더십을 만나면서 시작된 거로 알려져 있다.

    메데진 서쪽 고산마을 코무나13에 설치된 엘리베이터 주민들은 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가파른 꼭대기까지 오르내린다. 모두 6기의 엘리베이터가 왕복으로 설치돼 있다. 메데진시가 안데스산맥 고산마을에 설치한 엘리베이터는 마을 혁신의 주요할 역할을 하고 있다. (사진=이재기 기자)

     

    알레한드로 데 베도트 메데진시 아동청소년국장은 11일(현지시간) CBS와 가진 인터뷰에서 "고산지대 주민들의 고달픔을 덜어주기 위해 대중교통수단으로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세르히오 파하르도 전 메데진 시장이었고 지역 청년들이 그의 도시재건에 앞장섰다"고 설명했다.

    파하르도 시장은 영국 가디언지에 의해 '세계 5대 혁신시장'으로 뽑히기도 했다.

    세계도시정상회의 취재차 메데진을 방문한 전 세계 언론인들과 찾은 '코무나13'은 한 마디로 상전벽해였다. 40도 내외의 가파른 경사길에는 에스컬레이터가 대중교통수단으로 건설됐고 우중충한 마을 건물들은 울긋불긋 벽화들로 채색됐으며 마을길은 깔끔하게 재단장됐다.

    소규모 광장에서 만난 캘리(Kelly, 28세 여성)씨는 "주민 교통수단으로 엘리베이터가 생겨 통행은 물론 물품운송도 편해지고 전체적인 삶의 질이 향상됐다. 동네 분위기가 짱(chevere!)"이라고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고산마을 주민 캘리씨와 인터뷰한 작은 광장. 곳곳에 있는 작은 공간은 소통의 장으로 공연장으로 활용된다. (사진=이재기기자)

     


    ◇ 안데스 고산 엘리베이터가 효자…"일자리 많이 창출"

    엘리베이터와 함께 가장 눈에 띈 부분은 산비탈 마을 곳곳에 조성된 자그만 공간들 즉 '지역 문화중심'이었다.

    교통컨설팅 업체 대표 박용남씨는 현장에서 "힙합과 그래피티로 마약 치유를 꾀하고 특히 사람들 문화활동의 근간이 되는 '오픈 스페이스'를 많이 조성한 게 변화의 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가까이 있는 사람은 기쁘게 하고 멀리 있는 사람은 찾아오게 한다'는 공자의 '근자열원자래(近者悅遠者來)'를 인용, "주민들이 행복해야 관광객도 찾아오는 사례라 할 만큼 주민들의 행복감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박 소장은 꾸준히 메데진의 혁신사례를 연구해왔다.

    코무나13 곳곳에 30~50평 안팎의 작은 공간들이 조성돼 지역사회 소통의 장이나 힙합공연장으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마약굴에서 관광지로 바뀐 고산마을에서는 사시사철 힙합을 비롯한 다채로운 공연이 열린다. (사진=이재기 기자)

     

    도시가 바뀌자 사람들이 찾아 들기 시작했다. 2011년 재탄생한 고산 빈민가에는 월 3만명 연간 40만명에 가까운 관광객들이 찾고 있고 주민 수입도 높아져 '도시재생→범죄감소→주민 삶의 질 향상'이란 선순환 구조가 구축됐다.

    주민 만족도는 상승하고 있다.

    '베레카스'(Berracas)라는 이름의 장신구 가게를 운영하는 제니퍼 시에라(19세 여)는 "에스컬레이터가 생기고서 동네가 아주 좋아졌다"며 "우리 가족을 먹여살리는 가게를 운영할 수 있지 않으냐"고 웃었다.

    캘리(Kelly)씨는 "사람들이 오지 않던 산동네에 엘리베이터가 교통수단으로 생기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어 여행가이드 일을 하고 있다. 일자리가 많이 창출되고 경제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메트로케이블·트랜스미케이블은 또다른 혁신

    메데진 곳곳에서는 이런 류의 도시혁신이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고 그 중심에는 산악지형을 손쉽게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교통수단 건설이 자리잡고 있다. 대표적 사례는 △산토도밍고 고산마을의 메트로케이블과 △수도 보고타 남부 고산지대(3000m)에 설치된 트랜스미케이블 등이 꼽힌다.

    교통수단을 매개로 한 도시재생이 우수 혁신사례로 꼽혀 2016년 리콴유 세계도시상을 수상했고, 멕시코 몬트레이와 서울시, 인근 남미국가들에서도 '메데진표 친환경 교통수단'을 도입했거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세계도시정상회의 참석차 메데진을 방문한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이재기 기자)

     

    박원순 시장이 11일 메데진의 혁신사례인 고산마을에서 한 시민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이재기 기자)

     

    11일 열린 세계도시정상회의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은 코무나13을 찾아 "동네의 놀라운 변화를 목격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박 시장은 "굉장히 높은 산동네인데다가 마약이라든지 범죄가 심각했는데 주민 주도로 벽화가 그려지고 대중교통으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면서 완전히 동네가 변모했고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마을경제가 살아난 도시재생의 성공사례"라고 평가했다.

    그는 서울시 산동네 개발 계획에 대한 질문에 "삼양동이라든지 수유리 산동네는 주민들을 위한 모노레일이라든지 엘리베이터라든지 이런 게 놓이고 벽화가 많이 그려지면 얼마든지 관광마을로 등장할 수 있다"며 달동네의 재생식(式) 개발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