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한국수출입은행 제공)
질병 치료나 가족을 돌보기 위해 오래 자리를 비워야 할 처지지만 유급휴가는 한정돼 있어 어려움을 겪는 직장 동료에게 본인의 휴가를 기부하는 ‘휴가나눔제도’가 금융 공기업들에서 확산되고 있다.
신용보증기금 노사는 이달 초 휴가나눔제도를 도입하기로 합의하고 앞으로 세부 시행방안을 논의해 나가기로 했다.
앞서 지난 4월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을 시작으로 중소기업은행, 기술신용보증기금 노사가 같은 제도를 도입했다.
전국금융산업노조 한국수출입은행 지부의 신현호 지부장은 “질병으로 오래 치료를 받고 있는 동료가 병가 기간도 끝나 복직해야 하지만 건강상 업무를 수행할 수 없어 퇴직이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면서 “이 동료를 돕기 위해 제도 도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수은은 시간외 근무를 하면 수당을 지급하지만 국책은행이어서 수당 지급액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수당으로 충분하지 않은 경우 보상 휴가(대체 휴가)를 주고 있다.
수은은 직원들이 이런 휴가를 모아 어려운 동료에게 기부해 당사자가 정상급여를 받으며 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직원들이 한달이나 1년 동안 정상 근무를 하면 근로기준법상 회사측이 주도록 돼 있는 연월차 휴가(유급)는 기부대상이 아니다.
이에 대해 수은 노조 신현호 지부장은 “제도 도입을 위해 사측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연월차 휴가도 기부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봤다”면서 “노사 양측이 법률 자문을 받아본 결과 여러 견해가 있었으나 연월차 휴가란 ‘일신전속성(한 사람에게 귀속되는 성격)’이 강하고 다른 사람이 양도받았을 때 해를 넘겨 사용할 수 있느냐는 문제 등이 제기돼 기부대상에서 제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휴가나눔제도는 프랑스에서 2011년 암 투병중이던 9살 마티 제르맹을 돕기 위해 아버지에게 직장동료들이 유급휴가를 모아준 데서 시작됐고 이후 유급휴가를 기부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법제화(일명 ‘마티법’)까지 이뤄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휴가나눔제가 가능하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이 2015년 12월 11일 김관영 의원(현 바른미래당 소속) 등 11명의 발의로 국회에 제출됐지만 제대로 심사가 이뤄지지 못한 채 19대 국회가 마무리되면서 자동폐기됐다.
이 법안은 노사가 합의하면 근로자가 근로기준법상 규정된 ‘연차 유급휴가’를 다른 근로자에게 무상 양도해 사용할 수 있는 제도(휴가 나눔제)를 운영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하는 내용이었다.
국내에선 법제화가 되지 않아 공공기관에선 연월차 휴가를 제외하는 제한적 방식으로 도입되고 있으나 휴가나눔제는 앞으로도 더 확산될 전망이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노조 관계자는 “지금 휴가나눔제를 노사협상 의제로 공식 상정하지는 않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집행부에선 이 제도에 대해 도입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필요하다면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관련 규정 검토 등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금융공기업외에 민간 기업에서도 휴가 나눔제 성격의 제도가 운영되는 곳이 있다.
롯데마트는 2015년 3월부터 ‘연차나눔제’를 도입해 직원의 연차 휴가를 다른 동료에게 기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그동안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직원들의 사례가 몇 차례 사내에 알려진 일이 있었고 노조의 건의에 따라 회사가 제도를 도입하게 됐다”면서 “지금까지 16명의 직원이 250명으로부터 414일의 연차를 기부받아 사용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