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정문 광화문(光化門) 현판 제작 방식을 두고 9년간 이어진 논란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2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오는 14일 문화재위원회에 광화문 현판 문제를 보고한다"며 "글씨에 동판을 붙일 것인지 여부와 단청 방법 등에 관한 의견을 나눌 것"이라고 말했다.
광화문 현판은 문화재계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 중 하나였다. 2010년 광복절 광화문 복원에 맞춰 내건 현판에서는 몇 개월 만에 균열이 일어났고, 문화재청은 그해 연말에 전격적으로 교체를 결정했다.
조선 법궁의 정문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광화문 현판과 관련해선 온갖 의견이 쏟아졌다. 첫 쟁점은 글씨를 한글과 한자 중 무엇으로 할지, 서체는 어떻게 할지였다.
문화재청은 2012년 12월 한글 현판을 달아야 한다는 한글단체 주장을 물리치고 '복원'이라는 단어 의미에 맞게 고종 중건 당시 모습대로 훈련대장 임태영이 한자로 쓴 글씨를 새기기로 했다.
또 다른 암초는 색상이었다. 문화재청은 색상도 기존처럼 흰색 바탕에 검정 글씨로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전문가 자문회의를 거쳐 2014년 6월 이를 확정했다.
그런데 2016년 이후 새로운 사료들이 잇따라 알려지면서 문화재청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졌다. 결정적 자료는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있는 1893년께 사진이었다. 이 흑백사진을 보면 바탕이 글자보다 어둡다는 사실이 확연했다.
이어 일본 다이이치 은행이 1906년과 1908년에 발행한 화폐, 안중식이 1915년에 그린 그림 '백악춘효'(白岳春曉) 등을 근거로 검정 바탕이 맞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결국 문화재청은 광화문 현판 색상과 관련된 논의를 원점으로 돌렸고, 중앙대 산학협력단과 함께 촬영 시험을 해 검정 바탕에 금박 글씨로 바꾼다고 지난해 1월 발표했다.
광화문 현판 재제작은 작년 연말에 궁궐 조성 과정을 상세히 적은 기록물인 '영건일기'에서 '묵질금자'(墨質金字)라는 문구가 발견되면서 또 다른 변수가 생겼다.
석조미술사 전공인 김민규 씨는 이 내용을 학계에 소개한 뒤 "경복궁 정전인 근정전은 나무판에 글자를 새기고 글자와 같은 형태의 동판을 덧댄 것으로 보이는데, 광화문도 동일한 방식으로 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이번 문화재위원회 회의를 앞두고 두 가지 실험을 했다. 이를 통해 전통 안료로 단청하고, 동판을 만들어 글씨에 붙이는 방안을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문화재위원 의견을 묻기로 했다.
궁능유적본부는 지난해 4월부터 1년간 현대 안료와 전통 안료를 현판에 칠한 뒤 얼마나 안정적인가를 비교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두 안료 사이에 아주 큰 차이는 없다"며 "현대 안료는 조금 반짝거리면서 밝은 느낌이고, 전통 안료는 온화하다는 인상을 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통 안료에서 황색과 주홍색은 색이 조금 잘 빠지는 것 같다"면서도 "광화문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인 만큼 전통 안료 단점을 보완한 뒤 사용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글씨 동판 제작과 관련해서는 "덕수궁 중화전 현판 이후 100년 넘게 동판 글씨를 현판에 붙인 적이 없다"며 "옻과 밥풀을 이겨 발라 접착시키고 여러 차례 색상을 입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판 제작 방침은 가닥을 잡았지만, 완성한 현판을 언제 걸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와 맞물려 광화문 앞 월대를 발굴하고 복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광장 완공 이전에는 일반 시민이 광화문에 접근하기 어려워 현판을 걸어도 큰 의미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게다가 행정안전부가 서울시에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를 서두르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2021년 5월 완공이 가능할지도 불투명해졌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재위원회가 전통 안료 사용과 동판 글씨 제작을 확정하더라도 현판을 완성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릴 것"이라며 "적절한 시점을 찾아 현판을 걸 계획"이라고 했다.
현재 재제작 현판은 경복궁 서쪽 부재 창고에 있으며, 글자를 깎는 각자(刻字)를 마치고 단청만 남은 상태다. 새로운 현판은 지금 광화문에 있는 현판보다 좁고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