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방문한 서울시 관악구 한 아파트 현관문. 이곳에서 지난 7월 31일 탈북민 모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현관문에는 지난 4월을 끝으로 더 이상 표기되지 않은 '도시가스 검침표'가 붙어있다. (사진=서민선 기자)
"얼굴을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은 없어요. 아이가 가끔 집에서 고성을 질러서 안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만 알았죠. 주변과 전혀 교류가 없었어요. 소식을 듣고 너무 안타까웠죠"
14일 오전 탈북민 한모(41)씨가 아들 김모(6)군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된 서울 관악구 은천동 임대아파트를 찾았다. 아파트 주민 서모(60)씨는 모자에 관해 묻자 이렇게 말했다. 철저히 이웃과 단절된 삶을 살았던 모자의 죽음에 서씨는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모자가 살던 아파트 입구에는 '도시가스 검침표'가 붙어 있었다. 올해 4월이 마지막으로 적혀 있었다. 아파트 현관 우편함에는 '2019년 8월 청구분 도시가스 지로영수증 고객용(당월+독촉)'만이 덩그러니 꽂혀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한씨와 김군의 시신은 이미 상당히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다. 지난달 31일 수도 검침원이 계량기를 확인하러 갔다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관리사무소에 얘기하면서 시신이 뒤늦게 발견됐다.
비참한 죽음을 맞은 탈북 모자의 기구했던 삶도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탈북민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한씨는 한국에 오기 전 중국에서 강제 결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 여성들의 경우 접경지역에서 중국인들에게 팔려가는 경우가 많은데, 한씨도 이런 식으로 팔려가 중국 남성과 강제 결혼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에서 첫째 아들을 하나 낳은 한씨는 돈을 벌기 위해 홀로 한국으로 넘어와 하나원에 들어갔다.
2009년 말쯤 퇴소한 뒤 서울 관악구 임대아파트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한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선정돼 정부로부터 생계비를 지원받다가 직장을 구하며 수급자에서 벗어났다.
이후 한씨는 중국에 있는 아들을 데려오려 했지만 실패하고, 중국인 남편만 한국으로 오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씨는 남편을 따라 경남 통영으로 이사를 했고, 둘째 아들인 김군을 낳았다.
하지만 경기 불황으로 조선업이 타격을 받자 한씨 가족 모두는 다시 중국으로 넘어갔다. 이들은 중국에서 사업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한씨는 김군만 데리고 다시 귀국했고, 처음 거주하던 관악구로 돌아왔다.
한씨는 한국에 돌아온 뒤로 상당히 오랫동안 고립된 생활을 해 온 것으로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경찰 관계자는 "올 초에 한씨가 관내로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접촉을 해보려고 했더니 한씨가 '구청이든 경찰이든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했다"고 전했다.
이어 "한씨가 아들 때문에 본인이 탈북민이라는 것이 주변에 소문나는 것을 꺼려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숨진 김군이 평소 몸이 안 좋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탈북자 동호회 관계자는 한씨에 대해 "아들(김군)이 많이 아팠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일을 구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한씨가 사망하기 두 달 전 마지막으로 하나원 동기들과 연락을 했었는데, 동기들은 한씨가 연락이 끊기자 중국으로 다시 간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씨 모자가 '아사(餓死)'로 추정된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경찰은 사인에 대해 신중한 모습이다.
경찰 관계자는 "타살이나 자살 정황이 없어 정확한 사인을 확정할 수 없다"면서 "단순히 집에 음식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는 사망 원인이 굶주림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