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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문이 열린다', 언젠가 남의 도움이 필요한 때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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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의 문이 열린다', 언젠가 남의 도움이 필요한 때가 온다

    [노컷 인터뷰] '밤의 문이 열린다' 유은정 감독 ①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로의 한 카페에서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 유은정 감독을 만났다. (사진=황진환 기자)

     

    ※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래부터 유령에 관심이 많았다. 돌아보니 영화에 유령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걸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나온다고 해도 주인공을 괴롭히거나 방해해 쫓아버려야 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게 대부분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미술 작품에서 '요새는 죽지 않으려고만 하지 살아있는 사람이 없어'라는 대사를 만났고, 비슷한 정서를 가진 누군가가 있다는 데 위안을 얻어 시작했다.

    지난 15일 개봉한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는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Korean Academy of Film Arts) 출신인 유은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유령, 죽음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그리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본인의 취향이 반영된 작품이다. 내가 사는 사회와 사람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어서, 관객에게도 재미있게 다가올 지점이 많다고 생각해 공포·판타지라는 장르를 좋아한다고.

    유은정 감독은 '밤의 문이 열린다'를 "인간관계에 서툴고, 사회가 얘기하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혜정(한해인 분)이 주인공이다.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외롭게 살다가 어느 날 유령이 되어 눈을 뜨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개봉을 6일 앞둔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로의 한 카페에서 유은정 감독을 만났다. 예상보다 무섭고 오싹하게 봤다고 했더니 유 감독은 "다행이다!"라며 웃었다.

    ◇ 2015년 겨울에 시작해 2019년 8월에 관객을 만나다

    '밤의 문이 열린다'는 유 감독의 평소 관심사와 취향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유령에 관심이 많아, 유령이 나오는 '백귀야행'이란 만화도 좋아했고 영화도 곧잘 봤다. 그런 콘텐츠를 마주할 때마다 아이디어와 힌트를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었다.

    2015년 여름, 김희천 작가의 영상예술 작품 '바벨'을 봤다. 극중 아버지가 쓰러졌는데, 당시 스마트 시계를 차고 있어서 어디서 어떻게 움직였는지 생체 지도가 펼쳐지는 내용이었다. 거기서 '요새는 죽지 않으려고만 하지 살아있는 사람이 없어'라는 대사를 만났다. 유 감독은 그 대사를 듣고 비로소 ' 나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들과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정서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15일 개봉한 영화 '밤의 문이 열린다'는 유은정 감독의 장편 연출 데뷔작이다. (사진=영화사 리듬앤블루스)

     

    초고는 그해 겨울 쓰기 시작했다. 한동안 그대로 묵히다가 2017년 2월에 2고로 시나리오를 수정하기 시작했고, 그해 7월 제작 지원을 받게 돼 10월부터 11월 중순까지 촬영했다. 2018년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프리미어 상영 후 관객상을 받았다. 최종 수정을 거쳐 관객들을 만난 건 올해 8월이니 기획에서부터 2년이 좀 안 걸렸다.

    부천영화제 버전에서 현재 개봉 버전에서 제일 크게 바뀐 건 사운드 믹싱이다. 영화 안에 흐르는 분위기를 좀 더 풍부하게 하고, 대사도 더 잘 들릴 수 있도록 사운드에 신경 썼다. 내용이 달라진 건 없었다. 워낙 세밀하게 계획했고, 이미 합의된 컷만 촬영했기 때문이다.

    유 감독은 "콘티 단계부터 우리가 쓸 수 있는 시간에 맞춰 컷 수와 회차를 제한했다.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기에, 현장에서 많이 아쉽진 않았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가지치기 된 부분들이 있다"라고 말했다.

    '밤의 문이 열린다'에는 밤 장면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영화의 80~90%에 달할 정도다. 유 감독은 "한정된 예산과 인원 안에서 조명팀이 조명을 치기 위해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했다. 되게 신경을 많이 써 줬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기술팀 스태프들도 딜레이(delay)를 만들지 않기 위해 집중해 주셨고, 배우님들도 저녁 6시에 모여 다음날 5시까지 촬영하는 와중에도 피곤한 내색을 하지 않고 집중해서 해 주려고 노력해서 정말 고마웠다"라고 밝혔다.

    장르가 공포·판타지인 만큼, '이만큼 무섭게 하겠다!' 하는 포부가 있었냐고 묻자 "공포 영화에도 조류가 많은데, 제가 포커스를 두는 부분은 죽음을 어떻게 다루고 유령을 어떤 존재로 설정하는지였다. 그때 참고한 게 영화 '퍼스널 쇼퍼'나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들이었다"라고 답했다.

    유 감독은 "기본적으로 현실감과 일상성이 있는 공간에서 기이한 순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을 맞닥뜨리는 것을 잘 표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놀래켜 주겠다거나 무섭게 만들고 싶다는 것보다는. 우리가 일상에서 '어?' 하고 다른 느낌을 받을 때가 있지 않나. 그게 사실은 이런 게 아닐까 이야기하는 방식으로"라고 부연했다.

    '밤의 문이 열린다'는 유령처럼 살던 혜정(한해인 분)이 어느 날 진짜 유령이 되어, 거꾸로 흐르는 유령의 시간 속에서 효연(전소니 분)을 만나게 되는 블루지 판타지 드라마다. (사진=영화사 리듬앤블루스)

     

    ◇ 성인 여성과 여자 어린이의 소통과 우정

    '밤의 문이 열린다'에서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유령이 된 혜정은 생전에는 마치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인다. 말수도 적고, 자신을 드러내는 데도 서툴며, 굳이 그러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독특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나 하나 감당하기도 힘드니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는 정서는 동시대인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다.

    "오늘은 이런 생각이 강하게 생겼다가도 내일은 다른 생각이 강해지지 않나요? 저도 그랬던 때가 있어요. 주변 친구들과 대화할 때도 그런 이야기가 공통적으로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혜정이란 인물이 사실 독특해 보이기도 하지만, 시나리오 쓸 때부터 여러 사람의 경험이 모여서 만들어진 캐릭터라서 공감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속) 시간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가는 거라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는 순간이 많지는 않아요. 대체로 (혜정의) 내레이션을 통해 정서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제 안에서의 (혜정) 설정은 아마도 어릴 때 부모님과 같이 살지 못했고, 나이 차이 나는 큰오빠가 가장으로서 혜정과 다른 형제자매를 키웠다는 거였어요. 그 안에서 혜정은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고 살았고요. 얼른 어른이 되고 싶고 나 자신의 공간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죠.

    혜정은 상처받고 싶어 하지 않아요. (혼자 사는) 방은 안정된 물리적인 공간이기도 하고, 심리적으로 방어하는 공간이기도 해요. 혜정이 주변을 돌아보면서 마음을 여는 이야기라서, 초반 내레이션은 아직 마음이 무르익지 않고 어린 시절에 묶여 있는 혜정의 모습을 보여줘요."

    심지어 혜정은 처음에는 자기가 유령이 된 줄도 모른다. 유 감독은 "혜정이가 자기가 어떻게 된 건지 파악하기 어렵고, 유령으로서 어떤 감각을 좀 착각한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라며 "혼수상태에 있는 유령이다. 삶도 아니고 죽음도 아닌 곳에 있는"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 세계가 낯설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처럼 생각했다고 봤다"고 덧붙였다.

    또한 혜정은 모르는 새 유령이 되고 나서, 자기 존재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이가 없어졌을 때 비로소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연히 만난 꼬마 수양(감소현 분)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혜정이 살아있을 적 우연히 골목에서 마주친 수양은 혜정에게 도와달라고 하지만 혜정은 두려움에 자리를 피하고 모른 체한다. 반대의 상황에서 수양은 무서워하면서도 자기에게만 들리는 혜정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다.

    영화 안에서 유령이 된 혜정(한해인 분)의 말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아이 수양(감소현 분)뿐이다. 위부터 각각 혜정, 수양 역을 맡은 배우 한해인과 감소현 (사진=영화사 리듬앤블루스)

     

    유 감독은 "의도한 게 맞다. 혜정은 다른 사람 도움받는 것도 도움 주는 것도 너무 신경 쓰여서 모든 걸 차단했는데, 사실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가 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넣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혜정은 자기 혼자서 안정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 주변이 불안하고 불행할 때 혼자 안정된 삶을 사는 건 불가능하며, (혜정 역시)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순간이 온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혜정과 수양은 서로 마음을 닫지 않고 활짝 열었기에 소통할 수 있었다. 수양은 일 때문에 늘 나가 있는 아빠 대신 할머니와 같이 살고, 엄마를 향한 그리움을 안고 사는 아이다. 처음 혜정과 대화 나눌 때 엄마냐고 물었던 이유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만약 엄마가 제 곁에 오면 '맨날 웃어주고 안아줘야지' 하고 다짐하는 씩씩하고 따뜻한 면모를 갖고 있기도 하다.

    유 감독은 "수양이는 좀 방치된 캐릭터라고 생각해서 엄마가 없다는 설정을 했다. (엄마를 만나면 맨날 웃어주고 안아주겠다는) 그 대사는 어른들한테는 유령이 무섭고 사람들 세계에 있으면 쫓아낼 대상이지만, 아이한테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유령으로 오더라도 그게 되게 반갑고 기뻐서 풀어줄 수 있는 존재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넣었다"고 설명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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