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와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및 관련 법 개정 등 이른바 노동계 3대 이슈가 20대 마지막 정기 국회인 9월 국회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여야·노사 대립과 국회 일정을 감안하면 연말까지 법 개정을 둘러싼 진통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경총 "정부, 유연근무 확대하라"…9월 국회 앞두고 선수(先手)치고 나서한국경영자총연합회(경총)는 20일 정부를 상대로 연장근로 요건을 완화하고 재량근로시간제 대상을 확대하는 등 유연근무제를 확대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앞서 여야는 주52시간제 도입에 따라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까지 확대하기로 이미 잠정 결론을 내린 바 있다. 또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도 비록 최종 의결에는 실패했지만, 같은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보수야당이 선택근로제와 재량근로제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동반처리하자고 추가로 제안하면서 법 개정이 늦춰졌다.
이 때문에 경총은 "조속한 입법을 통해 유연근무제를 법률로 보완, 확대하는 것이 근본적 방안"이라면서도 "국회 입법이 지연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입법 시까지는 정부가 시행규칙, 고시 개정 등 자체적으로 할 수 있는 정책수단을 통해 기업 활동을 지원해줘야 한다"며 유연근무제 확대를 요구했다.
하지만 경총의 요구에 대해 정부는 미온적인 반응이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경총이 제안한 사안을 검토는 하겠지만, 우선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법안을 통과시키는 일이 급선무"라며 "만약 시행규칙 등을 바꾸더라도 법 개정과 패키지로 다뤄야지, 법에서 정한 것을 정부가 마음대로 바꾸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경총의 요구사항 중 하나인 중소기업에 대해 주52시간제 시행시기를 늦추는 방안에 대해서도 같은 날 노동부 임서정 차관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주 52시간제를 통으로 연기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잘라말하기도 했다.
특히 경총은 우선 요구사항으로 한시적 인가연장근로 허용범위를 '탄력적 근로시간제나 선택적 근로시간제로 대응이 어렵거나 사업상 불가피한 사정' 등으로 확대하고, 재량 근로시간제 허용대상에 '기획업무형 업무'를 추가할 것을 꼽았다.
사실상 노동시간 상한선 없이 무제한 노동이 가능한 인가연장근로·재량근로제의 요건을 추상적인 표현으로 대체하라는 요구는 기존의 유연근무제 논의와 궤를 달리하는 수준이다.
이처럼 경총이 강도 높은 요구안을 내놓은 배경에는 9월 국회가 본격적으로 유연근무제도에 관한 논의를 재개하기 전에 일본 수출규제 대응 등을 명분으로 경영계가 선수를 치고 나온 것으로도 읽힌다.
아울러 주52시간제가 전면 확대되기 시작했지만,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고려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안이 차일피일 늦춰진 데 따른 위기감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9월 국회까지 떠밀려온 노동 3대 이슈…통과 가능성 높지 않아비단 탄력근로제 외에도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과 ILO 협약 비준에 관한 법 개정안 등 이른바 '노동계 3대 이슈'가 국회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는 자칫 노동개악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어 국회가 열려도 법 통과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탄력근로제 등 유연근무제 확대안의 경우 경총이 나섰듯이 경영계 요구사항 0순위로 꼽힌다.
하지만 노동계는 주52시간제의 애초 취지인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를 퇴색시킬 뿐 아니라, 확대 수준에 따라서는 제도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최저임금 구간설정과 결정의 이원화로 대표되는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도 임시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해 9월 국회로 밀려났고, 내년도 최저임금도 현행체계를 유지한 채 결정됐다.
하지만 노동계는 사전 의견수렴도 없이 정부가 일방 추진한데다,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새로 포함된 '고용에 미치는 영향'과 '경제 상황'이 자칫 임금 인상의 발목만 잡는 핑계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 숙원사업이던 ILO 핵심협약 비준에 관해서는 경영계가 해고자, 실업자의 노조 가입 허용 등을 짚어 노사 갈등이 증폭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게다가 노동계 역시 관련 법 개정안 가운데 경영계 요구사항이 반영된 바람에 오히려 ILO 협약을 위반하고 노동권을 제약하는 '독소조항'이 포함됐다고 비판하고 있어 노사 갈등이 접점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민주노총 김형석 대변인은 "경총의 유연근무제 입법 요구는 우리나라 고질적인 문제인 후진적인 장시간 노동체제를 유지할 뿐 아니라 노동법 근본취지까지 무너뜨리며 장시간 노동문제를 더 확대하자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또 "경총은 일본의 유연근무제를 도입하자고 하지만, 최근 일본조차 저출산 고령화 문제로 생산인구가 줄어들자 장시간 노동 규제를 강화하고 임금을 인상하는 등 노동체제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며 "경총은 일본조차 포기한 방식을 도입해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노동 3대 이슈에 대한 법 개정 국면에 대해서도 "현재는 교섭, 노정 간 협의로 풀릴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며 "민주노총은 11월 9일 전태일 열사 기일 노동자대회를 기점으로 역량을 모아 노동개악 흐름을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9월 국회가 열리더라도 인사청문 국면에 밀려 여야 대립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고, 만약 국회가 정상 진행되도 통상의 관례대로 내년 예산안 심사가 우선 진행될 가능성도 높다.
따라서 실제 노동 3법 개정 작업은 오는 10월이나 11월 무렵까지 지연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