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락원(사진=연합뉴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23일 명승 제35호 성락원이 지닌 가치를 원점에서 재검토해 국가지정문화재 유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성락원 '명승지정,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정 청장은 "성락원 지정 과정에서 나타난 과오를 반성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청장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별서(別墅) 정원 21곳 가치를 면밀히 조사하겠다"고 덧붙였다.
성락원은 1992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378호에 지정됐고, 2008년 명승으로 재조정됐다. 문화재 지정 당시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 별장이라는 점이 강조됐으나, 이조판서 심상응은 실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돼 논란이 일었다.
아울러 문화재 지정 과정에서 가치가 크지 않다는 전문가와 지자체 의견이 무시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토론회에서 발제자인 이원호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성락원이 고종을 모신 내관인 황윤명이 1884년 이전에 조성한 정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황윤명 문집인 '춘파유고'에 수록된 시 '인수위소지'(引水爲小池)가 성락원 영벽지 바위 글씨와 일치하고, 1884년 갑신정변 당시 명성황후가 혜화문을 나가 황윤명 집을 피난처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설명했다.
토론자들은 성락원 고증 부실과 지정 과정상 나타난 문제를 비판하면서도 성락원이 명승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엇갈린 견해를 나타냈다.
명승 지정 기준은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 저명한 경관의 전망 지점, 역사문화경관적 가치가 있는 경관, 저명한 건물 또는 정원·중요한 전설지 등이다.
2005년부터 2년간 문화재위원을 지낸 정기호 전 성균관대 조경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전통 정원은 매우 특이하다"며 "성락원은 전형적 문인 정원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박철상 한국문헌문화연구소장은 "황윤명은 생전에 금강산 해악유기라는 책을 냈는데, 조선 출판문화사에서 살아 있을 때 책을 출간하는 것은 특이한 사례"라며 "정조 시대부터 문화가 민간으로 내려오는데, 황윤명이 거의 마지막 단계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추사 전문가인 그는 성락원에 남은 글씨들을 조사한 뒤 일부 글씨는 황윤명 시기에 쓴 것으로 추정되고, 다른 글자는 이전에 새겨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다만 '장빙가 완당' 글씨는 김정희 작품으로 확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겨우 찾은 것이 환관 피난처냐"라며 "현대에 복원 사업을 해서 요정으로 만든 곳"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북묘비를 근거로 갑신정변 때 명성황후가 몸을 피신한 곳은 북묘라고 주장했다.
이영이 상명대 박사는 일부 학자가 명승 지정과 관련 용역을 독점했다면서 주변 경관이 훼손됐기 때문에 명승 지위를 유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문화재청은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찰한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성락원 명승 지정과 명칭 변경 등을 확정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