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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 소통' 나선 홍남기 "克日은 시대적 소명"

28일 페이스북에 첫 글 올려…"1986년말 공직 시작 첫 현안이 대일무역역조 개선"
"한 세대전 숙제 풀지 못해 반성…밀린 숙제 꼭 해내자는 엄중한 소명의식"
"일본 조치로 인한 어려움 다 이겨낼 것…우리 국민엔 위기 극복 DNA 있어"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8일 페이스북에 처음으로 글을 올렸다. 일본의 백색국가 제외 조치가 시행된 이날 홍 부총리가 올린 글의 주제는 역시 '극일'(克日)이었다.

홍 부총리는 "1986년말 경제기획원에서 수습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했을 때 가장 큰 현안은 대일무역역조 개선이었다"며 "소재·부품·장비 자립화를 위한 대책 마련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고했다.

이어 "거의 한 세대가 지나 경제부총리로, 이번 일본의 경제적 보복 조치를 맞이했는데, 한 세대 전 그 숙제를 풀지 못해 소재·부품·장비 자립화 대책을 다시 세워야 하는 지금의 현실을 정말 반성하고 통회한다"고 털어놨다.

그는 "2000년 이후 한국은 누적기준 7천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4500억 달러의 누적 적자를 보였다"면서 "소재·부품·장비 등 중간재의 대일의존도가 너무 높다 보니 소위 전형적 '가마우지 경제' 형태를 보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자립화는 시대적 소명"이라며 "국내 기업 간 분업적 밸류체인이 제대로 착근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부총리는 "한 세대가 지나도 풀지 못한 밀린 숙제를 이번에는 꼭 해내자는 엄중한 소명 의식과 비상한 각오로 이달 초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내놨다"면서 "이번만큼은 수요-공급기업 간 수직적 협력모델은 물론, 수요-수요기업 간 수평적 협력모델도 확실하게 구축해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우리는 일본의 이번 조치로 인한 어려움을 다 이겨낼 것"이라며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극복,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등 우리 국민들에게 위기를 극복해내는 특유의 DNA가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위기라는 단어는 위험과 기회로 구성돼 있다"면서 "이는 위기라는 것이 극복하지 못하면 정말 위험으로만 남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곧 기회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거듭 강조했다.

홍 부총리는 "10년 뒤, 한세대 뒤 우리 후배공직자들이 또다시 소재·부품·장비 자립화 대책을 만들기 위해 밤샘하지 않도록 이번에는 확실하고도 가시적인 성과를 반드시 이뤄낼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다음은 홍 부총리가 이날 올린 페이스북 게시물 전문이다.

소재부품장비산업 자립화, 한 세대(Generation) 밀린 숙제하는 시대적 소명

# 1986년말 경제기획원에서 수습사무관으로 공직을 시작했다. 배치받은 부서가 대외경제조정실의 ‘일본경협과’였고, 당시 그 과(課)의 가장 큰 현안은 심각했던 ‘대일무역역조 개선’이었다. 그 무역역조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과도한 대일 소재부품장비 수입의존도였고 당연히 그 해법도 소재부품장비의 대일의존도 완화 및 자립화였다. 비록 몇 개월 근무 후 다른 과로 배치 받아 자리를 옮겼지만 당시 소재부품장비 자립화를 위한 대책 마련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 거의 한 세대가 지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경제부총리로 일하다가 이번에 일본이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이유로 우리에게 가한 경제적 보복조치 상황을 맞게 되었다. 수출관리제도, 국제교역원리, 국제분업구조(GVC) 등 여러모로 보아도 일본의 이번 조치는 결코 정당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장차 양국간 교역구도, 나아가 자유무역 및 국제분업체계를 훼손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일본이 사안이 생길 때마다 자의적 수단을 동원, 상대국 급소를 조여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일본이 언급한 ‘신뢰’라는 단어가 다시 떠오른다.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자국을 향한 이러한 ‘신뢰훼손’ 인식을 어떻게 감당해내려는지... 일본 걱정에 앞서 개인적으로 한 세대 전 그 숙제를 풀지 못해 소재부품장비 자립화 대책을 다시 세워야 하는 지금의 현실을 정말 반성하고 통회하면서 말이다.

# 2000년 이후만 보더라도(2000~2018) 한국은 누적기준 약 7,000억불 규모의 무역흑자를 기록했지만 일본에 대해서는 약 4,500억불의 누적적자를 보였다. 소재부품장비 등 중간재의 대일의존도가 너무 높다보니 소위 전형적인 ‘가마우지 경제’ 형태를 보인 것이다. 탄탄한 국제분업구조를 다져가야 교역에 따른 교역국 모두 후생이 증가한다는 것은 경제의 기본원리이나 그 고리를 언제나 자의적으로 끊는 것을 무기화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일본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소재부품장비 수입구도를 근본적으로 바꿔 나가야 하는 절대절명의 이유이다.

# 정부는 지난 8.5일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대책’을 발표했다. 한 세대가 지나도 풀지 못한 밀린 숙제를 이번에는 꼭 해내자는 엄중한 소명의식과 비상한 각오로 금번 대책을 마련했다. 일각에서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면 또 그 대책이 흐지부지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제기한다. 특히 현장에서 소재부품장비를 자체 개발해도 대기업 등 수요기업이 사주지 않는 등 국내 밸류체인구조가 탄탄하게 형성되지 않으면 자립화 시도가 결코 쉽지 않다는 말을 하곤 한다. 이번 만큼은 달라져야 한다. 말로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금번 소재부품장비의 자립화가 확실하게 추진되도록 이번에 실행력을 담보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자 한다. 소재부품장비 특별회계의 신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생태계 구축, 소재부품장비경쟁력위원회 신설 등 소위 ‘3종 세트’가 바로 그것이다.

# 먼저 정부가 지난 번 발표한 대책은 강력한 재정지원, 민간투자, 기업간 협력 등을 통해 100대 핵심전략품목에 대해 5년내 공급안정화를 이루고 나아가 소재부품장비의 자립화 및 관련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획기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번 대책, 확실하게 추진해 나갈 것이다. 그 실행력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3종 세트는 다음과 같다. ①먼저 앞으로 정부 지원이 흐지부지되지 않도록 내년 국가예산에 소재부품장비 관련 특별회계를 신설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매년 2조원 이상의 재정이 지속적으로, 안정적으로 투입될 것이다. ②두 번째, 소재부품장비 관련 수요기업과 공급기업,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간 건강한 상생 생태계가 구축이 관건이라는 말을 현장에서 많이 듣는다. 이번 만큼은 수요-공급기업간 수직적 협력모델은 물론 수요-수요기업간 수평적 협력모델도 확실하게 구축해 추진해 나가고자 한다. 즉 이 분야에 국내 기업간 분업적 밸류체인이 제대로 착근되도록 할 것이다. ③마지막으로 정부가 발표한 대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하나하나 점검하고 또 필요한 추가대책을 지속적으로 마련하여 이번에 반드시 자립화 성과가 나타나도록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경제부총리가 위원장인 ‘소재부품장비경쟁력위원회’를 신설하여 범부처 차원에서 의지를 갖고 실행해 나갈 것이다.

# 지난 6월말 일본 정부가 발표한 '2019년 연례 불공정무역보고서'에는 ‘안전보장을 이유로 수출제한의 예외를 쉽게 인정할 경우 자유무역질서를 형해화(形骸化)시켜 전 세계 경제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 직후 일본이 의장국으로서 오사카에서 개최한 'G20 정상회의의 정상선언문'에는 ‘비차별적인 무역환경의 조성’을 각별히 강조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 두 가지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고 그러한 입장에 반해 취한 금번 대한(對韓) 수출제한 보복조치를 원상회복할 것을 기대한다.

우리는 일본의 금번 조치로 인한 어려움을 다 이겨낼 것이다. IMF 위기 극복,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등 우리 국민들에게 위기를 극복해내는 특유의 DNA가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단순히 어려움 해소, 위기의 극복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차제에 힘모아 다시는 이러한 외부조치로 위협받지 않는 산업구조, 외부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경제구조를 구축해 나갈 것이다.

# 위기(危機)라는 단어는 자세히 보면 위험(Risk)와 기회(Opportunity)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위기라는 것이 극복하지 못하면 정말 위험으로만 남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곧 절대절명의 기회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간 특정 국가에 중간재를 과도하게 의존했던 것은 가공무역, 조립무역 중심의 압축성장이라는 빛 뒤에 감추어진 한국경제의 그림자이기도 했다. 이제 그 그림자를 확 걷어내야 한다.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획기적인 경쟁력 강화대책을 통해 이 분야가 더 이상 한국경제의 아킬레스건이 아니라 제조업 르네상스를 가일층 앞당기는 필수 영양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무엇보다 10년 뒤 아니 한세대 뒤 우리 후배 공직자들이 또 다시 소재부품장비 자립화 대책을 만들기 위해 밤샘하지 않도록 이번에는 확실하고도 가시적인 성과를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이다. 결코 흔들리지 않는 ‘경제강국’으로 우뚝 서도록 몇 차례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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