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감탄고토(甘呑苦吐)'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어떤 일을 대함에 있어 정해놓은 기준이 있다면 다소 불리하더라도 참고 그 기준을 지켜야 하기에 이런 성어가 만들어진 것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관련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감탄고토가 떠오른다.
조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 대한 여야 합의가 지지부진하던 지난달 23일 한국기자협회와 방송기자연합회에는 민주당이 보낸 공문이 한 장 도착했다.
조 후보자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검증하고 해명하기 위한 '국민 소통의 장'을 마련해야겠으니 청문회 개최를 주관해달라는 내용이었다.
해명을 하고자 한다면 그 주체인 조 후보자 측이 주관하면 될 터인데 언론에 부탁을 한 것이다.
기자협회는 요청을 수용하지 않았다. 조 후보자와 관련한 논란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할 언론이 조 후보자의 해명의 장이 될 행사를 주관하는 것은 중립성을 훼손하는 일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2일에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다.
이날과 다음날인 3일까지 열기로 여야가 합의했던 인사청문회가 시작되지 않을 조짐을 보이자 정오쯤 긴급히 이날 오후 3시에 조 후보자의 대국민 기자간담회를 열 테니 참석해달라고 민주당 출입기자단에 요청한 것이다.
청문회를 주관하는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가 산회된 것도 아닌 상황에서 후보자 본인도 아닌 민주당이 주관하는 간담회에, 그것도 불과 3시간 후에 열릴 행사에 참여해달라는 요구였다.
기자단은 질문 시간과 기회가 충분히 보장되기 어렵고, 조 후보자를 제외한 의혹 관계자가 전혀 없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어려운 데다, 각 사별로 관심사항을 질문할 경우 중구난방이 될 것임이 자명했음에도 논의 끝에 30분 늦춘 3시30분으로 민주당의 요구를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전국민적 관심 사안을 언론의 입장만을 내세우며 계속해서 거부만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간담회가 성사되자 민주당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했다.
조 후보자는 질문 시작에 앞서 "밤을 새워서라도 성실하게 답변을 하겠다"고 말했지만 사회를 맡은 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더 이상 새로운 질문이 나올 것 같지 않다며 일방적으로 간담회를 종료시켰다.
같은 질문이 반복되고 있었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조 후보자는 앞선 간담회 시간 동안 핵심 의혹 중 상당 부분에 대해 "모른다"고 답을 하고 있던 상태였다.
이재정 대변인 등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있다. (사진=연합뉴스)
간담회장에 들어와 있던 여당 의원들은 더 가관이었다. 기자가 질문을 하려 마이크를 들자 야유를 보냈다.
조 후보자가 당에 요청을 해왔기에 당이 행사를 주관하지만 최대한 개입을 자제한 채 조 후보자의 말을 들어보겠다던 당초 약속이 깨진 것이다.
간담회를 함께 하던 파트너가 적으로 바뀌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하이라이트는 4일에 일어났다.
한 방송사 취재기자의 질문을 받던 민주당 이재정 대변인이 돌연 기자를 향해 "이러니 기레기라는 말을 듣는 것 아니냐"고 외친 것이다.
해당 기자는 국회 정론관에서 공식브리핑을 마치고 나오던 이 의원에게 '민주당이 의원총회를 위해 신청해 놓은 공간에서 조 후보자의 간담회를 연 것이 국회 내규를 위반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했다.
국회의원이 브리핑이나 기자회견 후 인근에서 백그라운드브리핑(백블, 배경설명)을 위해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취재 방식이다.
특히 이 의원은 당 대변인으로 당의 입장을 기자들에게 전달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대변인 재직기간 동안 수많은 백블에 나선 경험이 있어 이런 상황이 어색할리 없다.
그러나 간담회장 사용과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야당의 스피커가 되는 방식을 하면서, (조 후보자의) 볼펜이 일제니 아니니 이런 것에 집착할 때가 아니지 않느냐"며 "조 후보자 검증과 관련해 국민이 가장 관심을 갖는데 (언론이) 협조를 해줘야 변죽 울리기가 되지 않는 것이다. 기자 여러분 좀 반성하라"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방송 출연을 이유로 급히 자리를 떴다.
이어진 이 의원의 대응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해당 기자와 촬영기자는 이 의원이 이동을 하기에 뒤를 따라가며 질문과 촬영을 이어갔을 뿐인데 "질문에 대답을 미루고 도망가는 모습을 찍어 이런 모습을 특정 인상으로 남기려는 의도가 아니냐"며 영상을 삭제하라는 엉뚱한 고함이 되돌아 온 것이다.
해당 기자는 CBS노컷뉴스와 만나 "자연스럽게 백블을 받기 위해 서 있었을 뿐이고, 이동하기에 따라갔을 뿐인데 그렇게 반응할 줄은 전혀 몰랐다"며 "애당초 그런 의도로 영상을 촬영하지도 않았고, 제대로 된 입장을 듣는다면 그(이동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그대로 보도할 계획도 없었는데 왜 그렇게 대응을 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 (사진=연합뉴스/자료사진)
현장에 있던 이 의원의 보좌진은 "최근 조 후보자 사태 때문에 피곤하기도 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져서 그렇다"고 급히 진화에 나섰지만, 집권 여당 대변인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단어와 상상력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상황이었다.
전날 간담회와 관련한 SBS의 보도내용을 "오보"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던 수석대변인인 홍익표 의원이 자신의 오보 주장을 '왜곡'으로 수위를 낮추고, 이 의원을 대신해서도 긴급히 사과하면서 수습에 나서며 사태가 일단락되나 싶었지만 정작 이 의원은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사건 발생 6시간이 지나서야 페이스북을 통해 "이런 내용의 취재를 이런 방식, 범죄자를 대하듯 쫓아 비겁한 영상을 쓴 것 등은 그런 용어 안에서 비판받고 있는 질 낮은 취재"라며 "질 낮은 취재에 대한 반성 없이 사건을 부풀리며 호도하려는 것에는 더욱 유감"이라고 오히려 비난의 강도를 높였다.
이날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다시 기자를 만난 홍 의원은 "제 입장을 당의 입장으로 봐 달라"며 재차 진화에 나섰지만 이 의원의 입장이 전혀 변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사과를 한들 설득력이 생길리가 없다.
민주당은 원내 제1당이나 집권여당, 공당과 같은 다양한 수식어에 앞서 기본적으로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모인 정당이다.
정치의 역할은 다른 이들의 갈등과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해결책을 마련하는 것이지 기자의 질문이나 언론의 보도행태를 저급한 언어로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언론과 정치권의 관계는 홍 의원의 말처럼 "긴장과 협력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필요할 때는 부르고, 쓴 소리를 할 때는 멀리하고 비난한다면 건강한 정언 관계는 구축되기 어려울 것이다.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