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연합뉴스)
정부가 20여년 지속해온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미국이 시한을 정한 10월23일 이전에 개도국 특혜 포기를 선언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현재 농업 분야에 한해 개도국 특혜를 받고 있다. 이같은 정부의 정책 전환은 지난 7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WTO 개도국 규정을 개정하라는 압박에 따른 대응 조치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한국 등 일부 국가들이 개도국 지위를 악용하고 있다며 날을 세우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계자는 "WTO 개도국 지위 포기 여부를 관계 부처들과 협의 중이며, 관계부처와 좀더 협의해서 국익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등 경제발전 국가들이 개도국 특혜를 누리고 있다며 WTO 개도국 지위를 내려놓으라고 수차례 경고했다. 그렇지 않으면 개도국 대우를 일방적으로 중단하고 무역대표부(USTR)가 독자적으로 제재하겠다며 압박수위를 높였다. 그러면서 WTO에 90일 이내(10월23일까지)에 개도국 지위 규정 개정을 요구했다. 여기에 우리나라와 중국, 멕시코, 터키 등이 거론됐다.
산업부 관계자는 "우리도 (WTO 개도국 지위 포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대 중국·인도' 싸움에서 자칫 '미국 대 한국' 싸움으로 구도가 변질될 수 있다. 이런 것을 감수하면서 개도국 지위를 유지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개도국 지위를 포기해도 우리가 손해보거나 기존 혜택이 없어지는 게 아니다. 한국도 선택할 시점이 됐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1995년 WTO 가입이후 농업분야에 한해 개도국 특혜를 받고 있다. 1996년 OECD에 가입하면서 농업 외 분야에서는 개도국 특혜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우리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면 △쌀 변동직불금 등 1조4900억원(최대 상한선) 규모의 농업 보조금 △쌀을 포함해 고추·마늘·양파·감귤 등 민감한 농산물에 대한 관세장벽을 크게 낮춰야 한다.
산업부 관계자는 "개도국의 경우 농업 생산액의 10% 정도의 보조금을 허용한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보조금이 10%를 넘지 않는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개도국 지위는 실효성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G20 가입국이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다.
세계은행이 분류한 고소득국가이면서 세계 무역량의 0.5%이상을 차지한다. 이같은 '미국 기준'을 적용하면 한국을 포함해 개도국으로 간주되던 30여개 국가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해야 한다. 실제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대만, 아랍에미리트(UAE), 싱가포르, 브라질 등이 개도국 특혜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