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제 주변에 엄격하지 못했던 점 깊이 반성하고 사과드립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최근 한 달 간 검증 과정에서 제기된 수많은 의혹에 대해 '주변을 잘 살피지 못한 책임'으로 정리했다. 자녀의 입시 문제나 사모펀드 투자, 웅동학원 재단 관리 등에서 조 후보자 본인이 직접 실행·가담한 정황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4월에도 이미선 헌법재판관 청문회에서 후보자가 아닌 남편의 주식거래가 쟁점이 된 바 있다. 당시 일각에서는 가족까지 책임을 묻는 것은 범위가 불문명하고 후보자 자질을 판단한다는 검증 취지에서 벗어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고위공직자의 검증 과정에서 흔히 등장하는 주변인 관련 문제에 대해 후보자는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인사청문회를 하는 해외 국가 사례와 공직자 윤리 관련 국내법을 위주로 살펴봤다.
◇ 고위공직자 가족의 문제, 어디까지 본인 책임일까?프랑스의 원로 정치인인 알랭 쥐페 전 총리는 1990년대 파리 부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아들이 집을 구하는 것을 도와준 문제로 총리 사임 압박을 받았다. 아들이 시에서 제공하는 27평짜리 임대아파트에 당첨되고 월세도 당시 한국 돈으로 15만원가량 싸게 계약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었다.
크지 않은 액수였지만 쥐페 전 총리는 검찰 수사를 받았고 논란이 불거진 후 3개월여 만에 대대적인 내각 개편을 해야 했다. 다만 직접적인 개입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고 문제의 아파트도 즉시 비워주기로 해 기소는 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전학선 교수가 2014년 쓴 '프랑스의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시스템' 논문을 보면, 프랑스는 공직자의 불륜 같은 사적 영역에서의 비도적적 문제는 너그럽게 넘어가지만 자녀 관련 문제는 별개로 엄격히 따지는 편이다.
프랑스는 한국과 제도가 달라 자녀의 입시비리나 병역기피, 위장전입 문제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쥐페 전 총리의 사례처럼 공직자의 영향력이 자녀 등 주변에 특혜로 돌아가는 상황은 공직자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강하게 책임을 묻는다.
미국은 '주변 검증'이 너무 엄격해 많은 후보자들이 공직 진출을 중도 포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고위공직자 후보 인사검증 단계에서 '개인과 가족의 배경' 항목에만 60개 이상 질문에 답해야 하고 자택에 고용한 가사도우미나 이웃의 신상명세까지 제출해야 한다.
지난 오바마 정부에서도 정권 창출을 주도한 제1공신들이 인사검증을 통과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중도포기하기도 했다. 캠프 선거대책위원장이자 오바마의 '정치적 스승'으로 불린 톰 대슐 전 상원의원이 보건후생부 장관에 내정됐다 낙마한 데도 그의 탈세 의혹과 더불어 아내인 린다 대슐의 로비스트 경력이 치부로 작용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국민의 목소리가 로비스트보다 커야한다"고 주장하며 표를 얻었는데, 그 가치관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법률을 통해 고위공직자 가족에게까지 이해충돌 방지 책임을 부과했다. 공직자윤리법에서는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 사실혼 상대까지 재산 등록의무자로 규정하고 있다.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에서는 공직자 모르게 배우자에게 제공된 금품이나 향응도 부정한 청탁으로 간주한다.
서울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남남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를 '경제적 공동체'라고 보고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은 판례도 있다"며 "하물며 부부관계이고 공직자라면 본인이 배우자의 불법행위와 관련이 없더라도 책임을 별개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 "제 처가 한 일" 조국의 면피, 합리적인가조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의 상당수는 주로 배우자인 정경심 교수가 주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사모펀드 투자에 대해 조 후보자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제 처가 한 (사모펀드) 투자"여서 잘 몰랐다는 취지로 수차례 해명했다.
정 교수가 빌려준 돈이 처남을 통해 펀드의 운용 회사로 흘러간 것과 5촌 조카가 펀드 운용에 개입한 정황에 대해서도 "제가 알 수가 없는 일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그럼에도 법조계에서는 사모펀드 투자만큼은 조 후보자가 "몰랐다"는 말로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투자가 이뤄진 시점이 조 후보자가 청와대 민정수석이라는 고위공직에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공직자윤리법과 청탁금지법 등의 취지를 고려한다면 고위공직자는 부정한 돈이 들어오는 것 뿐 아니라 미심쩍은 곳으로 '나가는' 것까지 철저히 관리할 의무가 있다. 배우자와 그 직계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과거 재산신고조차 부인이 모두 했다고 해도 어쨌든 조 후보자가 당시 고위공직자로서의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라며 "미국 청문절차에서 이같은 중요 답변을 모르쇠로 일관하면 의회모독죄로 기소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 후보자의 해명대로 "사모펀드가 뭔지 전혀 몰랐다"면 투자해선 안됐다는 것이다.
반면 딸의 논문이나 인턴십 등 특혜와 웅동학원 문제에 관해서는 말 그대로 '국민정서법'이 작용하는 구조다. 이들 문제는 조 후보자가 민정수석이 되기 전 자연인일 때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검증의 무대가 법원이 아닌 인사청문회이기 때문에 오히려 조 후보자 가족의 이 같은 삶의 방식은 더욱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전학선 교수는 "청문회는 불법성이 아니라 도덕성과 자질을 검증하는 자리"라며 "이전에 지위를 남용했는지 뿐만 아니라 후보자가 전반적으로 어떻게 살아 왔고 앞으로 고위공직자로서 어떻게 행동할지 종합적으로 따져보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