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에쿠우스' 공연사진 (사진=극단 실험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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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에쿠우스'가 올 가을 다시금 강렬하게 돌아왔다. 1975년 9월 실험극장 운니동 소극장에서 한국 초연을 올린 이래 매 시즌 센세이션을 일으킨 '에쿠우스'는 올해도 여전히 묵직한 울림을 전하며 관객을 찾았다.
44년의 긴 시간 동안 공연되며 회자된 작품의 스토리는 널리 알려져 있다. 말(馬)이라는 뜻의 라틴어인 '에쿠우스(Equus)'는 말 일곱 마리의 눈을 찔러 법정에 선 17세 소년 '알런'과 그를 치료하려는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의 이야기다.
하지만 직접 무대에서 마주한 작품은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복잡한 그 무언가의 굵직한 메시지를 전한다.
(사진=극단 실험극장 제공)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사회적으로 억압받으며 자란 알런은 어릴 적 바닷가에서 말과 만나며 운명적인 끌림을 느낀다.
난생 처음으로 말을 탄 알런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낙마를 하게 되지만 공포보다는 말에 대한 황홀감에 사로잡힌다. 이렇듯 추억 속 황홀감은 그의 억눌린 내면 속에서 경외감으로 진화하고 결국 그를 극단적인 비극의 소용돌이로 이끈다.
알런은 이러한 자신의 심적 충돌을 여과없이 표현해낸다. 아버지가 규정한 사회적 틀과 신격화 된 말의 존재 그리고 성(性)에 대한 본능 속에서 그는 몸을 비틀고 내던지며 자기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이런 알런을 치료하던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 역시 심각한 고뇌에 빠진다. 정신과 의사라는 정제된 삶 속에서 자식을 낳지 못한 남편이라는 열등감은 알런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점차 그의 내면을 자극한다.
알런의 비밀이 점차 벗겨질 수록 알런이 품고 있던 열정과 자유를 향한 갈망은 다이사트의 마음 속 자리하고 있는 욕망을 자극하고 이는 결국 괴로움으로 작용하며 자신을 옥죈다.
(사진=극단 실험극장 제공)
알런과 다이사트, 두 배역이 붓과 물감으로 '에쿠우스'라는 그림을 섬세하고도 선 굵게 그려나간다고 하면 마지막에 눈동자를 찍는 것은 결국 7마리의 말(馬)이다.
말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첫 등장부터 보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특히 이들은 흡사 영화 '300'의 스파르타 전사들과도 같은 근육질 몸매로 꽉찬 야성미를 풍기며 무대를 장악한다.
말의 가면을 쓰고 안장 등을 표현하는 가죽을 둘러맨 7명의 남성은 말의 움직임을 역동적으로 표현해냈고, 투레질 하는 말들의 모습은 거친 숨소리와 함께 매혹적인 관능미를 뿜어대며 관객을 홀린다.
이 같은 배우들의 열연은 작품이 절정으로 치닫을 수록 폭발적인 몰입도로 작용한다.
더불어 이들이 풀어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는 광기와 이성, 신과 인간, 원초적인 본능과 사회적 억압 등 대비되는 내면의 경계를 첨예하게 파고들어 묘한 희열과 함께 끝나지 않은 여운을 남기며 객석을 감탄으로 물들인다.
대한민국 연극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기며 다시금 찾아온 수작(秀作) 연극 '에쿠우스'는 11월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1관에서 공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