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수촌리 유적에서 나온 금동관모.(사진=연합뉴스 제공)
백제 개로왕 21년(475) 9월 고구려 왕이 병사 3만명을 이끌고 백제 수도 한성을 포위했다. 개로왕은 아차성에서 참살됐고, 백제는 한성 남쪽 지방인 웅진으로 천도했다.
백제는 두 번째 수도로 왜 웅진, 즉 충남 공주를 택했을까. 그 실마리를 파악할 수 있는 곳으로 주목받은 문화재가 공주 수촌리 유적(사적 제460호)이다.
국립공주박물관은 백제의 웅진 천도를 재조명하기 위해 기획한 '한성에서 웅진으로' 전시 첫 주제로 수촌리 유적을 택했다고 29일 밝혔다.
지난 27일 개막한 '공주 수촌리' 특별전은 공주시,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이 공동 주최하며 내년 3월 1일까지 열린다.
공주 도심 북쪽에 있는 수촌리 유적은 2002년 의당농공단지 조성을 위한 지표조사 중에 유물이 확인됐고, 이듬해 이뤄진 발굴조사를 통해 백제 고분 6기에서 금동관모와 금동신발, 금제귀걸이, 환두대도(環頭大刀·고리자루큰칼), 중국제 자기가 발견됐다.
학계에서 무령왕릉 발굴 이후 가장 중요한 백제 고분 조사 성과로 주목받은 수촌리 유적이 관심을 끈 또 다른 이유는 조성 시기였다.
수촌리 고분은 백제가 한성에 도읍을 둔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반 사이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됐다. 천도 이전 이미 공주에 각종 위세품을 묻을 정도로 강한 세력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