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이갈리아의 딸들' 프레스콜 현장 (사진=배덕훈 기자)
차별과 혐오, 그리고 다양한 권력에서 오는 부조리함을 소재로 파격적인 연출을 선보인 김수정 연출이 또 다른 묵직한 주제로 돌아왔다. 이번엔 남성과 여성의 관념과 역할이 완전히 뒤바뀐 땅 '이갈리아'를 다룬다.
1일부터 공연되는 연극 '이갈리아의 딸들'은 1977년 출간된 노르웨이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Gerd Brantenberg)의 동명 여성주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영어로도 번역된 이 작품은 당시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켰을 정도로 강렬한 소재를 다뤘다.
이 작품은 남성과 여성의 역할은 물론 젠더 위계와 성(性)의 대상화 등 모든 것을 뒤바꿔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차별과 혐오 그리고 다양한 권력으로부터 오는 부조리함을 고발한다.
지난 30일 진행된 연극 '이갈리아의 딸들' 프레스콜 전막 시연 행사에서 마주한 작품 역시 이 같은 원작의 설정을 바탕으로 각색돼 보다 직관적으로 재탄생했다.
작품은 시종일관 다양한 질문을 관객들에 던진다. 원작의 큰 물줄기인 젠더 이슈에서 오는 차별은 물론, 소수자에 대한 혐오, 다양한 권력에서 오는 부조리함 등 어느 것 하나 논쟁의 소지가 아닌 것들이 없을 정도로 묵직한 이야기를 다룬다.
극의 배경이 되는 '이갈리아'는 여성이 아이를 낳고 사회 활동을 하며 남성은 그 아이를 돌보는 것이 당연한 나라다.
가모장적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은 강자와 약자로 구분지어지고, 그 안에서 역시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뉜다. 여성이 중심이 되는 사회 역시 지배 계급과 노동 계급이 나뉘며, 권력으로부터 오는 부조리함 역시 통렬하게 드러난다.
총 2부로 구성된 작품은 가이드 역할을 맡은 배우의 "전환"이라는 대사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가이드는 주로 관객과 같이 극과 거리를 두고 관조하는 형태로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때때로 장면 장면에 주요한 역할로 녹아든다. 이러한 설정은 관객과 무대 속 경계를 허물며 극에 더욱 몰입하도록 만드는 효과를 가져온다.
1부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뒤바뀐 이갈리아 속 차별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2부는 이러한 차별을 극복하려는 남성들의 움직임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허세가 가득하고 다소 과장된 몸짓의 여성 배우들과 시종일관 소극적이고 순응하는 남성 배우들의 연기는 남성성과 여성성 모두 희화화의 대상이 된다.
극에 등장하는 다양한 미러링 소재 역시 언어유희의 대상으로 관객들에 전달된다.
여러가지 사건으로 얼룩지며 절정으로 치닫는 이갈리아 세계의 엔딩 역시 파격적이다. 미러링을 소재로 한 작품이지만 결과적으로 또 다른 미러링을 통해 관객들의 가슴에 쉬이 답할 수 없는 숙제를 남긴다.
연극 '이갈리아의 딸들'은 1일부터 19일까지 종로구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