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오전, 서울 동작구 사당동 메가박스 아트나인 카페에서 영화 '메기' 이옥섭 감독을 만났다. (사진=박종민 기자)
※ 영화 '메기' 내용이 나옵니다.
유머. 2012년부터 세상에 내보인 이옥섭 감독 작품에 빠지지 않는 필수 요소다. 지난달 26일 개봉한 첫 장편영화 '메기'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그다지 힘준 것 같지 않은 일상적인 대사로 웃음을 안긴다. 사직서 한자 획수로 이렇게 폭소를 유발할 수 있는 작품이 또 있을까. 없을 것 같다.
지난달 19일 오전, 서울 동작구 사당동 메가박스 아트나인 카페에서 만난 이옥섭 감독은 '유머'가 얼마나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지를 여러 번 강조했다. 너무 불안하고, 아무 희망도 없어 보이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힘든 기억 속에도 웃는 얼굴이 같이 담겨 있으며, 농담과 유머는 자신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첫 장편영화 '메기'에서는 어떤 스타일의 유머를 넣으려고 했는지 묻자 그는 좋아하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슬픈 건 슬프지 않게, 웃긴 건 웃기지 않게." 영화 '메기', 또한 이옥섭 감독의 스타일과 이토록 착 달라붙는 표현이 있을까. 영화를 보며 웃었을 때, 그 웃음이 곱씹어보면 씁쓸해지는 웃음이었던 것이 새삼 기억났다.
일문일답 이어서.
▶ '메기'는 믿고 싶은 간호사 윤영(이주영 분), 윤영을 의심하는 부원장 경진(문소리 분), 윤영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 남자친구 성원(구교환 분)을 통해 믿음을 이야기한다. 병원 사람들이 단체 결근한 날, 윤영과 경진이 실제로 한 직원 집에 가 보고 나서 그 사람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 이후로 다른 직원들이 솔직히 말했는지 속였는지는 뚜렷하게 나오지 않는다. 상상력을 열어둔 건가.(결근한 직원이) 진짜로 아픈 거였다는 걸 보여주고, 그다음 (타인을) 믿는 건 다 자기 몫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정말 (웃음) 사실이었던 것들이 많다. 그 뒤는 제가 보여주지 않아야 관객들이 자기 경험에 비추어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부러 보여주지 않았다. 정해진 것도 없었고. 2017년에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일어나지 않았나. 영화에서도 '현실은 상상 그 이상'이란 대사가 나오고. 그게 제가 (당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정서였다.
▶ 성원은 갑자기 도심에 나타난 봉고차만 한 싱크홀 덕분에 임시 일자리를 얻는다. 싱크홀이 영화에서 꽤 중요하게 나오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윤영이한테 처한 상황이 나일지도 몰라'라고 생각했다. 근데 땅까지 흔들리는 거다. 진짜 버티기 어렵다는 느낌? 제가 그때(시나리오 쓸 때) 뭐라 해야 할까, 영화를 앞두고 있었지만 되게 안정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제 주변도 '이렇게 사는 게 맞나?'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땐 제 나이대는 친구들이 한 5년 이상 직장을 다닐 때쯤이었고, 앞으로 80살 이상 산다면 (지금까지) 산 것보다 두 배는 살아야 할 텐데 붙잡을 곳도 없고 정말 위태롭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도 싱크홀이 계속 발생하고 있었다. 참 의지할 데가 없고 '이제 난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 그걸(싱크홀 설정) 자연스럽게 데리고 온 것 같다. 그리고 제가 한 사진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편의점 사진이었는데 그 앞이 이렇-게 동그랗게 뚫린 모습이었다. '저 알바생 어떻게 나와?'라는 댓글이 달린 게 기억난다. 문 열고 나가야 하는데 낭떠러지인 느낌, 그 사진이 분명히 (제게) 어떤 생각을 하게 한 것 같다. '이게 우리 모습인데?' 하고.
'메기'에 나오는 재개발 반대 평화 시위, 껴안은 채로 자전거 타는 장면 (사진=국가인권위원회, 2X9HD 제공)
▶ 개인적으로는 재개발을 반대하는 시위대가 일광욕을 하듯이 '평화 시위'를 하는 장면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메기'는 사회적인 주제를 아주 자연스럽고 담백하게 말하는 것 같다. 연출 의도가 궁금하다.영화에 재개발 반대 시위가 나오는데 (그 장면으로 제 의견을) 크게 목소리 내진 않았던 거 같다. 윤영이와 성원이가 사는 공간이 어디인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들이 지나가는 곳 자체가 내러티브가 되리라고 봤다. 그럼 어디가 보여야 할까 싶더라. 사실 서울은 매일 공사 중이지 않나. 매일 아파트가 생기고 매일 또 부서지고. 그게 제가 매일매일 보는 거다. 저 역시 2년마다 계속 이사를 다니고. 이사하기 전에 찍었던 (극중) 윤영이와 성원이 살던 집이 제집이었다. '어디가 재개발된대'라고들 하는데, 왜 내가 이사 갈 곳은 없을까? 항상 하던 생각이다. 이들(윤영-성원)이 지나가는 곳이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스물한 살 때 어떤 시위를 나갔다가 마음이 벅차올랐는데 그게 되게 충격이었다. 이렇게 자기의 의견을 이야기하면서도 즐겁게 할 수 있구나, 그게 너무 충격이었다. 얼굴이 다 밝았는데 그렇다고 놀러 나온 것 같진 않고, 그런 이미지가 저한테 좋은 영향을 줬다. 연대해서 얘기할 수 있다면 결과가 어떻든 의의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극중) 재개발 시위 모습도 극대화해서 상상했던 것 같다.
▶ 음악 사용도 재미있었다. 노래가 좋아서 어떤 곡이 쓰였나 봤더니 엔딩 크레디트에 음악이 셀 수 없이 많더라.(웃음) 단편 작업할 때도 음악감독님이랑 한 적은 없다. 음악은 시나리오 쓸 때부터 듣는다. 예를 들어 시나리오 쓰면서 이 음악이 영감을 줘서 어떤 장면을 만들기도 하고, 편집하면서 만난 음악도 있고 이런 식이다. '맥심'이라는 음악은 편집을 하면서 만났다. 근데 음악감독님이랑 작업하면 어떤지 아시나?
(기자 : 저도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일동 웃음) 편집이 다 된 상황에서 이 장면이 내가 보기에 너무 뜨겁다는 느낌이 들면 드라이한 음악을, 너무 차갑다고 하면 따뜻한 음악을 써서 온도 조절을 했다. 균형을 맞추는 느낌이었다.
▶ 이주영은 '메기'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탔다. '역시 내 안목이 맞았어!' 하진 않았나?(웃음) 저 너무 기분 좋았다. 2017년 8월인가 9월에 뵀다. 반팔 입고 만났으니까 여름이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저는 대화 나눈 게 처음이었다. 그때 이주영 배우님이 고민하던 거를 되게 편하게 저한테 다 얘기해주시더라. 뭐랄까. 사람을 만나면 위장도 하고 뭔가 멋있어 보이기 위한 태도가 있는데 그런 게 전혀 없고 되게 솔직하셨다. 어쨌든 윤영이도 자기 마음속에 있는 걸 따라가는 인물이고, 그러면서도 마음속 혼란을 표현해야 하는 인물인데 딱 그 시기였던 것 같다. 고민도 많으시고, 잘해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지금 해오는 것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것들이 윤영이랑 닮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자기보다 상사인 이경진 부원장을 리드해서 같이 다녀야 하는데 그러기에 아주 충분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왜 그러냐면 제가 생각한 이주영 배우는 자기가 느끼는 게 있으면 그것을 잘 표현하는 배우이고, 뭔가 눈치 보지 않는 사람이라는 느낌, 비겁하지 않은 느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날 만나서 바로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영화 찍기 전에도 집에서 만났다. 그러면서 달라진 것도 있고 아이디어 주신 것도 있었던 거로 기억한다.
'메기'에 출연한 던밀스, 박강섭, 박경혜 (사진=국가인권위원회, 2X9HD 제공)
▶ 구교환은 성원 역을 연기하기도 했고 각본, 편집, 제작에 참여했다. 배우이자 창작자로서 구교환은 어떤 인물이라고 생각하나.먼저, (글을) 쓰면서 저희가 완벽한 확신을 갖고 쓰진 못하지 않나. '분명히 이걸 좋아할 거야!'라는 마음, 한편으론 '안 좋아하면 어떡하지?' 하는 것처럼. 불안할 때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주변에 보여줬을 때 '재밌어!' 그래도 구교환 선배가 '재미없어'라고 하면 재미없고, 반대로 주변이 다 재미없다고 해도 구교환 선배가 재미있다고 하면 저는 재밌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신뢰가 강하다. 시나리오 초고 쓰고 읽힐 때 어느 씬에서 어떤 표정을 하나를 봤다. 표정은 숨길 수 없으니까. 그거로 많이 체크한다. 이 사람이 어떻게 보는지를.
배우로서는 이런 연기를 보여줄 때가 있다. 책상에 앉아서 글로 쓰면 절대 쓸 수 없는, 만들어낼 수 없는 어떠한 것들을 하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메기'의 매 순간이 그런 순간이었다. 그 씬을 약간 열어두고 즉흥적인 상황을 많이 줬는데, 구교환 선배가 보여줬던 모든 장면이 그랬던 것 같다. 매 테이크 다른 것을 보여주고, 동물적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 조·단역도 눈에 띄는 배우들이 많았다. 성원의 동료로 나오는 던밀스가 래퍼인 줄 나중에 알았다.저희가 시나리오를 드려서 제안한 거다. 던밀스 씨의 유튜브 콘텐츠가 있는데 그 시기에 구교환 선배가 그걸 너무 즐겨봤다. 연기를 잘하실 것 같다는 거다. 유튜브는 아무래도 자신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오니까. 저희가 그걸 보면서 '이분이다!' 했다. (맡은 인물도) 갑자기 일이 생겨서 투입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일을 오랫동안 해온 사람의 모습이 아니어도 됐다. 아예 연고가 없는데 문을 두드렸고 대표님과 미팅했다. TV에서는 사적인 모습을 보기가 어려운데, 유튜브는 다 가까운 사람이랑 찍으니까 자기 모습이 되게 많이 보이는 거다. '맛있는 건 절대 참을 수 없어~'하는 것도 던밀스 씨가 하는 걸 유튜브에서 보고 그것 좀 해 달라고 해서 한 거다. (웃음)
▶ 인권위에서 의뢰했을 때도 그렇고, 그동안 본인이 내놓은 작품도 그렇고 '유머'는 빼놓을 수 없는 장기인 것 같다. '메기'도 마찬가지였다고 보고. 이번엔 어떤 유머 스타일이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나.그 말을 되게 좋아한다. '슬픈 건 슬프지 않게, 웃긴 건 웃기지 않게'. 되게 웃을 수 없는 순간에 우리가 웃을 때가 있지 않나. 그런 게 저는 되게 너무 소중한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되게 힘든 상황, 잠을 못 잘 만한 상황, 시름시름 앓을 때도 저는 유머를 붙잡아서 좀 견디는 스타일이다. 캐릭터한테 그런 일(고통)을 주는 게 너무 가혹하니까, 유머도 같이 준다. 저도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자랐고. <끝>
이옥섭 감독 (사진=박종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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