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1년 국정운영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를 살펴야 할 국정감사마저 이른바 '조국 국감'으로 변질됐지만 정치권의 시선은 '광장'에만 머물고 있다.
국회의 가장 큰 어른인 국회의장이 직접 "위험 선에 다다랐다"고 경고했지만 여야 모두 광장 대결에서 쉽게 물러서지 않을 기세여서 좀처럼 해법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3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을 규탄하고 조국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범보수단체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검찰 개혁 사법적폐청산 촉구 촛불 문화제'에서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 국회까지 장악한 광장 대결…국회의장의 일갈여야는 최근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펼쳐진 검찰개혁 집회와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 촉구 집회를 자기들 의제로 가져오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4일 광화문 집회와 관련해 "서초동 200만 선동을 판판히 깨부수고 한 줌도 안 되는 조국 비호세력의 기를 눌렀다"며 "광화문 앞에서 시작해 대한문 앞을 넘어 숭례문에 이르기까지 서울 도심은 그야말로 상식과 정의의 물결이었다"고 극찬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한국당은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동원 집회'에만 골몰하며 공당이길 스스로 포기를 했다. 각 지역위원회 별로 300명, 400명씩 동원했다"며 "국가 원수에게 제정신 운운한 것은 아무리 정쟁에 눈이 어두워도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강도 높은 비난에 나섰다.
서초동 집회 후 첫 평일이었던 지난달 30일과 정반대의 입장이 된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 30일 "국민들 목소리는 과잉수사 일삼는 검찰, 이를 정쟁 상대로만 삼는 일부 야당의 경종을 울린다"며 "민주당은 어떤 난관에도 불구하고 검찰개혁 반드시 성사시킬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나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은 분노에 가득찬 검찰 증오를 드러낸 뒤 극렬 지지층 총동원령을 내렸다"며 서초동 집회에 200만명이 참여했다는 여권의 주장에 대해 "판타지 소설급 뻥튀기"라고 평가절하했다.
이번 사태를 국회에서 풀었어야 할 집권여당과 제1 야당이 어떻게든 해법을 제시하기 보다는 각자의 입맛에 맞는 집회는 치켜세우고, 그렇지 않은 집회에 대해서는 깎아내리기에만 골몰하는 셈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5일 열릴 서초동 집회에는 지난 주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릴 가능성이 높다.
그 사이 국정감사는 모든 상임위에서 조 장관에 대한 의혹제기와 옹호의 공방전이 펼쳐졌다.
돼지열병과 태풍으로 인한 피해 대책 마련을 위한 자리에 여야가 마주 앉는 일은 아예 없었다.
그러자 보다 못한 문희상 국회의장이 나서서 여야를 싸잡아 비판했다.
문 의장은 4일 현안 메시지를 통해 "분열의 정치·편가르기 정치·선동의 정치가 위험 선에 다다랐다"며 "대의 민주주의를 포기한 것이자 정치 실종 사태를 초래해 국회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상실하고 있다"고 현 상황을 지적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치 지도자들이 집회에 몇 명 나왔는지 숫자 놀음에 빠졌다. 나라가 반쪽이 나도 관계없다는 것 아니냐"고 꾸짖은 후 "국민 분노에 가장 먼저 불타 없어질 것이 국회라는 것을 이제라도 깨달아야 한다"고 자성을 거듭 촉구했다.
◇ 전문가들 "사회적 대타협 어렵다면 결국 기득권이 양보해야"전문가들은 문 의장의 지적이 맞는 말이지만 현실적으로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용인대 최창렬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문 의장의 메시지는 의미는 있지만 구체성이나 실천성은 부족하다"며 "여야 당 대표를 의장실로 불러서 '의원들을 집회 현장에 가지 말도록 단속을 하라'고 하고 이를 약속받는 등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 이상 실질적인 변화는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여야가 진영 강화를 위해 자기 측 집회는 "민심"으로, 상대 진영 측 집회는 "동원"이라고 이미 규정을 마쳤고 여론전 또한 한창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갈등을 해소해야 할 여야 정치권이 오히려 지지층의 여론을 등에 업고 극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남은 해결 수단은 제한적이다.
고문 등 원로들이나 그 동안 각 진영의 입장을 대변해왔던 인지도 있는 인사들이 나서서 정치적 대타협을 이루는 것이 하나의 방안으로 제기되지만 이미 다수의 인사들도 이번 집회들에 대한 지지와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어 쉽지 않은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갈등이 이처럼 첨예해져 국론분열에까지 이른 경우에는 결국 집권세력이 기득권의 일부를 내려놓고 양보하는,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는 수밖에 없다고 제언했다.
명지대 신율 교수는 "집회나 시위는 힘이 없는 사람들의 의사표현 수단인데 힘이 막강한 여당 의원들이 서초동 집회에 참여한 것도 모자라 단상 위에까지 올라갔다"며 "문 대통령도 서초동 시위 직후에는 기다렸다는 듯 무거운 마음이 든다고 했지만 광화문 집회 후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여당 의원들은 자신들이 입법부 대표인 것을 망각한 채 행정부 일원처럼 행동하고 있고, 대통령도 국민을 나누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의 책임은 여권에 있다"며 "결국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명지대 김형준 교수도 "정치의 최종 책임자는 결국 대통령"이라며 "조 장관에 대한 반대 여론이 여전히 찬성 보다 높은 과반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답이 금방 나온다"고 말했다.
조 장관의 사퇴를 결정하기 쉽지 않다면 혐의가 벗겨질 때 까지 잠시 직에서 물러나 있다가 명예가 회복되면 다시 장관직을 수행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비리 등 의혹이 제기됐던 국회의원이 탈당을 했다가 사법부의 판단 등이 내려진 후 복당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최창렬 교수는 "이 정도의 의혹이 제기됐으면 경질을 당해야겠지만 정 어렵다면 수사가 끝날 때 까지 직무에서 배제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며 "가족이 수사를 받는 상황 자체가 장관의 이해충돌이 될 수 있어 취할 수 있는 조치지만 사퇴는 아닌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