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배우 김래원을 만났다. (사진=NEW 제공)
김한결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 '가장 보통의 연애'는 범죄·스릴러 등 장르 영화가 쏟아지는 한국 영화계에 드문, 로맨틱코미디다. 연애의 달콤함보다는 모르는 척 숨기고 싶은 지질한 모습까지 가감 없이 보여주며 공감 가득한 웃음을 끌어낸다. 조연들마저 무척 현실적인 캐릭터고, 그래서 영화에서는 더 웃픈(웃기고 슬픈)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하지만 단순히 한바탕 웃고 끝내는 영화는 아니다. 사랑에 환상을 가지지 않았다고 말하는 선영(공효진 분)이 냉정해 보일 만큼 담담한 태도를 가지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처음 하는 연애도 아니면서 전 연인에게 미련하리만치 매달리고 '자니?' 문자를 보내는 구남친으로 사는 재훈(김래원 분) 역시 마찬가지로 웃지 못할 비화가 있다.
남녀가 술 마시고 연애하는 이야기, 라고 하기에는 현실적인 씁쓸함도 빠뜨리지 않고 잘 담아냈기에 극장을 나오면 자연스럽게 내 연애가 어땠는지 돌아보게 된다.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장르가 장르이니만큼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래원에게는 연애 관련 질문이 계속됐다.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보통의 연애'가 무엇인지 묻자, 김래원은 "너무 어려운 것 같다"라며 웃었다.
◇ 고양이, 비둘기마저 웃기는 영화'가장 보통의 연애'는 꽤 웃긴 영화다. 로맨틱코미디라는 장르를 따져보면, '로맨틱'보다는 '코미디'에 비중이 더 놓인 듯하다. 재훈은 '몸'으로 '말'로 망가지며 웃음을 유발한다. 고양이, 비둘기 등 동물도 뜻밖의 폭소 유발자다.
촬영 당시 기억에 남는 일화를 묻자, 김래원은 "고양이랑은 힘들었다.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저랑 잘 지내다가 제가 막 쫓아내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얘가 너무 놀란 거다. 제가 조금만 (액션을) 해도 벌써 도망가버려서 좀 힘들었다"라고 하소연했다.
비둘기 장면은 한 방에 OK가 나왔다는 게 그의 설명. 현장에서 가장 재미있던 장면도 바로 비둘기 장면이었다. 김래원은 "비둘기 연기가 제일 좋았다고들 했다. 비둘기가 움직이는 대로 제가 거기에 맞춰서 자연스럽게 하는 장면이니까 (둘의) 호흡이 아주 좋았던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가장 웃겼던 장면을 꼽아달라고 하자, 김래원은 "저는 (언론 시사회 때) 배급관에서 봤는데 기자님들이 보셨던 관이 훨씬 (분위기가) 좋았다고 하시더라. 저는 효진 씨 옆에서 같이 봤는데 둘이 키득대면서 재미있게 봤는데… 어느 포인트였지?"라며 "저는 강기영 씨 너무 재미있었다"라고 말했다.
김래원은 관수 역 정웅인, 병철 역 강기영과 촬영할 때 특히 즐거웠다고 밝혔다. (사진=영화사 집 제공)
강기영은 한참 어린 연인을 사귀면서 나잇값을 못 하는 병철 역을 연기했다. 대사로, 행동으로 여러 번 웃긴 그는 현장에서도 웃음 보따리였다. 김래원은 "강기영 씨가 진짜 재밌어서 현장에서도 너무 웃었다"라며 "그리고 효진 씨가 잘 터진다. 잘 웃는다. 제가 무슨 대사할 때도 갑자기 웃고, 기영이가 연기할 때도 본인이 계속 빵 터지고"라고 부연했다.
광고를 촬영하려고 스튜디오로 이동하는 차 안 장면이 공효진과 함께한 첫 촬영이었는데, 그때 공효진은 "회사가 체계가 없어~"라며 성내는 김래원의 대사에 빵 터졌다고. 김래원은 "그 대사를 너무 진지하게 해서 재밌었다고 한다. 계속 NG가 났다"라고 말했다.
'가장 보통의 연애'를 감싸는 코미디는 잘 계획된 것이었다. 김래원은 "워낙 웃음 주는 포인트가 시나리오에 다 나와 있었기 때문에, 그냥 중간중간에 조금 더 매끄럽고 부드럽게 하려고 (애드리브를) 한 정도다"라고 밝혔다.
◇ "효진 씨가 하면 저도 하겠습니다"김래원은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공효진이 이 작품을 하면 본인도 출연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유는 뭘까. 그는 "아마 저뿐만 아니라 많은 남자 배우분들이 상대역으로 가장 선호하는 배우, 손가락에 드는 몇 분 중 하나일 것"이라며 "제작사가 누구 생각나는 사람 있냐고 물어봤고, 저는 이 시나리오 보면서 효진 씨가 생각났다. 그래서 제가 가진 생각을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던 거다. 중요한 건 효진 씨가 1순위였다, 제 마음속에"라고 설명했다.
김래원은 "워낙에 잘하시고 저랑 호흡하는 장면에서도 '이야~ 이건 효진 씨랑 하면 나도 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저도 영화 보면서 느꼈다. 내가 커버가 되더라, 솔직히 얘기해서. 효진 씨랑 조화를 이루니까 씬에서 하나의 상황이 만들어졌던 것 같다. 아마 서로 그렇게 느끼지 않았을까"라고 예측했다.
"매력적이고 자연스럽고 자기감정에 솔직해요. 너무 솔직해서 좋은 것 같아요. (사람이) 자연스럽잖아요. 그렇게 오래 배우 생활을 하셨는데도 굉장히 내추럴하시고 자연스러워요. 거의 있는 그대로니까요. 그런 모습이 굉장히 보기 좋은 것 같아요."
김래원은 '가장 보통의 연애'에서 공효진과 호흡을 맞췄다. (사진=영화사 집 제공)
연애 상대로 나오는 공효진이 극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으로는 엔딩을 꼽았다. 김래원은 "다른 때도 충분히 예쁘셨지만 그날 그 씬에 좀 더 예뻐 보이긴 했다. 신경을 많이 쓰신 건지, 컨디션이 좋았던 건지… 사실 포장마차 씬은 하루 이틀 중에 다 찍은 거다. 싸운 것도. 그 씬에서 특별히 예쁨에 신경을 쓰신 건가 할 정도로 '어, 좀 다른데?' 싶더라"라고 답했다.
조금씩 발전하면서 여유를 갖고, 편안하게 즐기는 마음으로 연기하려고 한다는 김래원은 '가장 보통의 연애'를 찍으면서 "많이 비우면서 하려고 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감독님도 계시고, 편집실도, 촬영감독님도 계시고, 가장 중요한 상대 배우도 훌륭한 배우가 있고. 그래서 재미있게 나온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또한 김래원은 미영 역의 장소연도 실제로 만나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그는 "영화와 TV에서 뵀는데 (저는) 처음 뵀다. 뭔가 내추럴하면서도 묘한데, (연기를) 어떻게 하시는지 되게 궁금했는데 (현장에서) 얘기는 그렇게 많이 못 나눴다"면서 아쉬움을 표했다.
그동안 작품을 같이 한 경험이 있는 정웅인, 단짝 친구로 나오는 강기영하고는 정말 잘 붙어 다녔다. 김래원은 "현장에서 만나면 같이 차 마시고 그랬다. 웅인이 형하고 기영이 촬영 있는 날에는 특히 더 행복했다. 웅인이 형이 보이차 세트 가져오셔서 마시고, 저도 차 우렸다. 거기에 효진 씨, 장소연 씨도 오고 스태프분들도 오셨다. 이번에 저도 차 세트 샀다"며 웃어 보였다.
◇ 김래원은 '자니?' 문자를 보내 봤을까
새벽 2시, 뜬금없이 울리는 메시지 소리. '자니?'라는 문구가 도착했다면 발신인은 십중팔구 전 연인이다. '가장 보통의 연애'는 하나의 클리셰와도 같은 이 설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극중 재훈은 '자니?'뿐 아니라 헤어진 연인에게 미련 가득한 인물이 할 수 있는 온갖 말을 쉴 새 없이 메시지로 쏟아낸다. "자니?" 혹은 "뭐해?" 등의 문자를 보내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김래원은 "헤어진 사람한테 술 먹고 보낸 건 없었던 거로 기억한다. 아주 어릴 땐 기억이 안 나고"라고 답했다.
나이가 들수록 연애 세포가 죽는다는 말은 거짓말일 수도 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낸 김래원에게 '가장 보통의 연애'란 무엇인지 묻자, 그는 "'가장 보통의 연애'가 뭐지? 저한테 가장 보통의 연애는 너무 어렵다"라며 난처해했다. 연애가 희극인지 비극인지 물었을 땐 답이 좀 더 분명했다. "전체로 놓고 보면 희극인 거죠. 전 그렇게 생각해요."
김래원은 '가장 보통의 연애'에서 공효진과 호흡을 맞췄다. (사진=영화사 집 제공)
'어른들은 몰라요', '나', '학교 2' 등 청소년물로 연기를 시작한 김래원은 드라마 '내 사랑 팥쥐', '눈사람', '옥탑방 고양이', '사랑한다 말해줘',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 '넌 어느 별에서 왔니', '천일의 약속' 등 로맨스·멜로 장르에서 강세를 보였던 배우이기도 하다. 오랜만에 '김래원표 로맨스'로 관객을 찾는 기분을 묻자 그는 "기대되는 점이라… 그냥 잘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재미있게"라며 쑥스러워했다.
"가장 우리 영화다운 장면은… 티격태격했던 장면도 있고, 또 뭐가 있지? 저는 모든 장면이 다 하나가 돼서 그게 '가장 보통의 연애'가 된 게 아닌가 싶다"라는 김래원은 "진짜 좀 많이 보셨으면 좋겠다. 혹시 (영화에) 공감 못 하시더라도 이런 설레는 사랑도 되게 아름답고 좋을 수 있다', '이게 가장 보통의 연애다'라고 느껴보셨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