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가 5일(현지시간) 저녁 6시30분께 스톡홀름 외곽 북한대사관 앞에서 이날 열린 북미 실무협상 관련 성명을 발표하고 "북미 실무협상은 결렬됐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북미가 지난 2월의 하노이 회담 이후 7개월만에 만나 비핵화 협상을 벌였으나 또다시 결렬됐다.
비핵화와 상응조치를 둘러싼 현격한 간극을 여전히 좁히지 못한 것으로 비핵화 협상이 중대 위기를 맞게 됐다.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와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를 수석대표로 하는 북미 협상팀은 5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에서 비핵화 협상을 벌였지만 빈손으로 돌아섰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7개월여 동안 양측이 유연한 입장을 보이면서 기대를 키워오기도 했지만 협상이 또다시 결렬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회의는 오전 2시간, 오후 4시간만 진행됐다.
오후 2시 20분 회의장에 들어간 김명길 대사는 4시간만에 협상장을 빠져나와 오후 6시 30분쯤 북한 대사관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협상결렬을 선언했다.
김 대사는 "협상은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결렬됐다"면서 "나는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협상이 아무런 결과물도 도출되지 못하고 결렬된 것은 전적으로 미국이 구태의연한 입장과 태도를 버리지 못한 데 있다"며 미국에 공을 돌렸다.
협상 결렬의 구체적인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양측이 협상 '패'를 내놓고 보니 하노이에서 보였던 패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은 비핵화의 최종단계에 대한 정의와 핵동결에서 비핵화에 이르는 과정의 로드맵에 대한 '포괄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하노이 당시의 기본 입장을 다시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명길 대사가 "미국은 그동안 유연한 접근과 새로운 방법, 창발적인 해결책을 시사하며 기대감을 한껏 부풀게 하였으나 아무것도 들고 나오지 않았다"고 비난한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우리가 이미 미국측에 어떤 계산법이 필요한가를 명백히 설명하고 시간도 충분히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빈손으로 협상에 나온 것은 결국 문제를 풀 생각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성명을 통해 "미국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을 가져갔고 북한과 좋은 논의를 가졌다"고 반박했지만 북한은 미국의 '창의적 아이디어들'이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비핵화 방법에 대한 포괄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 하노이 이후 일관된 미국의 입장이라면 북한은 단계적 합의, 단계적 이행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다.
상호 신뢰가 부족한 만큼 현 단계에서 실현가능한 비핵화 조치와 상응조치를 먼저 합의하고 이를 이행하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자는게 북한 입장이다.
북한은 이 번 회의에서 체제안전보장과 제재해제를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김명길 대사가 성명에서 "조선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발전을 저해하는 모든 장애물들이 깨끗하고 의심할 여지없이 제거될 때에라야 가능하다는 것"이라고 밝힌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비핵화 출구를 포함해 방법론에 대한 간극이 이처럼 현격하다는 점에서 비핵화의 입구에 해당하는 초기 조치에 대해선 논의조차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하노이 당시에는 영변 핵시설 폐기와 안보리 제재해제를 제안했다가 거부당한 바 있다.
특히 김 대사는 "우리가 선제적으로 취한 비핵화 조치들과 신뢰구축 조치들에 미국이 성의있게 화답하면 다음 단계의 비핵화 조치들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입장을 명백히 했다"고 말해 미국이 제재해제 등 상응조치를 먼저 취해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7개월여만에 재개된 협상이 또다시 빈손으로 귀결되면서 향후 대화의 창이 계속 열릴 지는 미지수다.
일단 김명길 대사는 "미국 측이 우리와의 협상에 실제적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한 데 따라 협상을 중단하고 연말까지 좀 더 숙고해 볼 것을 권고하였다"며 연말까지 기다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스웨덴측이 2주내에 북미간 실무협상을 재개하자는 제안을 한데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모건 오테이거스 대변인은 "미국은 모든 주제에 대한 논의를 계속하기 위해 2주 이내에 스톡홀름으로 돌아와 다시 만나자는 스웨덴 주최측의 초청을 수락할 것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오히려 북한은 "대화재개의 불씨를 되살리는가 아니면 대화의 문을 영원히 닫아버리는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며 미국에 '새로운 계산법'을 갖고 나올 것을 거듭 촉구했다.
하지만 7개월 동안의 시간에도 간극을 좁히지 못한 양측이 얼마 남지 않은 연말까지 협상의 물꼬를 트기는 훨씬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내년 대선 선거운동이 본격화하면서 북핵 이슈가 관심권 밖으로 멀어지거나 미국 조야에서 강경론이 득세할 가능성도 우려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인내심의 한계가 가장 큰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