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재심은 내가 하는거고, 억울해도 내가 하는 거예요."
화성연쇄살인사건 중 유일하게 해결된 것으로 알려졌던 8차 사건의 범인으로 20년 동안 옥살이를 한 윤모(52) 씨가 강한 억울함을 드러내며 재심 청구 의사를 내비쳤다.
윤 씨는 지난 2009년 8월 청주교도소에서 출소한 뒤 줄곧 청주에서 살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윤 씨의 집은 최근 8차 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고 자백한 이춘재(56)가 처제를 무참히 살해해 경찰에 붙잡힌 곳에서 자동차로 불과 10여분 거리에 불과했다.
그는 지난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의 박모(당시 13세) 양 집에 침입해 잠자던 박 양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이듬해 10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윤 씨는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바가 전혀 없는데도 경찰에 연행돼 혹독한 고문을 받고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이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허위로 진술했다"며 항소했지만 기각됐다.
2심과 3심도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다며 윤 씨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된 윤 씨는 최근 8차 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는 이춘재의 자백이 나오자 재심 청구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과 재심 개시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정반대 의견으로 나뉘고 있다.
경기남부청에 마련된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사진=연합뉴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해 무죄 선고를 이끌어낸 박준영 변호사는 지난 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윤 씨가 승소까지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 변호사는 "전문가들에 따르면 (체모)방사선 동위원소 감정 결과는 범인을 좁혀갈 순 있지만, 특정짓기는 무리가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면서 "2심 법원의 판결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증거를 우선시하지 않고, 자백 내용이 구체적이라는 것을 가장 의미있게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사건은 자백으로 사실상 유죄를 선고한 사건인데 (이춘재의 자백으로) 윤 씨 자백의 전제가 무너진 것"이라며 "자백은 당시 상황에 맞게끔 얼마든지 꾸며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당시 수사가 명백히 잘못됐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재심 개시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정반대의 의견도 나왔다.
화성연쇄살인 용의자 이춘재.(사진=연합뉴스)
한필운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대표변호사는 "이춘재의 증언에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재심 개시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과거 8차 사건 수사가 명백히 잘못됐다는 증거가 나와야 재심과 손해배상이 가능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심지어 8차 사건의 증거물과 기록이 현재 모두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존 기한인 20년을 넘기면서 모두 페기된 것이다.
만약, 이춘재의 자백과 윤 씨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과거 경찰이 강압 수사로 무고한 시민을 20년이나 옥살이시킨 것은 물론 과학수사 역사까지 다시 써야 하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
이에 따라 경찰은 이춘재의 자백의 신빙성을 검증에 나서는 한편, 범행이 더 많은 것으로 보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