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100초 정치사회 수업' 책으로 한국 사회 뜨거운 이슈 10가지를 조목 짚었던 '씨리얼(C-real)'이 다시한번 매서운 시선으로 우리 사회에 송곳같은 메시지를 던졌다.
10일 출간한 신간 '나의 가해자들에게'는 우리 사회 또하나의 그늘인 '학교 폭력' 문제를 되짚는다.
지난 4월 유튜브에는 '왕따였던 어른들 Stop Bullying'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학창 시절 '왕따'를 당했던 끔직한 기억을 어린 몸에 새긴 채 그대로 어른으로 커 버린 이들 10명이 모여 각자 자기 경험담을 털어 놓는 방식의 인터뷰 영상물이다.
당시 영상은 큰 반향을 이끌어 냈고, 이후 제작된 2편의 영상물 역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책 '나의 가해자들에게'는 이 영상물에 담긴 인터뷰 전문을 다듬어 실은 책이다.
사람들은 흔히 학교 폭력 문제를 10대의 치기 어린 시절의 일로만 생각하지만, 사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어른이 되어서도 지독한 트라우마로 남기 쉽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점에서 학교 폭력 문제를 새로운 시선으로 조명했다.
실제 학교 폭력의 피해자였던 이들이 날 것 그대로 전하는 생생한 이야기는 단순한 어린아이들의 문제로 치부할 수준을 넘어섰다.
"어느 날 집에서 '무한도전'을 보는데, 갑자기 웃긴 장면이 나와서 막 웃다가 호흡이 안되는거예요. 과호흡이 와서 병원에 실려 갔어요. 지금까지 웃은 적이 너무 없어서, 제 호흡이 웃는 호흡에 맞출 수 없어서 그렇게 된 거라고 하더라구요. 그 후에도 웃다가 갑자기 헉, 하고 호흡이 멈춰 쓰러진 적이 한두 번 정도 있었어요. 지금도 막 그렇게 크게 웃거나 하지는 못해요."(p.45)한 '학교 폭력' 피해자가 밝힌 '실제 이야기'다. 별것 아닌 일에도 웃음을 터뜨리기 일쑤인 10대 여자아이가 웃어본 적이 없어서 웃을 때의 호흡법을 잊고 쓰러졌다는 사연은 피해자가 겪었을 크나 큰 아픔을 조금이나마 가늠케 한다.
이 아이는 인터뷰에서 어른이 된 후에도 크게 웃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학교 폭력이 남긴 상처가 혹은 트라우마가 쉽게 치유되지 않고 또 다른 상처로 남음을 알 수 있다.
'나의 가해자들에게'에는 이 같은 사연을 비롯, '어떤 집단에 들어가든 소외될까 두려워 자기를 자꾸 뽐내며 집단의 중심이 되려 애쓴다', '거절의 말을 했다간 또 따돌림을 당할까봐 무조건 '예스맨'이 됐다', '사람을 믿지 못하게 돼 깊은 관계를 아예 맺지도 않는다' 등의 피해 사례를 생생하게 담았다.
이렇듯 책은 날 것 그대로의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조망함과 동시에 '학교 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조금 더 진지하게 성찰하고 되짚어 봐야 한다는 송곳같은 메시지를 남긴다.
피해자들은 과거의 일로 인해 여전히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고, 어른이 된 지금도 당시를 극복하지 못한다고 토로한다.
하지만 서로의 피해 사실을 낱낱이 털어놓는 과정에서 이들은 조금씩 스스로를 추스르고 서로를 위로하게 된다.
실제로 '나의 가해자들에게' 책에 담긴 이들의 후기를 보면, 한때 피해자 였던 이들은 자기 자신을 좀 더 챙기게 됐고, 자신 보다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걱정하는 좋은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드러난다.
책은 이러한 피해자들의 치유의 첫걸음은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에 있다고 강조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여과없이 담아낸 '나의 가해자들에게' 책이 갖는 진정한 가치 역시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리고 버텨줘서 고마워"알에이치코리아. 280쪽. 1만4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