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4시, 인천공항 제1터미널 입국장 D게이트 문이 열렸다.
"알로! 루렌도! 웰컴 투 코리아!"
레마(9) 로데(여‧8), 실로(8) 그라샤(여‧6)가 웃음기 머금은 표정으로 수줍은 듯 쭈뼛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옆에는 루렌도(47)씨가 간단한 짐을 실은 유모차를 밀고 나왔고, 아내 보베테(40)도 보였다.
루렌도 가족과 이들을 지원해온 난민 활동가들은 서로 얼싸 안고 기쁨을 만끽했다.
루렌도씨는 "나올 수 있게 돼서 너무 행복하다.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287일만에 인천공항에서 나온 루렌도 가족의 첫 식사는 삼겹살이었다. 루렌도씨는 가족 모두가 병원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사진=최윤도 편집장 제공)
◇ 287일 만에 입국 허가…안산에 임시 거쳐 마련287일이 걸렸다. 본국에서의 박해를 피해 망명해 온 콩고 출신 앙골라인 루렌도 가족. 인천공항에 도착한 지난해 12월28일, 입국은 불허됐고 여권은 압수당했다.
대한민국은 이들에게 너무나 단호하고 가혹했다. 이들에게 난민심사를 받을 자격조차 주지 않았다. 이에 불복해 제기한 1심 재판 역시 이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인천공항에서의 아홉달. 이들 특히 열 살도 안 된 두 아들과 두 딸에겐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27일 서울고등법원은 루렌도 가족의 청구를 기각했던 원심을 깨고 "앙골라 정부로부터 박해를 피하려는 급박한 상황으로 볼 여지도 있다"며 루렌도 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물론 난민 심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된 것이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다시 살릴 수 있게 됐다. 그와 함께 루렌도 가족은 대법원 확정 판결이 있기까지 일시적 체류가 허용됐다.
경기도 안산에 마련된 임시 거처에서 온 가족이 모여 앉은 루렌도 가족. (사진=최윤도 편집장 제공)
◇ 법무부 대법원에 상고…난민 인정 지난한 싸움 계속될 듯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전까지는 여러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루렌도 가족은 일단 경기도 안산에 있는 구세군 이주민 쉼터에서 한 두 달 정도 생활하기로 했다.
또 구직 활동을 할 수는 없는 만큼 생계는 '난민공동행동'의 모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들에 가장 시급은 지원은 병원 진료였다. 이들을 지원해온 최윤도 두리미디어 편집장은 "루렌도 가족 모두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부인 보베테씨는 심각한 치통과 위장 장애에 시달리고 있고, 루렌도씨 역시 스트레스성 두통과 소화불량, 무기력증을 호소하고 있다.
루렌도씨는 "계속 구토를 하고 있다"며 "가족들 모두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청은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난민 심사를 받을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또다시 대법원의 문턱을 넘어야 할 처지가 된 것이다.
대법원에서 승소하더라도 난민 인정 심사 결과 난민 지위가 불인정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게 된다. 이 경우 행정 소송을 제기하면, 1년마다 연장해야 하는 인도적 체류 자격이 부여된다.
인도적 체류자는 사회보장 혜택이 제한되고, 가족을 초청할 수 없다는 점 등에서 난민과 구별된다. 이후 행정 소송에서 질 경우 본국이나 제3국으로 추방될 수 있다.
법무부측은 "1심과 항소심 판결내용이 달라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어 상고했다"며 "상고심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점 등을 고려해 입국을 허가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