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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악플 다는 평범한 손가락, 키보드 뒤에 숨은 '우리들'

사회 일반

    끔찍한 악플 다는 평범한 손가락, 키보드 뒤에 숨은 '우리들'

    • 2019-10-17 06:49

    전문가들 "현실 세계에서 억눌린 감정 가상공간서 표출"

     

    "악성 댓글(악플)을 다는 사람들 대부분은 전과 하나 없이 학교나 직장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가수 겸 배우 설리(본명 최진리·25)의 사망을 계기로 인터넷상에 만연한 악플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는 가운데 악플 수사업무를 담당하는 한 경찰서 사이버수사관이 한 말이다.

    이 수사관은 "유명인이 악플을 단 사람을 고소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인끼리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온라인 게임 등에서 시비가 붙어 욕설을 주고받다 고소나 진정으로 이어지는 일이 더 흔하다"고 전했다.

    입에 옮기기도 민망할 표현을 써 가며 인터넷에 모욕성 글을 올리는 이들 상당수는 평소 범죄를 일삼는 사람들이 아니라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는 평범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악플을 다는 이들은 자신이 과거 한 일을 기억조차 못 할 만큼 대수롭지 않은 행위로 여기기도 한다.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인식 자체가 없다는 얘기다.

    과거 사이버수사 업무를 담당했던 한 경찰관은 "전과 하나 없는 20대 남학생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특정 이용자를 지칭해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했다가 조사받으러 왔는데 정작 본인은 '기억나지 않는다. 착각한 것 아니냐'고 항변했다"며 "증거를 뽑아 보여주자 그제야 매우 놀라면서 인정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자들을 소재로 한 음란성 게시물을 극우 성향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 올렸다가 경찰에 검거된 이도 특별할 것 없는 20대 청년이었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나와 고시원에서 생활했다는 이 청년은 경찰에서 "관심을 끌고 주목받으려고 이런 게시물을 써서 올렸다"고 진술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범죄인 줄도 모르고, 혹은 잡히지 않을 거라 믿고 큰 죄책감 없이 악플을 다는 경우가 많은 만큼 사회적 차원에서 교육과 홍보를 통해 경각심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인터넷 도입 초기와 비교하면 스마트폰과 SNS 등의 발달로 악플이 쉬운 환경이 만들어진 점도 문제의 심각성을 키우는 한 요인으로 지목된다.

    한 경찰서 사이버수사팀 관계자는 "요즘에는 거의 모든 연령대에서 스마트폰을 활발하게 쓰다 보니 언제 어디서든 뉴스 기사나 SNS에 댓글을 달 수 있다"며 "입건되는 사람도 어린 학생뿐 아니라 주부, 노년층 등 나이대가 다양하다"고 말했다.

    17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경찰에 접수된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발생 건수는 1만5천926건으로 전년 대비 약 19.3% 늘었다. 올해는 8월까지 1만928건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악플 가해자들이 대체로 현실 세계에서 억눌린 감정을 가상 공간에서 표출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사회적 관계가 좁고 스트레스를 현실 세계에서 풀지 못하는 사람들이 익명성을 악용해 불특정 다수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수동적 공격성'을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도 "자신의 주장을 과도하게 표출하고 싶거나 낮은 자존감을 보상받고자 하는 소수가 맨 처음 악플을 단다"며 "평소 사회적·경제적 이유 등으로 불안감을 느끼던 사람이라면 그런 모습이 카리스마 있고 멋져 보일 수 있어 동조하는 경우가 많다"고 진단했다.

    악플의 사회적 폐해를 줄이려면 확실한 처벌로 경각심을 높이고, 댓글 필터링을 강화하는 등 시스템 개선도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공 교수는 "악플을 달면 반드시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인식이 생기면 가해자들도 압박감을 느끼고 자제하게 될 것"이라며 "처벌 수위를 높이기보다 확실한 처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악플 피해자가 느끼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임 교수는 "인터넷 문화가 성숙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겠지만 쉽지 않다"며 "포털사이트 차원에서도 댓글 필터링을 강화하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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