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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인형으로 표현하는 '개인과 삶'…'보더라인'·'잊혀진 땅'

공연/전시

    몸·인형으로 표현하는 '개인과 삶'…'보더라인'·'잊혀진 땅'

    왕 라미레즈 컴퍼니 '보더라인: 경계에서' 공연 모습 (사진=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현재 대학로 일대에는 '시대를 조명하다'라는 주제로 '제19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스파프)'의 다양한 무대가 관객들 앞에 펼쳐지고 있다.

    그 중 '인간의 몸'과 '인형'을 통해 색다른 시각으로 접근, 이 시대를 조명하는 두 작품이 있다.

    프랑스와 독일 안무가의 합작 단체인 왕 라미레즈 컴퍼니의 '보더라인: 경계에서'와 벨기에 극단 포인트제로의 '잊혀진 땅'이 바로 그것이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마주한 두 작품은 각기 개인과 삶이라는 주제로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표현해냈다.

    우선 '보더라인: 경계에서'는 힙합과 발레 등을 이용해 퍼포먼스를 이러한 메시지를 이끌어냈다. 무대 위의 신체적 힘과 보이스오버(Voice-over)로 송출되는 여러 이야기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다양한 사회적 영역을 환기시킨다.

    특히 공중장비를 활용한 아크로바틱한 공중 퍼포먼스는 화려함을 넘어 감탄을 자아낸다. 이러한 몸의 움직임은 우아함과 정점을 치닫는 시각적 요소들이 인상적으로 어우러지며 무대가 공간적 한계를 넘어서는 듯한 모습을 만들어 냈다.

    그러면서 공중 퍼포먼스를 통해 중력을 거스르며, 무용수들의 다양한 춤과 함께 힙합이 추구하는 자유와 열망을 내비친다.

    '보더라인: 경계에서'는 왕 라미레즈 컴퍼니가 2013년 프랑스에서 초연한 작품으로 힙합과 무용의 결합이라는 파격적인 모습과 더불어 새로운 퍼포먼스로 여러 외신에 극찬을 받은 바 있다.

    왕 라미레즈 컴퍼니는 커플이기도 한 한국계 독일 안무가 왕헌지(왕현정)와 프랑스 안무가 세바스티앙 라미네즈의 이름을 따 만들어졌다.

    왕 안무가는 장면 시연이 끝난 후 작품에 대해 "우리는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며 "그런데 자유에는 제한이 있듯이 철제 프레임을 통해 그러한 문제를 다루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철제 프레임 등 추상적인 형상을 통해 관객들이 자유롭게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자리에 함께한 세바스티앙 라미레즈도 "저희만의 추상적인 세계를 그려보고 싶었다"면서 "중력을 넘어서고, 어떤 박스 안에 갇혀있다면 그곳에서 빠져 나가는 것, 하늘을 날면서 뭔가 벗어나는 느낌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고 무언가를 초월한다는 의미도 있다"며 "시적인 의미를 부여해서 관객들이 꿈을 꿀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보더라인: 경계에서'는 이같은 자유에 대한 열망과 인간의 몸을 땅 위에 가두려는 폭력 사이에 새로운 움직임을 고안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 그러면서 인간에 내재된 욕망과 고뇌 그리고 전통 등을 상기시킨다.

    라미레즈는 "각 개인을 탐구해보고자 했다"며 "각 개인의 삶, 경험, 감정 등을 탐구하고 개인이 사회 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표현해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왕 안무가는 부모님이 1970년대 후반에 독일에 이민을 가서 낳은 재외동포다. 그는 한국에 와 공연을 펼칠 수 있는 것에 대한 남다른 소감을 전했다.

    왕 안무가는 "독일에서 자랐지만 부모님의 뿌리를 찾아서 온 기분이라 무척 기쁘고 자랑스럽다"면서 "최근 한국 공연예술이 많이 발전해 저희가 보여드리는 무용 공연 형식이 한국에서 받아들여지게 됐다는 것에 대해 기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라미레즈는 "한국 문화를 굉장히 좋아하고 즐기는데 항상 다른 나라 다른 문화권에서 공연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라면서 "힙합이라는 장르가 기존의 그런 관념의 틀을 깨고 예술 형태로 받아들여진 점에 대해서도 기쁘게 생각한다"고 들뜬 소감을 남겼다.

    '보더라인: 경계에서'가 현 시대 속 갈망하는 개인의 자유와 고뇌 등을 몸으로 조명했다고 한다면, '잊혀진 땅'은 인형과 배우의 유기적 호흡을 통해 삶이라는 주제로 시대를 관통한다.

    포인트제로의 '잊혀진 땅' 공연 모습 (사진=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잊혀진 땅'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바탕으로 건강과 터전을 잃어버린 피해자들의 삶을 조명해 방사능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실험적이고 철학적인 무대로 표현해냈다.

    우선 '잊혀진 땅'은 '자연방사능보호구역'이라는 이상한 이름이 붙여진 지역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대부분 숲으로 우거진 이곳은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 몇몇 사람들이 살아간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눈에 보이거나 느껴지는 것은 없지만 모두가 방사능에 노출되어 있다.

    보통의 활달하고 우스꽝스러운 인형극과는 달리 '잊혀진 땅'은 시종일관 기괴하고 음산한 분위기로 이어진다. 작품의 주요 배우라고 할 수 있는 인형 역시도 전혀 아름답지 않은 얼굴로 만들어졌다.

    '잊혀진 땅'은 연출가 장 미셸 드우프와 그가 설립한 극단 포인트제로가 만든 작품이다. 이들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피해자들을 찾아 인터뷰를 해 작품을 만들었다.

    드우프 연출은 아내와 함게 체르노빌에 관련한 책을 읽고 사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후 체르노빌 지역의 아이를 유럽 곳곳에 한달동안 홈스테이를 보내는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집에 머물던 아이에게 정보를 얻기도 했다.

    이와 같은 생생한 증언과 정보들은 묵직한 메시지를 담은 인형극 탄생의 원천이 됐고, '잊혀진 땅'은 2018년 벨기에 언론사 최우수 공연상을 수상했다.

    드우프 연출은 "인형을 통해 보이지 않는 방사능을 표현해 보고자 했고, 평행세계를 그려보고자 했다"면서 "어떻게 보면 인형이라는 소재는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유령의 의미가 될 수도 있고, 우리가 사는 세계 일 수도 있다. 두 가지 세계를 평행으로 보여주고자 했다"고 작품 의도를 설명했다.

    '잊혀진 땅'은 일반 인형극과는 달리 배우가 모습을 숨기지 않는다. 배우는 인형과 함께 등장하며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드우프 연출 역시 배우와 인형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인형은 배우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인형과 배우가 함께 등장한다. 이를 통해 두개의 스토리가 동시에 진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인형은 사람이 할 수 없는 말을 해도 용납이 된다. 그래서 정치적이고 혁명적일 수도 있다"며 "배우 역시도 체르노빌과 관련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어 배우와 인형 모두 역할이 다 있다"고 설명했다.

    체르노빌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연장 바닥은 알 수 없는 검은색 물질로 깔려있다. 낙엽이 타고 남은 재 같기도 한 이 같은 소재는 스산함을 더한다.

    이에 대해 드우프 연출은 "더러움을 의미할 수도 있고, 뭔가의 종말, 세상의 종말 그런 것을 의미 할 수도 있다"며 "체르노빌 사고 한복판에 있는 도시, 그 도시 상황이 이렇다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왕 라미레즈 컴퍼니의 '보더라인: 경계에서'는 19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한편의 공연만을 남겨두고 있고, 포인트제로의 '잊혀진 땅'은 19~20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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