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기준금리 인하가 일반인들의 대출이자 경감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양상이다. 대내외 여건상 기준금리 인하의 효과가 시장금리에 반영되는 게 더디고, 대출이자 산출 근거인 채권금리가 상승세를 보인 데 따른 결과다.
2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주택금융공사는 보금자리론 최저금리를 전날부터 2.2%로 0.2%p 인상했다. 시중은행들도 최근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1%p 안팎씩 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은이 올들어 두번째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한 지난달 16일 이후 현황이다.
기준금리와 은행권 대출금리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해 11월말 한은 기준금리 인상 때 은행권 대출금리는 약 일주일 뒤 최대 0.3%p 상승했다. 반대로 올해 7월18일 인하 때는 10여일 뒤 0.1%p 가량 은행권 대출금리가 내렸다. 소요시간과 폭에 차이가 있지만 과거에는 방향이 같았다.
최근 상황을 두고는 한은 기준금리 인하의 효과가 금융시장에 다소 더디게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는 역대 최저수준인 1.25%의 한은 기준금리 체제에서 이자수익 보전 등 은행권의 경영 판단도 작용했을 수 있다.
실제로 은행 대출금리의 주요 지표인 코픽스(COFIX)에 한은의 '10월 인하'가 반영되지 않은 상태다. 은행연합회가 매달 15일쯤 공시하는 '자금조달비용 지수' 코픽스는 주요 8개 은행이 '공시 한달 전' 대출영업을 위한 돈을 끌어모으는 데 들인 비용을 나타낸다.
최신판 코픽스는 10월15일 공시분인데, 한은 기준금리 인하는 다음날인 10월16일 단행됐다. 인하 효과는 이달 15일 공시분부터 반영될 수 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시차가 발생한다.
이런 가운데 채권금리가 전반적으로 상승세인 점도 중대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코픽스 산출에는 은행권의 금융채 금리도 반영되는데, 금융채 금리 역시 상승세다. 비용(금융채 금리)이 오르면 상품 가격(대출금리)도 오를 수밖에 없다.
8월 중순 바닥을 찍은 채권금리는 한차례 조정 뒤 10월 들어 상승곡선을 그렸다. 금융채 5년물 금리는 7월말 1.5023%에서 8월말 1.3870%로 낮아졌다가, 9월말 1.5495%에 이어 10월말 1.8070%로 올랐다. 10월16일 한은 기준금리 인하 전부터 이미 조달비용 증가가 시작된 셈이다.
채권금리 상승세는 미중 협상타결 가능성 등 경기전망이 호전되자 투자가 주식에 쏠려, 채권가치가 떨어진 결과로 해석된다. 우리 국고채 5년물 금리는 7~10월말 1.323%→1.232%→1.352%→1.583%로 변동했다. 10월31일 기준 미국 국고채 5년물 금리도 9월29일(1.349%) 대비 0.184%p 오른 1.533%를 기록했다.
기준금리의 추가 인하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도 채권시장 동향에 작용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기준금리 인하 기대를 담아 9월까지 채권금리 인하로 선반영한 뒤, 기준금리 인하 조치 이후 한은의 인하여력이 없음을 확인한 데 따른 시장 반응이라는 얘기다.
한은 기준금리는 현재로도 역대 최저 수준인데다, 지난달 통화정책 회의에서는 '금리동결' 소수의견이 2명이나 나왔다. 미국 연준도 최근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도 기존 "경기확장 지속을 위해 필요한 정책을 쓰겠다"는 문구를 발표문에서 삭제하면서 동결을 강하게 시사했다.
대출금리 인하가 이뤄지려면 일정 기간이 필요한 데다, 금융시장의 긍정적 여건도 조성돼야 하는 상황이다. 은행업계 인사는 "미중 협상타결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최근 채권금리가 다시 하락 조짐을 보이기도 하는 만큼, 앞으로 상황을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은 관계자는 "한은 기준금리 인하는 대출금리 하락 요인으로, 채권금리 상승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 어느 쪽 영향이 더 크냐가 대출금리를 좌우한다"며 "최근 상황은 한은보다 시장에 좀 더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