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니나 내나' 이동은 감독을 만났다. (사진=황진환 기자)
※ 영화 '니나 내나'의 내용이 나옵니다.
2014년 4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 침몰했고, 수많은 생명이 구해지지 못한 채 죽어갔다. 국민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할 정부의 기능이 사실상 멈췄다는 데서 사람들이 느끼는 충격과 절망감은 컸다. 사람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추모하고 애도했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영화 '니나 내나'(감독 이동은)에도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사고를 당했으나 왜인지 모를 이유로 제때 안전하게 구조되지 못하는 셋째 수완(이종원 분)의 죽음과, 그로 인해 가족들이 가진 죄책감과 부채감은 자연스럽게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극중 청소년으로 등장하는 아이들의 가방에, 벽면에 노란 리본이 등장하기도 한다.
개봉 전날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동은 감독은 "제가 이 얘기(세월호)를 해도 되나 하는 고민이 있었다"라며 조심스러워 했다. 다만, 아픈 과거의 기억을 없앨 수 없다면 그걸 조금은 완화할 수 있는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말했다.
일문일답 이어서.
▶ 사소한 궁금증인데, 경환(태인호 분)은 아내 상희(이상희 분)에게 뭔가 잘못을 저지른 거로 이야기가 은근히 깔리지 않나. 정말 바람을 피운 건가.오해한 거다. 배우랑 얘기하기로는 오해 살 짓을 하긴 한 거로 두었다. 더 디테일하게 얘기하기로는 근처에 상인회 같은 게 있는데 등산을 하러 간 거다. 여러 명이 가기로 했는데 다들 취소해서 두 명만 남았고, 그러면 안 가야 하는데 둘이 등산을 간 거다. 자기(경환)도 엄마가 바람피우는 게 되게 싫었을 텐데 본인도 오해를 받았으니 조심해야겠다 하고 숙이는 거다.
▶ '당신의 부탁' 때도 느꼈지만 대사가 일상적이다. 힘이 많이 들어가 있다거나 작위적인 느낌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흘려듣기엔 아까운 대사가 많았다. 가족과의 관계라든가,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뀐다든가, 돈 주면 아저씨가 일을 한다거나, 사람들이 책 자체를 안 읽는다거나 등등. 가장 마음에 남는 대사는.음… 글쎄. 미정(장혜진 분)의 상상 속이긴 하지만 엄마(김미경 분)가 마지막에 (미정 이름을) 세 번 부르는 대사가 있다. (엄마가 일찍 집을 나갔기 때문에) 아마도 미정은 엄마에게 (이름을) 많이 불릴 수 없었을 거다. 미정아, 하고 세 번 불렀는데 배우분이 대사할 때 여러 의미를 담으셨더라. 처음 '미정아'는 약간의 미안함, 과거에 많이 못 불러서 그냥 한 번 부른 것, 더 이상 부를 수 없어서 애틋한 것까지 감정적인 뉘앙스를 담아서 부르셨다. 그걸 듣고 저는 정말 쓰는 사람, 작가로서 소화한 부분(시나리오)을 떠나서 배우의 감정을 덧입혀서 미정아 세 번 부르는 게 좋았다. 편하게 세 번 부르시는데 그냥 그 감정이 되게 좋았다.
▶ 2014년에 이 작품을 썼다고 들었다. 당시 일어난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다. '잊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넣는 것이 혹시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하진 않았나.작위적일까 하는 염려보다는, 제가 이 얘기를 해도 되나 하는 고민들? 표면적으로, 명시적으로 (보여주려고) 하진 않았던 것 같다. 서브 텍스트로 가려고 했다. 동시에 저 역시도 기억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우리가 노란 리본 달고 다닌 게 일종의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지 않나. '나는 잊지 않겠다'라고. 유가족 인터뷰를 봤는데, 간혹 가방에 (노란 리본을) 매고 다니는 걸 보면 반갑다고 한다. '이 사람은 기억해 주는구나' 해서. 어머니(경숙)가 (죽은 셋째 수완의 이름으로) 간판 만든 이유가 잊지 않겠다는 걸 표명한 것처럼. 잊지 않겠다는 의지도 있지만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려는 일종의 명령어 같았다. 유가족분들도 그렇고 저희도 그렇고 과거에 머무를 수만은 없고, 살아내야 하기 때문에 좋은 기억으로 현재를 만들어냈으면 좋겠다는 그런 바람? 그런 의지로 이야기를 넣었다.
'니나 내나'에 출연한 배우들. 맨 윗줄 왼쪽부터 이상희, 한별, 이가섭. 두 번째 줄 왼쪽부터 이효제, 고인범, 김푸름, 백지원. 세 번째 줄 왼쪽부터 김미경, 김진영, 장혜진 (사진=명필름, 로랜드 스튜디오 제공)
▶ 이번에 같이 작업한 배우들 이야기도 듣고 싶다.장혜진 선배님은 워낙 미정이 같은 모습을 평소에 많이 봐 와서. 미정이 밝고 평범한 듯 보이지만 알고 보면 진중한 면이 있다. 미정 본인은 엄마로서 역할을 하려고 하지만 본인 개성을 지닌 것이지 않나. 그런 모습이 비슷하다고 해야 하나? 인호 씨는 매체에서 연기 볼 때 수트가 너무 잘 어울리지 않나. 팀장님이나 병원에 어울리는! 웃는 얼굴이나 사투리 쓰는 게 편해 보이더라. 연기는 표준어를 잘 구사하는데 인터뷰 때 사투리를 쓰더라. 만나 보니까 되게 소탈하고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다. 박훈정 감독이 '신세계' 나올 때 캐스팅한 이유가 컴퓨터를 되게 잘 다룰 것 같다는 거였다. 조직 중 한 명은 브레인이 있지 않나. 근데 컴퓨터 잘 못 한다. 정말 안 좋아한다고 한다. 집에서 인터넷 한 시간 하면 되게 피곤하다고. (웃음) 혼자 낚시하는 거 좋아하고 수더분하고 (평소엔) 양복 입는 거 안 좋아하는 게 경환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재윤 역 했던 가섭 씨에게선 예민함과 섬세함을 봤고, 그 모습이 (재윤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찾아보니까 고향도 부산이고, 사투리 잘하겠구나 했다. 또, 가족관계가 비슷하다. 장혜진 씨는 남동생이 있고 태인호 씨는 장남이면서 남동생이 있고, 가섭 씨는 누나가 있더라. 그래서 그 관계를 잘 알 것 같았다. 상희 씨는 우정 출연하게 됐는데 너무 잘 살려줬던 것 같다. 전작에서 임산부 역할 해서 부담될까 봐 넌지시 '(이번에도) 임산부 역할 하면 재미없겠죠?' 하니 전혀 상관없다고 하더라. 시나리오 건넸더니 분량이 적은데도 불구하고 나와줬다. (상희 씨가) 인호 씨하고도 사적으로 친하고. '배심원들' 촬영할 때 약간 겹쳤다. 고인범 쌤은 지역에서 계속 활동하시는 분이라 사투리가 워낙 자연스러우셨다. 처음에는 체구 작은 분을 생각했는데 워낙 이미지가 (만길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제가 생각한 보수적인 아버지의 모습? 너무 그렇게 보려고 노력했을 수도 있다. (웃음) 완고하지만 알고 보면 여린 면도 있는 만길과 비슷하다고 봤다.
김미경 쌤은 전작들도 봤고 꾸준히 늘 팬이었다. '밀양' 때도 그렇고 다른 독립 단편에서도 눈여겨봤다. '어?' 하는 느낌이었다. 사실 어머니 역을 하기엔 나이가 젊으시다. '배심원들'에서 더 (나이) 많은 역도 하셨지만, 삼 남매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이 과거 모습이지 않나. 좀 젊으셔도 된다고 봤다. 진영 씨(규림 역)는 처음 작업했다. 오디션 봤는데 사투리를 못 썼다. 제가 가르쳐줬는데 왠지 잘 해낼 거 같았다. 딱 꽂히는 게 있지는 않았지만, 진영 씨는 평범한 게 매력이었다. 뭐랄까 평범하지만 예뻐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본인 개성과 매력을 지닌 걸 본인이 잘 아는 느낌.
▶ '니나 내나'는 올해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전작 '환절기', '당신의 부탁'까지 장편영화 세 편이 모두 부국제에 초청됐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부산영화제는 배우분들이 그 어떤 다른 해외 영화제보다도 너무 가고 싶어 했다. 다들 부산이 고향이어서. 장혜진 선배님도 주인공으로는 처음 가는 거고, 가섭 씨도 처음이고, 인호 씨도 너무 오랜만에 가는 거라서. 저는 부산영화제에 가족들 초청하진 않았는데, 배우분들은 가족들한테 (이 영화를) 보여주고 싶은 것 같더라. (초청받아서) 저도 당연히 좋았지만, 배우분들이 좋아하셔서 더 좋았다.
▶ 부국제 상영 때나 언론 시사회 등을 통해 보고 들은 감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부산영화제 때는 부산분들이라서 더 공감을 많이 해주셨던 것 같다. 사투리 장면 하나하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웃으시는 분들이 많아서 재밌던 것 같다. 시사를 두 번 했던 것 같은데 이번 영화가 한 사람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여러 인물을 따라가는 거라서 어떤 인물을 따라가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더라. 어떤 분은 미정에 집중하고, 어떤 분은 전체적인 걸 보시고. 저도 만들면서 생각 못 했던 부분까지 얘기해 주셔서 재밌었다.
이동은 감독의 장편영화 '환절기', '당신의 부탁', '니나 내나'(개봉일순)는 모두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됐다. (사진=각 제작사 제공)
어떤 분이 질문하신 게 있다. 칼국숫집에서 다시 모였을 때 (가족들) 젓가락질을 얘기하더라. 한 명도 평범한 젓가락질을 하는 사람이 없는데 의도한 거냐고. (웃음) 촬영하면서 그 점은 알고 있었다. 인호 씨랑 규림이는 왼손으로 먹고 장혜진 씨, 가섭 씨는 젓가락질이 개성적이다. 가족 영화지만 각자 고유성을 가진 것 같아서 좋았다. 그 장면 얘기해 주셔서 생각해 보니까 그게 또 우리 영화랑 닮아 있구나. 가족을 그리고 있지만, 각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다른 게 같은 거다. '니나 내나'라는 것도 다른 사람끼리 (사는 게) 비슷하다는 거니까.
▶ 과거 인터뷰에서 너무 노골적이고 징글징글하게 인물과 감정을 다루는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니나 내나'를 보면서 중반까지는 서로 감정을 충분히 드러내지 않아서 답답한 느낌이었다. 이런 전개를 택한 이유는.아마 인물이 많다 보니까 그런 것 같다. 보통 영화는 한 인물을 따라가다 보니까 집중되는데 이 작품은 이야기하려는 인물이 여러 명이고 병렬로 가다 보니 집중도가 낮아지는 것 같다. (초반에) 정보가 많다 보니 답답한 게 아닐까. 질문하신 맥락에서 말씀드리자면 '니나 내나'는 전작보다는 감정을 많이 드러내는 게 있다. 제(성격)가 그렇기도 하고, 제가 보고 싶은 게 그렇기도 한데, 워낙 감정을 잘 드러내는 드라마·영화가 많지 않나. 감정의 노골성, 삶의 지긋지긋함을 드러내는 것도 많고 우리가 거기에 익숙해져 있다.
근데 저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 성숙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얘기를 하고 싶어 한다고 해야 하나? 우리 사회가 울부짖지 않아도,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 집중했으면 좋겠다. '환절기' 보고도 어떤 분이 '나는 이 사람들의 힘듦이 하나도 공감 가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너무 충격적이었다. 이게 사회의 한 모습이구나. 저 역시도 우를 범할 수 있는데, 어떤 사람이 '난 힘들어요'라고 울부짖어야만 나는 아픔에 공감하는구나 생각했다.
성숙한 사람은 자기 고통을 숨기려고 한다거나 아주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는데, 우리는 그 사람의 아픔에 집중하지 않는구나… 평상시에도 노골적으로 울부짖지 않아도 됐으면 좋겠다. '덜 아파요' 해도 충분히 아프구나. 예를 들어 사회적 아픔을 겪은 유가족분도 평정심을 유지하거나 이후 일 처리에 대해 덤덤하면 그게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란 생각에, (사람들이) 공감을 잘 안 해 주는 경우도 왕왕 있어서… 제 작품에서는 늘 그게 고민이다. 어떤 한 인물의 아픔을 그려낼 때 저는 제 수위의 어떤 부분까지 보여드리는데, 의도와 별개로 공감을 못 얻으면 어떡하나. 어느 정도까지 보여드려야 하나. 그렇다고 고통을 전시할 순 없으니.
▶ 삶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방향성은 여전한가.그렇다. SF가 됐든 어떤 장르가 됐든. 사실 제가 지향하는 영화가 영화적인 미학과 완성도에는 못 미칠 수 있다. 목표가 세계 100대, 별 다섯 개 영화는 아니다. 물론 저는 웰메이드를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있지만, 그런 영화는 못 되더라도 이 영화를 토대로 계속 얘기할 수 있는 영화? 영화사에 기록되는 영화는 아니더라도, 그 영화 통해서 다시 돌아보게 되거나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영화이길 바란다.
▶ 차기작 계획이 궁금하다.현재는 없다. 제가 쓰는 시나리오를 연출하고 싶은 것도 있지만 제가 장르적이고 상업적인 시나리오를 쓰지 않아서… 제가 쓰지 않은 이야기를 오로지 연출자로서 제 색깔을 입혀서 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다른 작가의 시나리오를 제 색깔을 내서, 제가 할 수 있는 드라마를 해 보고 싶다. <끝>
'니나 내나' 각본을 쓰고 연출한 이동은 감독 (사진=황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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