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부터 휠체어를 탄 채 탑승할 수 있는 고속버스가 4개 노선에서 3개월간 시범 운행에 들어갔다. 교통약자 이동편의증진법이 시행된 지 13년 만에 이룬 성과다. 하지만 장애인은 출퇴근과 여행을 위해 이동할 권리, 치료받을 권리 등 일상권에서 여전히 배제돼 있다. CBS노컷뉴스는 일상을 누릴 권리조차 갖지 못한 우리나라 장애인의 현실을 3차례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
① 장애인에게도 '일상권'을 -출근할 권리 ② 장애인에게도 '일상권'을 -놀 권리 ③ 장애인에게도 '일상권'을 -치료받을 권리 |
"앞니 7개가 없는 상태로 1년을 살았어요. 30년 전 교통사고로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이가 아파도 그냥 참기만 하다가 사단이 난거죠. 지금도 주위에 많아요, 이가 아파서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치아 없는 장애인들."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던 지난 13일 오후 2시, 1급 지체장애인 정정희(64)씨가 전동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서울 상암동 소재 장애인 치과병원에 도착했다. 과거 사고로 부러지고 뽑혀나간 치아 대신 심어 넣은 임플란트 10개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결심'하고 나온 것이었다.
인천 연수구에 살고 있는 그는 치료를 위해 병원에 오는 길이 "마치 여행 같다"고 했다. 다리가 불편한 그에게 인천에서 서울 상암동까지는 꽤나 먼 거리이기 때문이다.
거동이 힘든 정정희 씨가 22개의 지하철역을 지나, 2시간 30분가량을 달려 상암동까지 와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치과진료 후 전동휠체어에 타고 있는 정정희씨(64) (사진=송정훈 기자)
◇ 장애인들에게 치과치료는 '하늘의 별따기'2016년 국민 다빈도 질환 조사에 따르면, 장애인의 다빈도 질환 1순위는 '치은염(잇몸염) 및 치주 질환'이다. 장애인들에게 '구강질환'이 매우 흔하면서 심각하다는 것인데, 문제는 장애인들의 치과병원 접근성이 매우 열악하다는 점에 있다.
실제 장애인이 제대로 된 치과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장애인 치과병원 특성상 일반치과의원에 비해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렵고, 운영도 매우 어려워 장애인 전문 치과병원 자체가 드물기 때문이다.
물론 스케일링 등 어렵지 않은 치과진료는 동네치과의원에서도 가능하지만, 일부 중증 장애인의 경우 혼자 양치질을 못하거나, 아픈 것을 표시조차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구강상태가 심각한 채로 병원에 내원한다.
일반 치과의원에선 볼 수 없는 전신마취 기계 (사진=송정훈 기자)
휠체어 환자를 위해 엑스레이 촬영실 바닥의 턱을 없앴고, 높이를 낮추기 위해 바닥아래로 엑스레이 기계를 심었다 (사진=송정훈 기자)
장애인치과병원의 경우 진료실과 수술실, 엑스레이실, 복도까지 장애인 환자의 특성에 맞게 운영된다. 정정희씨가 내원한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통합치과진료센터(장애인치과병원) 진료실의 경우, 치과 체어 사이 간격이 일반치과의원보다 멀리 떨어져 있다. 장애인 전동휠체어의 이동을 고려해 치과 체어 3개를 설치할 수 있는 공간에 2개만 놓고 운영하는 것이다. 그만큼 하루에 진료할 수 있는 환자가 줄어드니 병원의 수익은 줄어든다.
수술실에는 일반 치과의원에선 찾아볼 수 없는 6~7천만 원 정도의 전신마취기계 2대가 있다. 자폐성, 뇌병변, 지적·정신장애 환자는 치과진료시 작은소리에 민감하고 금속 치과진료기기에 대한 두려움도 있어 전신마취가 거의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런 수술실을 만드는데 들어간 돈은 2억 정도지만, 전신마취를 할 때마다 병원은 손해를 본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백한승 통합치과진료센터장은 "장애인 병원은 대기실부터 복도, 진료실까지 모두 일반 치과의원에 비해 넓은 편이다. 장애인 환자의 특성에 맞춰 전동휠체어가 움직여야 할 공간을 확보해야 하고, 환자 한 명당 간병인, 보호자 등 최대 3명이 내원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환자가 움직이지 못해 앰뷸런스 침대 전체가 들어온 적도 있고, 자폐 환자가 수술실을 계속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장애인치과치료와 비장애인 치과치료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수익성은 포기하고 봉사와 희생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 차이점이다"고 했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 환자를 위해 치과 체어 사이 간격이 넓다 (사진=송정훈 기자)
전동휠체어로 움직여야 하는 장애인들을 위해 복도가 넓은 편이다. (사진=송정훈 기자)
◇"너무 멀다, 너무 비싸다"이런 상황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신마취와 치료 등을 할 수 있는 장애인환자 전문센터가 최근까지도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2008년부터 장애인구강진료센터 설치·운영 지원사업을 시행해 올해 11월 현재 전국 10개 중앙·권역센터가 설치운영 중에 있으며, 2021년까지 전국에 17개 권역센터를 설치·운영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의 '접근성'이다.
실제로 치과병원에서 만난 장애인 A씨는 치과치료를 위해 콜택시를 부를 수 있는 김포공항까지 이동해 콜택시를 2시간 기다리고, 또 2시간을 달려 치과병원에 왔다고 했다. 집에서 치과병원까지 이동시간이 최소 4시간 이상이 걸렸던 것이다. 콜택시 비용도 일부 보조금이 있지만, 직접 부담해야 했다. 병원 이동비용도 치과치료 비용에 포함이었던 셈이다.
A씨에 따르면 현재도 많은 장애인들이 치과 치료를 위해 김포공항에서 콜택시를 기다리고 있다.
장애인구강진료센터 설치현황 (사진=치과의사협회 제공)
이날 CBS노컷뉴스가 만난 정정희씨는 운이 좋은 편이다. 치료금액 710만원 중 500만원을 푸르메재단으로부터 지원받았기 때문이다. 그가 인천에서 서울 상암동까지 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편으론 치과치료에 비급여가 많아 710만원이라는 치료비가 비싼 편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가 받은 치료는 임플란트 10개, 뼈이식, 보철치료 등으로 대학병원에선 3천만 원 이상 수준의 치료 내역이다.
사실 장애인구강진료센터 개소로 중증 장애인 구강 치료는 미약하게나마 숨통이 트인 상황이라는 평가지만, 진료비 부담은 보완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애인구강진료센터의 경우 국민기초생활수급자 장애인은 비급여 본인부담 진료비 총액의 50%, 치과영역중증장애인은 30%, 치과영역경증장애인의 경우는 10%를 지원하는데 치과진료 특성상 비급여 대상이 비교적 많아 실제 체감효과는 적다는 것이다.
현재도 많은 중증장애인들은 수백만 원이 드는 치과치료를 포기하고 치아를 뽑아버리고 있다.
권역장애인구강진료센터 진료비 지원 현황 (사진=치과의사협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