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강(强對强)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던 한일 관계가 22일 우리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조건부 연기' 결정으로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이어 올해 7월 일본의 수출규제 보복 조치, 그리고 8월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맞대응 등으로 '살얼음판'을 걷는 듯 했던 양국 관계는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가는 모양새다.
◇ 靑 "지소미아 종료 연기" 日 "수출관리 국장급 정책대화"
하지만 수출규제 조치 철회 등 일본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아직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당장 이번 지소미아 종료 연기를 지렛대로 한일 관계가 해빙 국면에 들어가기에는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날 오후 브리핑을 열고 "우리 정부는 언제든지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 협정의 효력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전제 하에 2019년 8월 23일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시키기로 했고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한 이해를 표했다"고 밝혔다.
또 "한일 간 수출 관리 정책 대화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동안 일본 측의 3개 품목 수출규제에 대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절차를 정지시키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당초 청와대와 정부는 원래 계획대로 한국을 안보상 신뢰하지 않는 일본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막판 일본와의 물밑 협상을 통해 태도 변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날 오후 한국이 WTO를 통한 분쟁 해결 절차를 중단하기로 했으며, 이를 수용해 수출 관리와 관련한 문제를 다루는 한일 과장급 협의 및 국장급 정책 대화를 열 것이라고 밝혔다.
◇ 잠시 멈춘 시한폭탄...올해 말까지는 협상 국면
일본 정부가 수출 관리와 관련한 한일 외교 채널을 가동한다고 공식화했지만, 지소미아 종료 연기조치와는 일정한 선을 긋고 있다는 점에서 상황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일 외교채널 가동은 지소미아 종료 연기와 무관하고, 지소미아 종료를 촉발했던 백색국가(수출절차 우대국)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한 조치도 유지하며, 반도체 원료 등 3개 품목에 대한 개별적 심사 수출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는 '지소미아 종료 연기'와 'WTO 제소 절차 중단' 등의 실효적 조치를 일본에 건넸지만, 일본은 국장급 협의를 해보자는 정도의 카드만 던진 셈이다.
이에 따라 이날 청와대 안팎에서는 우리 정부가 결국 '현찰을 주고 어음을 받은 것 아니냐'는 우려섞인 지적도 나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소미아를 다시 종료시킬 수 있는 권한 행사를 우리가 보유하게 됐다"며 애써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향후 일본의 태도 변화만 일방적으로 기대해야 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지소미아 종료 유예가 적용되는 시점은) 한일간 대화를 해봐야 알겠지만 최종 시한은 일본측 태도에 달려있다. 상당기간 지연되는 것은 허용불가하다"고 말했다.
◇ 올해 말 지나면 시한폭탄 재점화...다음달 한일 정상회담 가능성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유예 결정이 나온 직후 일각에서는 올해 말까지가 협상 '데드라인' 아니냐는 전망을 내놨다.
일단 올해까지 한시적으로 시한을 정해 한일간 이견 조율 과정을 거치는 것이 사태 장기화 방지는 물론 집중적 논의를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현 단계에서 그 시한을 예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을 아꼈다.
이에 따라 갈등 봉합의 키를 쥔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다음달 정상회의를 열어 '탑다운' 방식의 해결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두 정상은 이달 초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태국 방콕에서 만나기는 했지만 현안을 논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11분 환담'에 그쳤다.
당장 다음달 하순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릴 예정이다. 이를 계기로 한일 정상이 별도의 회담을 가질 가능성도 있다.
한일 국장급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한국 혹은 일본에서도 양국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청와대 고민정 대변인은 "정해진 게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