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근처 골목 '문재인 하야 범국민 투쟁본부'라는 단체의 집회 무대에 오른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왼쪽)와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오른쪽) (사진=노컷브이 영상캡처)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20일 단식 선언 직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문재인 하야 범국민 투쟁본부(범투본)'라는 단체가 농성 중인 천막이었다. 범투본 무대에 오른 황 대표는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회장에게 이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
"청와대가 대표님한테 허가를 안 해준다고, 그런 말을 들었는데요. 허가요? 헌법을 무시하는 놈들한테 허가를 받을 필요가 있나요? 아니, 대표님이 자리 떠나면 안 돼. 국회요? 국회에서 하면 무효야. 저하고 같이 누워요"
무대에 함께 있던 한국당 의원들은 표정이 싹 굳었다. 다만 황 대표는 멋쩍은 듯 웃어 보이며 전 회장 손을 잡았다. 이후 만세 삼창을 한 뒤 내려왔고, 닷새 동안 농성하면서도 그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여러 차례 목격됐다.
왼쪽부터 자유한국당 이은재·김명연·정태옥·이만희·박맹우·전희경 의원, 황교안 대표, 전광훈 한기총 회장(사진=연합뉴스 제공)
◇ "밀착, 피하는 게 좋다" 당내 우려한국당에서는 상당수가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중도층 외연 확장을 요구하는 당내 목소리와 배치된다는 점에서다.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장소가 근접해 있어서 어쩔 수 없었겠지만 개인적으론 안 가셨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면서 "당 대표 직함을 갖고 그분(전 회장)과 너무 밀착돼 있는 듯한 모습은 피하는 게 좋다"고 밝혔다.
일부 극우세력을 제외한 일반 기독교인들의 표심을 잃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이들이 걱정하는 대목이다.
전 회장은 지난 8월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대신 교단으로부터 면직 처분을 받은 바 있다. 물론 제명 직전 교단을 탈퇴하고 새 교단을 차렸기 때문에 '목사' 직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아울러 그가 회장으로 있는 한기총도 주요 교단이 대부분 탈퇴하면서 현재 극우 세력 중심으로 남은 상태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다른 나라 같으면 총격을 가해 죽였을 것"이라고 했던 그의 이날 발언이나 "광화문 집회에 안 나오는 분들은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우겠다"던 지난달 총회 예배 발언 또한 안팎의 빈축을 사고 있다.
이를 두고는 "기독교 복음의 요체는 사랑인데 그걸 대놓고 부정하는 분이 어떻게 목사님이냐. 황 대표가 거기에 어떻게 넘어간 건지 모르겠다(익명을 요구한 다른 당 기독교 의원)"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6월 27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한국기동교총연합회 주최로 열린 문재인 대통령 하야 촉구 1000만 서명 발대식에서 대표회장 전광훈 목사가 발언하고 있다. (자료사진=박종민기자)
◇ "동원력은 최고" VS "과대포장일 뿐"그렇다면 실제 전 회장이 보수우파에 지분을 얼마나 갖고 있을까. 제1야당 대표에게 입김을 넣을 정도가 될까.
야권 관계자들은 전 회장이 극단적 우파 성향 기독교 신자들에게 소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수십만명이 쏟아져 나온 지난달 광화문 집회 일부를 주최했던 점에 주목한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중도층도 많았지만, 시점과 장소를 잡아 모이게 한 것도 그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TK(대구·경북) 지역 한 초선 의원은 "한국당이 자체로 동원할 수 있는 건 몇만 명 되지 않는다"면서 "우리가 품을 수밖에 없는 건 그의 대중 동원력이 상당한 데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동원력의 중심에는 그가 지난 1988년 창립한 '청교도 영성훈련원'이 꼽힌다. 이들은 거리 집회 참여도가 높고 특히 특정 정당의 당원으로 등록할 경우 전당대회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막강한 위력을 떨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3만 5천명이 참여하고 있다는 게 훈련원 측 주장이다.
다만 전 회장 개인의 동원력에 대해서는 '태극기 세력'으로 대표되는 극우파 내에서도 평가는 엇갈린다. 그가 주최하는 농성이나 집회에 참가한다고 해서 모두 '전광훈 세력'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공화당 핵심 관계자는 "그분들의 뜻은 문재인 정권을 끌어내리자는 것이지, 만약 전 회장이 당을 만든다든지 이를 세력화할 경우 영향력은 급속도로 약화될 것"이라며 "본인 스스로를 과대포장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앞에서 5일째 단식 농성을 이어가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4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 서 열린 긴급의원총회 도중 불편함을 느껴 사랑채 앞 천막으로 이동하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이한형기자
◇ 강경일변도 투쟁기조, 더 강화될까
취임 이후 전 회장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둬 왔던 황 대표가 이번에 전격적으로 그를 찾아간 건 흔들리는 '전통 지지층'에 대한 대응 차원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근 박찬주 전 육군대장 영입발표 보류, 유승민계와의 통합 추진 등을 두고 나오는 강경파의 볼멘소리를 의식한 행보라는 얘기다.
이에 대해 황 대표의 한 측근은 "나라 잘돼라고 두 달 동안 맨바닥에서 천막 치고 농성하는 분들을 외면하지 못했을 뿐이지 전 목사와의 관계를 과시할 생각은 없었을 것"이라며 "한 번은 불가피했지만 이제는 선을 긋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당장의 여론뿐 아니라 당의 강경일변도 투쟁기조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집회에서도 황 대표는 "제가 할 일, 저희가 할 일을 여러분들이 다 하셨다"며 범투본 노숙농성에 힘을 실었다. 그럼에도 전 회장은 "자유한국당이 너무 얌전하다. 자꾸 대표님을 방에만 놓고 앉아 있다"며 강경책을 주문했다. {RELNEWS:right}
이밖에 최근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는 바른미래당 비당권파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 측과의 통합 흐름도 저해할 우려가 있다. 변혁 소속 한 의원은 "황 대표가 전 회장을 만난 사건을 보고 상당히 실망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