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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의 비극, 그리고 우리 사회에 남겨진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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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하라의 비극, 그리고 우리 사회에 남겨진 숙제

    25일 가수 고 구하라의 일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영정사진이 보이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가수 구하라(28)가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지 오늘로 나흘이 됐다. 온라인상에는 동료 연예인과 팬들의 추모의 글이 계속해서 올라오며 침통한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다.

    구하라의 사망 사건을 조사중인 경찰은 25일 "구하라의 자택에서 신변을 비관하는 내용의 메모가 발견됐다"면서 "범죄 혐의점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에 생전 악성댓글(악플)에 대한 고통과 우울증을 호소해 온 구하라는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한달 남짓한 기간, 잇따라 전해진 설리(본명 최진리·25)와 구하라의 비보에 대중의 충격은 컸다. 특히 설리 사망 이후 악플에 대한 심각성과 문제의식이 높아진 상황에서 전해진 소식이라 파장은 더욱 큰 상황이다.

    연예인을 향한 악플의 공격은 비단 오늘 내일 일만은 아니다. 그간 많은 스타들이 악플에 대해 상처를 입고 고통을 호소해 왔다. 그럴 때마다 악플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와 정책 개선 여론이 등장했지만, 결과적으로 바뀐 것은 없다.

    설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의 사망 이후 한국연예계매니지먼트협회(이하 연매협)와 대한가수협회 등이 "악플에 대한 초강경 대응"을 예고했고, 국회에서는 악플 예방에 대한 내용이 담긴 '선플운동법'이 발의됐다.

    또 악플의 온상으로 지목되던 포털 역시 댓글을 폐지하거나 필터링 기능을 강화하는 등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악플은 여전히 기승을 부렸다. 그 속에서 또 한 명의 별이 졌다.

    잇따른 비보에 악플의 심각성에 대한 우려는 그 어느때보다 높은 상태다. 이들은 SNS나 청와대 청원 게시판 등을 통해 "더 이상의 비극은 없어야 한다"며 '사이버 폭력 처벌 강화'나 '인터넷 실명제 도입'을 주장하는 등 실질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외신 역시 구하라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이같은 사실을 조명했다. CNN은 "이번 사건은 온라인상 악플로 인한 K팝 스타들의 극심한 압박에 대한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켰다"고 짚었다.

    대중의 화살은 언론에게도 향했다. 연예인에 대한 자극적 보도 행태를 보이는 일부 언론을 꼬집은 것이다. 이들은 "악플을 조장하는 언론의 자극적 보도 역시 문제"라며 언론의 자성을 촉구하고 있다.

    가수 솔비 역시 이 같은 주장에 궤를 같이했다.

    솔비는 25일 자신의 SNS를 통해 "악플러들은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인권 보호라는 선처 아래 몸을 숨겼고, 그런 공격을 받는 연예인들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소리 한 번 못 냈다"면서 "이러한 문제는 비단 댓글 문화만의 탓일까요? 그 구조를 계속 방관해 오던 많은 미디어와 포털사이트를 포함한 매체들에게 묻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제는 힘을 모으고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 제도적 변화를 모색하고, 모두가 더 이상 방관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며 "악플러들의 대상으로 쉽게 여겨지는 연예인뿐만 아니라 수많은 피해자들의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법안 개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에 그간 곪아 있던 이 같은 문제점은 세상을 떠난 구하라가 다시금 경종을 울렸고, 이는 우리에게 숙제로 남게 됐다.

    ◇ 구하라 사망 사건 계기, 더욱 거세지는 '성범죄 양형 기준 재정비' 요구

    생전 구하라를 괴롭힌 건 악플만이 아니었다. 지난해부터 불거진 전 남자친구 A씨와의 법정싸움 역시 그의 마음을 크게 옥죄었을 것으로 보인다.

    구하라는 지난해 A씨와 쌍방폭행 논란에 휩싸인 이후 그에게 불법 촬영 영상으로 협박 당했다고 폭로했다.

    이어진 지난한 법정 싸움 속에서도 구하라는 악플에 시달렸다. 특히 온라인에서는 범죄 자체가 아닌 동영상의 유무에 대해 호기심을 표하는 등 성희롱과 같은 2차 피해도 발생했다. 이에 그는 지난 5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에 이른다.

    이후 8월 법원은 A씨에 대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A씨에 대해 적용된 공소사실 중 상해, 협박 등 일부만을 유죄로 인정하고, 불법 촬영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여성 연예인인 피해자가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도 "두 사람의 관계를 종합해보면 촬영 당시에 명시적 동의를 받지는 않았지만,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찍은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구하라 측은 1심 판결에 대해 "적정한 양형이라고 볼 수 없다"며 "우리 사회에서 피고인이 행한 것과 같은 범죄행위가 근절되려면 보다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하며 항소한 상태다.

    이 같은 판결은 구하라의 사망 이후 다시금 재조명 됐다. 특히 구하라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해 재판부의 판결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의견이 나오면서부터 여론은 들끓었다.

    지난 15일 올라온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의 양형기준을 재정비해주세요'라는 청와대 청원은 구하라 사망 소식이 전해진 후 순식간에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며 청와대의 답변 조건을 충족했다. 26일 현재 해당 청원에 동의한 이는 23만 명이 넘는다.

    정치권도 이 같은 1심 판결을 비판하며 정책 변화를 강조했다.

    정의당 강민진 대변인은 2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폭력과 불법촬영 피해를 입고,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피해 사실이 대중에 여과 없이 알려지며 2차적 피해를 입었던 고인의 고통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하면, '아직 살아남은' 여성들은 가슴깊이 비통할 수밖에 없다"고 애도를 표했다.

    그러면서 "작년 故(고) 구하라 씨는 데이트폭력·불법촬영 가해자를 고발해 법의 심판을 호소했으나, 법원은 불법촬영 등에 대해 무죄로 판결하고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며 "폭행 피해와 더불어 불법촬영물을 유포하겠다는 협박까지 당했던 고인의 고통에 비하면 너무나 가벼운 처벌이었다. 1심 판결은 여성으로서 고인이 입은 피해의 성격과 크기를 전혀 헤아리지 않은 판결이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 해당 재판은 2심 진행 중으로, 고인을 고통스럽게 했던 범죄의 판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법원이 이제라도 고인이 겪었던 범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행한 범죄의 크기에 걸맞는 책임을 가해자에게 엄중히 묻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울러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이 근절되려면, 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2차 피해를 걱정하지 않고도 피해를 고발할 수 있어야 한다"며 "여성이라는 이유로 폭력과 차별을 겪은 피해자들의 곁에 서서, 여성폭력이 실질적으로 근절될 수 있도록 누구보다 앞장서 제도와 정책의 변화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녹색당도 이날 논평을 통해 "'연예인 생명 끝나게 해주겠다'며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하려 한 가해자는 죄의 무게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서 "그에게 '반성하고 우발적이었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사는 고 장자연 성추행 혐의의 전 조선일보 기자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이것은 재판이 아니라 만행"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남성 아이돌은 성매매, 성매매 알선, 횡령, 원정도박을 해도 구속 없이 자유롭게 지내다 군대로 도피하면 그만이지만, 여성 아이돌은 브라를 하지 않았다고, 연인에게 폭력을 당했다고 언론과 대중에게 조리돌림 당하다 목숨을 끊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라고 강조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다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NEWS: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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