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CBS 라디오 <김덕기의 아침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00~07:30)
■ 진행 : 김덕기 앵커
■ 대담 : 홍제표 기자
◆ 김덕기 >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를 살펴보는 <한반도 리뷰> 시간입니다. 홍제표 기자, 오늘은 어떤 주제를 갖고 나왔나요?
(사진=연합뉴스)
◇ 홍제표 > 지난 금요일(22일) 막판 급반전을 이룬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급히 봉합은 했지만 상태는 매우 불안정합니다. 말 그대로 잉크도 마르기 전에 합의 내용을 놓고 말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는 꽤 익숙한 장면입니다. 한일 간의 외교협상은 대부분 뒤끝이 좋지 않고 그 원인은 대체로 일본에 있었습니다. 신의성실 원칙 위반이죠. 때문에 이번 합의 역시 제대로 지켜질지 전망은 회의적입니다. 미리 대비하자는 차원에서 과거 일본의 행태와 대책을 살펴보겠습니다.
◆ 김덕기 > 먼저, 이번 합의의 내막이 뭔지 아직도 진실게임이 벌어지고있는 상태죠?
◇ 홍제표 > 그렇습니다. 지난 22일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의 발표문은 단 세 줄짜리였지만 이를 놓고 아직도 한일 간 공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요 대목은 지소미아 연장 조건으로 수출규제를 해제하기로 했는지, 막판 타결에 이르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누가 먼저 양보한 것인지 등등입니다. 심지어 사과를 했니 안 했느니를 놓고도 말이 다를 정도입니다. 청와대가 일본 측으로부터 합의내용을 부풀려 발표한 것에 사과를 받았다고 한 것 때문입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상의 그제 발언을 들어보시죠.
"한국 측의 발언 하나하나에 대해 논평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일본 정부로서 사과한 사실은 없습니다."
◆ 김덕기 > 이게 단순한 신경전이나 감정싸움 차원은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런가요?
◇ 홍제표 > 그럴 거라면 한두 번 하고 말았을 텐데 좀 길어지고 있습니다. 어제는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도 나서서 "사죄한 사실이 없다"고 또 부인했습니다. 양측이 이렇게 사사건건 부딪히는 것은 협상 자체 못지않게 여론전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이 주장하듯 자기들은 아무런 양보도 하지 않았는데 미국의 강력한 압박에 못 이겨 한국이 일방적으로 굴복했다는 논리가 먹혀든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렇게 되면 나중에 일본이 수출규제 해제 약속을 안 지키더라도 미국이 무서워서 지소미아 종료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지소미아를 카드로서 사용할 수 없는 셈이죠. 한국 내 여론을 갈라놓으려는 일본의 전형적인 이간계, 교란전술입니다.
◆ 김덕기 > 일본이 이번 지소미아 합의를 7분 늦게 발표한 것도 그런 맥락이겠죠?
◇ 홍제표 > 치졸한 꼼수라고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양국 정부는 이번 합의를 동시에 발표하기로 했고, 이는 국제사회의 상식입니다. 일본은 심지어 합의된 발표 내용 외에 일방적 내용이 담긴 문구도 추가했습니다. 이에 우리가 항의하고 일본은 사과했지만 이를 놓고 다시 진실게임이 벌어지게 된 배경입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은 합의 발표 시점을 1시간쯤 앞두고 자국 언론(NHK)에 관련 사실을 먼저 흘리는 수법을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이 지소미아를 연장하기로 한 사실만을 미리 보도함으로써 외교적 승리인 것처럼 눈속임하는 또 다른 꼼수입니다.
◆ 김덕기 > 문제는 일본의 이런 행태가 한두 번이 아니라는 건데요, 합의가 지켜질지 걱정입니다.
◇ 홍제표 > 대표적인 게 2015년 위안부 합의입니다. 일본은 당시 합의문에 없던 소녀상 이전 문제를 거론해 이면합의 논란이 벌어진 바 있습니다. 같은 해 있었던 '군함도' 등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합의와 관련해서도 일본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당시 조선인 등의 강제노역 사실을 명기하기로 해놓고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강제'라는 단어 대신에 일본 산업을 '지원'(support)했다는 식으로 또 꼼수를 부리는 것이죠.
◆ 김덕기 > 일본은 분명 강제징용 문제와 수출규제를 연계하려 할 텐데, 이것도 협상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 아닙니까?
◇ 홍제표 > 그게 가장 큰 관건입니다. 일본은 한국이 강제징용 문제를 풀어야 수출규제도 풀겠다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양보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최근에 문희상 국회의장이 수정안('1+1+α')을 제안했는데 일본 측 반응도 애매하고 국내 동의를 얻을 가능성도 높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인 일본의 사과가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자유한국당 소속인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조차 의문을 표시할 정도입니다. 어제 국회 발언 내용 들어보시죠.
"일본 기업은 자발적으로, 그래 의무사항이 아니다, 그럼 한국 기업은 다 내죠. 배상금 성격이 아니다, 그래 장학금 성격으로 내겠다. 일본 기업은 오케이(하면서) 일단 받을 겁니다. 그리고 한국 기업이 먼저 내라, 우리는 시차를 두고 3~4개월 후에 장학금 명목으로 한 번 내보겠다, 그리고 국민성금도 모으고, 이게 하나의 단기적 해법은 될 수 있을지언정 정말로 근본적 해결책은 안 된다..."
◆ 김덕기 > 그럼 결과적으로 강제징용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지소미아 합의도 깨지는 건가요?
◇ 홍제표 > 이번 합의 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강제징용은 아예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일본이 그런 프레임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그건 별개의 문제다'라며 분리 대응해야 합니다. 실제로 일본은 수출규제 조치를 시행하면서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대항(보복) 조치'가 아니라 안보상의 이유라고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습니다. 이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차피 미국 때문에 안 될 것이라는 패배주의를 이겨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미국이 강하게 압박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내 여론까지 등질 정도는 아닙니다. 일본의 분열전략에 이용당하지 않고 원칙을 지켜나가면 분명 승산이 있을 것입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일본이 수출규제를 풀지 않으면 지소미아를 종료해야 한다는 답변이 과반수(53%)를 차지한 것은 우리 국민들의 혜안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