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김기현 전 울산시장의 비위가 담긴 첩보 문건을 2017년 말 백원우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산하에서 만든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해당 문건의 생성자로 경찰이 강한 의심을 받고 있다.
민정수석실의 첩보 수집 대상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고위 공직자로, 김 전 시장과 같은 선출직 공무원은 해당되지 않는다. 감찰 대상 밖 인물의 첩보 수집에 경찰이 동원됐을 경우 민간인 사찰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29일 CBS 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백 전 비서관은 2017년 9~10월쯤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에게 김 전 시장의 비위 첩보 문건을 전달했다. 한 두 장짜리가 아니라 묵직하게 느낄 정도로 분량이 많았다고 한다.
박 비서관은 해당 문건을 본인 산하 특별감찰반에 파견된 경찰 편에 맡겨 경찰청 특수수사과(현 중대범죄수사과)로 보냈다. 문건은 행정대봉투라고 부르는 노란 서류 봉투에 밀봉된 상태였다.
문건을 전달한 특감반 경찰은 본인이 첩보 보고서를 작성한 건 아니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 관계자는 "우리는 원본을 받아서 판단만 했을 뿐 첩보가 누가 어떻게 작성한 건지는 모른다"고 설명했다.
현재 해당 첩보를 넘겨받은 검찰은 양식을 봤을 때 경찰이 작성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 첩보 생산을 주도한 인물로 당시 백 비서관 밑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경찰총장' 윤규근 총경(현 구속상태)일 것이라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다만 사정당국 한 관계자는 "분량이 꽤 많다는 점에서 만약 했더라도 데스크(반장) 역할을 한 윤 총경이 직접 보고서를 작성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감반 파견 경찰 또는 외부 경찰을 첩보 생산 과정에 동원했을 여지가 있다는 취지다.
당시 특감반에 지방 토착 세력의 비위를 적극적으로 캐라는 주문이 들어왔다는 정황도 이를 뒷받침한다.
한 사정당국 관계자는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특감반에서 지방 토착 세력의 비위를 집중적으로 파헤쳐야 한다는 기류가 있었다"며 "이같은 분위기 속에서 큰 문제의식 없이 김 전 시장의 비위를 수집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수사기관 안팎에서는 김 전 시장 비위 첩보 수집에 경찰 정보라인뿐만 아니라 수사라인도 동원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의혹이 사실일 경우 경찰이 민간인을 불법 사찰해가면서 선거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비판은 불가피하다.
백 전 비서관은 전날 입장문에서 "(첩보 전달은) 민정수석실 내 업무분장에 따라 시스템대로 분류한 단순한 행정적 처리일 뿐"이라며 "전 울산시장 관련 제보를 박형철 비서관에게 전달했다는 보도에 대해 특별히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내용의 첩보가 집중되고 또 외부로 이첩된다"고 밝혔다.
자신이 박 비서관에게 김기현 관련 첩보를 넘겼는지 여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첩보 출처 대해서도 "민정수석실에는 각종 첩보 및 우편 등으로 접수되는 수많은 제보가 집중된다"며 다소 원론적으로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으로 황운하 현 대전경찰청장이 고발된 것은 벌써 1년 전 일"이라며 "어떤 수사나 조사도 하지 않았던 사안을 지금 (검찰이) 이 시점에 꺼내들고 엉뚱한 사람들을 겨냥하는 것이 정치적인 의도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한편 윤규근 총경은 전직 사업가에게 주식을 받고 수사를 무마해준 혐의 등으로 지난달 29일 구속 기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