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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구·경기 일정' KOVO·구단에 떠넘긴 배구협회의 폭탄

농구

    '경기구·경기 일정' KOVO·구단에 떠넘긴 배구협회의 폭탄

    여론 의식해 뒤늦게 수습 나선 배구협회
    대륙간 예선전 이후 시간 충분 했지만 "당시에는 생각도 못했다"
    공문도 없는 제안…안 되면 말고 식

     

    대한배구협회가 떠넘긴 폭탄에 V-리그가 혼란에 빠졌다. 필요에 의한 제안이 아니다. 단순히 여론을 의식한 뒤늦은 수습으로 인해 한국배구연맹(KOVO)과 13개 구단을 남녀 대표팀 2020 도쿄올림픽 진출의 걸림돌로 비쳐지게 전락시켰다.

    최근 V-리그 최고의 화두는 경기구 교체와 경기 일정 조정이다. 배구협회는 KOVO에 V-리그 3라운드부터 도쿄올림픽 경기구인 '미카사' 제품을 사용해달라고 요청했다. 대표팀에 합류할 선수들이 미리 공에 대한 감각을 익힐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을 더했다. 아울러 경기 일정을 조정해 선수들이 더 빨리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도 덧붙였다.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최우선 과제인 올림픽 본선 진출을 위해서는 경기구 교체와 경기 일정 조정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쏟아냈다. 그리고 KOVO와 구단은 빨리 배구협회가 제시한 내용을 이행하라는 목소리도 적잖았다.

    그러나 배구협회의 제안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배구협회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뒤늦게 여론을 의식한 보여주기식 행동에 나선 것이다.

    ◇ 경기구 교체? 알아서 고민하고 답만 달라는 배구협회의 태도

    배구협회의 첫 번째 요구는 경기구 교체다. 현재 V-리그는 스포츠용품 업체 '스타'에서 제작한 공을 경기구로 사용하고 있다. 배구협회는 이를 미카사 제품으로 바꿔달라 요구했다. 그것도 2라운드가 한창인 시점에 3라운드부터 도입 시켜 달라는 요구였다.

    난감한 제안이었지만 KOVO는 각 구단에 경기구 교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배구협회는 이런 중요한 사안을 제안하면서도 공문 하나 보내지 않는 안일함을 보였다. 그러나 KOVO와 구단은 대의를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은 시간, 기존 스폰서와의 관계, 공 수급 문제, 대표팀에 합류하지 않는 선수들의 경기력 등의 문제로 인해 의견은 통일되지 않았다.

    배구협회는 문제를 던지고도 해결책을 같이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태평하게 바라보다 경기구 교체가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자 스스로 철회하는 촌극을 벌였다.

    사실 경기구 문제도 일찍 움직였다면 충분히 해결 가능했던 부분이다.

    배구협회 고위 관계자는 지난 4월 국제배구연맹(FIVB) 총회에 참석해 도쿄올림픽에 사용될 새 경기구에 관한 내용을 접했다. KOVO가 V-리그에서 사용할 경기구 변경을 고민한 것은 5월~6월경이다. 배구협회가 접한 내용을 KOVO에 전달하거나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제안했다면 지금과 같은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배구협회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현장에서 본 내용을 KOVO에 알려주지도 않았다. 단지 새로운 공을 만들고 있다에서 사고가 멈춘 배구협회다.

     

    ◇ 생각도 못 한 일정 변경…알지도 못 한 라이벌 일정

    경기 일정 변경 역시 배구협회의 안일한 행정이 만든 고민이다.

    남녀 대표팀은 지난 8월 네덜란드와 러시아에서 올림픽 본선행 티켓이 걸린 대륙간 예선전을 치렀다. 남자 대표팀은 3패로 좌절, 여자 대표팀은 3차전에서 러시아에 통한의 역전패를 당하며 아쉽게 본선 직행이 무산됐다.

    KOVO는 지난 7월 V-리그 일정을 발표하면서 대륙간 예선전 결과에 따라 일정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변경 가능성을 열어뒀다. 하지만 배구협회는 V-리그 개막까지 일정에 대한 협의를 진행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이때라도 배구협회가 일정 변경을 제안했다면 지금과 다른 일정으로 V-리그가 진행됐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배구협회 관계자는 "당시에는 일정 변경에 대해 생각도 못 했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여자 대표팀 올림픽 진출의 걸림돌인 태국이 아시아예선을 대비해 자국 리그 일정을 미루는 것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배구협회다. 남자 대표팀의 대륙별 예선 조추첨도 아시아배구연맹(AVC)에서 일정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핑계로 조 편성이 완료된 이후 이같은 사실을 알아차렸다.

    배구협회는 경기 일정 변경도 경기구와 마찬가지로 공문 없이 KOVO에 요청했다. 남녀 대표팀의 당초 소집일은 12월 22일이다. 배구협회는 이보다 1주일 빨리 합류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제안했다.

    남자부 7개 구단은 지난달 29일 KOVO 대회의실에 모여 배구협회의 제안에 대해 논의했고 그 결과 기존안 그대로 차출하는 것으로 뜻을 모았다. 한 구단 관계자는 "대표 선수들의 조기 소집이 이뤄진다면 각 팀 간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진다"라며 "일정을 정할 때 가만히 있던 배구협회가 왜 이제서야 느닷없이 일정 변경을 요구했는지 참 답답하다"라고 꼬집었다.

    여자부는 2일 회의를 거쳐 일정 변경을 결정한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의 배구협회의 무능함이 더 돋보이는 대목이 있다.

    배구협회 고위 관계자는 KOVO 관계자와 일정 변경에 관한 대화를 나누면서 언론인 행색을 하고 다니는 사람의 말을 빌어 "여자부는 다 찬성한다더라. OOO이 그랬다"라고 전했다. 그러니 조기 소집을 해달라는 취지의 발언이었다. 배구협회가 직접 움직이지 않고 귀동냥으로 들은 내용을 KOVO가 과연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여자부 전원 찬성 내용은 언론 보도로도 전해졌다. 그러나 이 내용에는 어폐가 있다. 모두 찬성하지 않았다. 모 구단은 강력하게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해당 구단 관계자는 "전화로 'A, B, C 구단은 찬성한다. 대의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냐. 구단은 찬성하나?'라는 식으로 접근하니 답답했다"라고 토로했다.

    다른 구단 관계자 역시 "찬반을 묻는 것이 아니라 설득하려는 전화 같았다"라며 "(조기 소집에 대해) 잘 모르겠다고 하면 설명을 들어야 했고 어쩔 수 없이 찬성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로 몰고 갔다"라고 전했다.

    반대 의견을 피력한 관계자는 아무런 계획 없이 조기 소집만 외치는 배구협회의 막무가내 행정도 꼬집었다.

    그는 "선수들의 휴식이 필요하다면 조기 소집 기간 동안 구단에서 경기에 내보내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배구협회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몸 관리를 해주고 좋은 음식까지 챙겨줄 수 있다. 배구협회가 조기 소집 기간 어떤 식으로 선수를 운영할지 알려준다면 모를까 구단에 그런 부분에 대한 설명도 없이 단순히 선수만 빨리 보내 달라고 요구한다"라며 "정말 필요하다면 라바리니 감독의 조기 귀국도 요구할 수 있나? 배구협회는 절대 못 한다. 선수들 관리는 협회보다 구단이 더 잘할 수 있다. 지금까지 선수 차출에도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일정 변경을 협의할 수 있었던 시간을 놓치고선 이제 와서 구단들이 조기 소집에 인색한 것처럼 비쳐지게 만드는 건 옳지 않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여자 대표팀의 사령탑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은 12월 28일에야 한국에 도착한다. 12월 26일까지 현재 이끌고 있는 부스토 아리시치오(이탈리아)의 경기가 있어 이를 마쳐야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다. 배구협회는 라바리니 감독의 조기 귀국 여부에 대해 질의하자 "절대 불가능하다"라고 못 박았다.

    상황이 이렇지만 여자부는 회의를 통해 조기 소집 찬성으로 의견을 모을 것으로 보인다. 찬성 의견을 내지 않으면 팬들에게 나쁜 구단으로 낙인찍힐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미 배구협회가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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