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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네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이태원' 개봉의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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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네 하고 싶은 대로 해 봐"… '이태원' 개봉의 출발

    [노컷 인터뷰] 다큐멘터리 '이태원' 강유가람 감독&김혜정 프로듀서 ①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KT&G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다큐멘터리 '이태원'의 강유가람 감독과 김혜정 PD를 만났다. (사진=황진환 기자)

     

    다큐멘터리 '이태원'(감독 강유가람)은 2014년에 주로 촬영됐고, 2016년 제8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시작으로 올해 독립영화 반짝반짝전까지 10번 넘게 각종 영화제에 초청됐다. 그러나 강유가람 감독이 이태원이라는 동네를 마음에 담았던 시기는 그보다 훨씬 앞섰다. 기지가 있는, 특색 있는 동네 용산을 여성주의적으로 해석해 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2010년이었다. 처음 구상하고 나서 개봉하기까지 거의 10년이 걸린 셈이다.

    다큐멘터리는 극영화가 아닌 만큼, '찍히는' 이들과의 관계 설정이 중요하다. 촬영 허락을 받는 것도, 그것을 화면에 펼쳐내는 것도, 더 널리 전파할 수 있게 극장 개봉과 이후 서비스를 고려하는 것까지 모두 세심히 신경 써야 했다. '이태원'의 정식 개봉을 원하는 반응이 있었지만, 실은 주인공 삼숙-나키-영화의 동의를 얻지 못해 바로 추진할 순 없었다.

    강유가람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은 다큐멘터리가 완성된 후에도 삼숙-나키-영화와 맺은 인연을 이어갔다. 그 덕분일까. 촬영, 제작이라는 목적만 이루고 떠날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올해 초 이런 말을 들었다. "느네 하고 싶은 대로 해 봐라. 잘 돼야지~". 마음의 부담을 조금은 덜고 개봉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침 배급사 KT&G 상상마당 시네마가 손을 내밀었고, '이태원'은 지난 5일 무사히 개봉할 수 있었다.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KT&G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강유가람 감독과 김혜정 프로듀서(이하 PD)를 만났다. 문화기획집단 '영희야놀자'에서 만난 두 사람에게 '이태원'이라는 작업을 하게 된 계기에서부터, 촬영 때의 경험, 개봉을 코앞에 둔 소감 등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 여러 아이템 중 가장 눈길이 갔던 '이태원'

    강유가람 감독은 용산참사가 일어나고 나서 1년 정도 지났을 때 용산을 찍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기지가 있는 군사도시 용산을 여성주의적으로 해석해 보고 싶었다. 팀을 꾸려 워크샵을 열었다. 초반 계획은 남일당부터 후커힐까지 직접 걸으면서 로드무비를 하나 찍어볼 요량이었다. 당장 촬영을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용산을 계속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김혜정 PD가 '이태원' 제안을 받은 건 2013년이었다. 당시 김 PD는 다큐멘터리 '왕자가 된 소녀들'을 개봉했을 때였다. '왕자가 된 소녀들'은 상고시대를 배경으로 남장여자들이 펼치는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 '여성국극'을 다룬 작품이다. 두 사람은 이 작품으로 협업했다. 강유가람 감독의 차기작 아이템은 여럿 있었으나, 김 PD는 '이태원'이 가장 끌렸다고 한다.

    "사실 '이태원'이 제일 눈길이 갔어요. '왕자가 된 소녀들'에서도 나이 드신 여성분들의 이야기를 다루었잖아요. 그분들에게 관심이 많이 가더라고요. 그분들의 삶이나 에너지가 되게 매력적으로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프로젝트를 적극 밀었어요, 저희 팀은. '이태원' 관해서는 다 좋다고요. (웃음) 그때 아이템 중에 '페미니즘, 나의 페미니즘' 이런 주제는 다 말렸는데 그게 이번에 나온 '우리는 매일매일'이죠. (웃음)" _ 김혜정 PD

    '이태원'은 30년이 넘도록 격동의 이태원에서 살아온 삼숙, 나키, 영화 세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로, 이들의 기억과 일상을 통해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다층적으로 보여준다. 그동안 영화제에서 상영된 버전과 달리 세 여성에게 초점이 맞춰졌다. 그건 영화 '외적인' 변화 탓이었다.

    지난 5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이태원' (사진=KT&G 상상마당 제공)

     

    강유가람 감독은 "우사단길에 와 있던 청년들은 오랫동안 거주한 분들이 아니어서 이방인 같은 느낌이 있었다. 저도 스쳐 지나가는 인물이고. 그래서 여성들과 대비되는 그분들의 모습으로 '이질성'을 보여주고 싶었고, 거기에 포인트를 많이 줬다. 이번에 편집하면서 느낀 건 젠트리피케이션이 너무 빠르다는 거였다. 청년들이 (어느 곳에) 정주할 만큼 한국 사회가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더라"라고 말했다.

    처음 우사단길에 터전을 마련했을 때와 그로부터 2년 후의 월세 차이가 엄청났다. 그러다 보니 청년들은 버틸 도리가 없었다.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서 다큐멘터리 안의 인물 상황이 크게 바뀌다 보니, 그걸 그대로 담기에는 조심스러웠다. 강유가람 감독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더 넣고 보완"해 지금의 '이태원'이 나왔다고 밝혔다.

    김혜정 PD는 개봉 버전이 "이야기가 좀 더 집중된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유가람 감독은) 공간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 그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는가에 관심이 많다. '모래'(2011)도 그랬고 '이태원'(2019)도 그랬고. 현재 변화하는 것과, 거기 오래 산 분들의 이야기를 교차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을 것 같은데, 그것도 되게 좋은 시도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오래 산 분들 삶의 맥락과 젊은 분들이 겪는 젠트리피케이션이 같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임에도, 결이 달라서 그걸 같이 읽기에는 이야기가 좀 흩어진다는 반응도 있었다. 요번에는 한쪽으로 집중하기 때문에, 관객 입장으로 따라가기에는 더 좋아진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 삼숙-나키-영화를 만나다

    삼숙은 30년 넘게 '그랜드올아프리'라는 클럽을 운영한 이태원의 터줏대감이고, 영화는 10대 후반부터 이태원을 들락거린 마당발이다. 웨이트리스로 이태원에서 일을 시작한 나키는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낯선 이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자주 찾는 수밖에 없었다. 용산에 사무실이 있었는데 그조차 멀게 느껴져서 아예 이태원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방문해서 무슨 일 있었는지를 물었는데, 재밌는 건 제작진이 찾아갔을 때는 이미 모든 상황이 끝나 있었고 그게 반복됐다는 점이다.

    강유가람 감독은 "카메라 들고 가기도 전에 일이 다 끝나 있더라. '무슨 일 있으면 불러주세요' 했는데…"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아무튼 그렇게 찾아뵌 것들이 조금씩 쌓여서 된 것 같다. 영화제까지는 그렇게 했는데 이후에도 계속 찾아뵈니 마음을 열어주셨고, 그래서 개봉이 가능해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김 PD 역시 "영화제는 제한적으로 공개되는 거라서 거기까진 양해를 구하고 촬영도 잘 마쳤는데, 더 이상 널리 퍼지는 걸 사실 (주인공들이) 원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만들고 나서는 개봉까지는 기대하지 못한 게 있다. 그 뒤에도 꾸준히 찾아뵀더니 '아, 얘들은 영화 찍고 그만두는 애들이 아닌가 보다' 생각하셨는지 올해 초에 '느네 하고 싶은 대로 해 봐라. 잘돼야지~' 하셨다"라며 웃었다.

    주인공들이 힘을 실어주어서 본격적으로 개봉을 위한 준비 작업에 돌입했다. 하지만 만만치는 않았다. 강유가람 감독은 "개봉 지원을 받으려고 했는데 쉽지는 않더라. 그런 와중에 상상마당 쪽에서 먼저 제안해주셔서 되게 운 좋게 감사한 기회를 얻은 것 같다"라고 부연했다.

    '이태원'은 30년이 넘도록 격동의 이태원에서 살아온 삼숙, 나키, 영화 세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위쪽부터 삼숙, 나키, 영화 (사진=KT&G 상상마당 제공)

     

    ◇ 유머러스하고, 외롭고, 잔정이 많은

    곁에서 바라본 삼숙, 나키, 영화는 어떤 사람이었을지 궁금했다. 혹시 다큐멘터리에 다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강유가람 감독과 김혜정 PD는 그동안 만나며 정과 신뢰를 쌓은 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어느 때보다 활기차게 했다.

    "일단 나키 님은 이제 굉장히 유머러스하시고 굉장히 낙관적인 분이시고 성격이 화끈하시기도 하세요. 농담을 되게 잘하시고요. 제가 이걸 영화에서 많이 살리고 싶었는데 못 살려서 아쉬워요. 이태원 화장실에 가서는 '이게 내 집 화장실이랑 똑같아~' 하는 식으로 가벼운 농담을 굉장히 잘하시는데 삶을 대하는 태도가 항상 긍정적이세요. 제2의 인생, 제3의 인생을 산다고 하실 정도로 강인하고 부지런하셔서 저한테도 귀감이 되는 부분이 되게 많았어요. 삼숙 님은 워낙 화통하시고 카리스마 있으시고 지역에서는 대통령 같은 사람이시죠. (웃음) '대장부다!' 할 정도로 그 지역에서는 되게 유명하신 분이고요. 영화 님은 삶을 대하는 쿨한 태도가 되게 강렬하게 남아 있는데요. 또 잔정이 제일 많은 사람도 영화 언니예요. 제일 전화도 많이 하고 안부도 많이 물어봐 주시고. 저희가 뭘 사가면 꼭 뭘 주려고 하시고." _ 강유가람 감독

    "기본적으로 저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는데요. 삼숙 사장님은 한편으로는 되게 외로운 느낌이었어요. 나이가 제일 많은데도 여전히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요. 가족들이 많긴 한데 형제자매들을 본인이 건사해야 하는 사람이지, 본인을 챙겨주고 위로해 줄 사람은 아니었어요. 되게 본인 얘기를 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한데 본인을 챙겨주거나 인정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대한 결핍감을 느낀 것 같았어요.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얘기를 많이 해 주셨어요." _ 김혜정 PD

    영화 첫머리에 나오는 삼숙의 영상은 들어줄 사람이 없는 자신의 처지를 빗대 '유서'라고 하면서 직접 찍은 결과물이라고.

    "나키 언니는 어떻게 보면 세 분 중에 가장 단단해 보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잘 사실 것 같은 분. 아무리 가진 게 없어도 어떤 식으로든 먹고살 걸 잘 찾아내시고 그걸 열심히 또 하세요. 그러는 와중에 낙천적으로 해석하면서 본인 삶을 잘 꾸리시는 분이라서 존경스러웠어요. 영화 님은 되게 인간적인 매력이 있어요. 정이 있고 의리도 있고요. 지금은 몸이 아프고 집에 있으셔서 거의 밖 활동을 안 하는 것 같은데 되게 마당발이신 것 같더라고요." _ 김혜정 PD

    ◇ 날것 그대로를 담다

    '이태원'은 각자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세 여성에게 카메라를 대고, 그들이 직접 자기 이야기를 하는 구조다. 그동안 겪었던 일을 토로하며 한껏 목소리를 높이기도 하고, 흥분해서 말이 빨라지기도 하고, 뻔뻔한 누군가를 비난하기도 한다. 당연히 비속어와 같은 정제되지 않은 표현도 섞여 나온다.

    관객들이 좀 더 호감을 보일 수 있도록 다듬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대로 둔 이유가 있냐는 우문을 던졌다. 그랬더니 "날것 그대로가 더 매력적이지 않나?"라는 김혜정 PD의 답이 돌아왔다. 강유가람 감독은 "저희가 다듬으려고 해도 다듬어지지 않는 매력이 있다"라며 웃었다.

    '이태원' 강유가람 감독 (사진=황진환 기자)

     

    "삼숙 사장님 같은 경우에는 한국 남자에 대한 불신 이런 걸 드러내시잖아요. 그게 인생에 걸친 경험과 지혜에서 나온 건데요. 영화에는 담지 못했지만 예전에 이태원에 오셨을 때 한국 조폭들이 클럽에서 스트립쇼 같은 걸 하라고 그랬대요. 그냥 술만 팔고 안 하고 싶다고 하니까 조폭이 와서 재떨이를 던져서 같이 일하던 여동생 머리에 맞아서 이마에 피가 나고 그랬다고… 삼숙 사장님은 너무 열 받아서 도끼 들고 뛰어나갔다고 하고요. 그만큼 한국 남성들과의 악연이 있었던 거죠. 외상값 떼어먹는 사람도 있었고, 진상을 피웠다고 해요. 미군들은 조금 먹긴 해도 외상은 안 했다고." _ 강유가람 감독

    "이태원 오기 전에 인천, 명동에서 생선 장사하시다가 물장사가 잘 된다고 해서 문산에 다방을 열었는데 그때도 한국 사람, 미국 사람 다 드나들었대요. 근데 한국 사람들이 커피값을 절대 안 내고 항상 여자를 옆에 끼려고 해서 그게 꼴 보기가 싫었다고 하세요. 그때부터 아예 미국인만 드나드는 면세 클럽을 운영하신 거죠." _ 김혜정 PD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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