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심재철 신임 원내대표가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당 의원총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자유한국당 비박계 심재철 의원(5선)이 '이기는 협상'과 '황심(黃心‧황교안 대표 지지)' 선긋기를 전면에 내걸고 9일 신임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강석호(3선)‧유기준(4선)‧김선동(재선)‧심재철(5선) 등 4파전으로 진행된 이날 원내대표 경선은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2차 결선투표까지 진행했다.
친박계 핵심으로 꼽히는 김재원 의원(3선)을 정책위의장 러닝메이트로 확정한 심 원내대표는 1‧2차 투표에서 줄곧 선두를 달리며 사실상 대세론을 유지했다.
1차 투표에서 39표를 얻은 심 원내대표는 2차 결선투표에서는 52표를 얻었다. 2차 결선투표는 1차에서 같은 득표를 기록한 강석호‧김선동(각 28표) 후보와 3파전을 펼쳤지만, 과반에 육박한 표를 얻은 셈이다.
심 원내대표의 당선은 대여(對與) 협상력과 '황교안 견제론'을 어필한 것이 주효했다는 게 중론이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대치 국면에서 대여 협상력을 고려하면 산전수전을 다 겪은 심 원내대표가 적합하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최근 나경원 원내대표의 불신임 사태를 통해 드러난 황 대표의 전횡에 대한 견제 심리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기는 투쟁" 대여 협상력 강조 심 원내대표는 당내 이같은 여론을 의식한 듯 이날 정견발표에서도 다선 의원으로서 쌓은 경험이 협상에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장 패스트트랙 싸움이 급선무이고, 예산안 문제도 있다"며 "투쟁하되 협상을 하게 되면 이기는 협상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랑 김재원 의원 모두 원내수석부대표를 지낸 적이 있어 민주당과 협상경험도 적지 않다"며 "환상의 콤비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현재 한국당을 제외한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당권파,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등 여야 4+1 협의체는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공수처 신설안과 선거법 개편안 등을 논의 중이다. 이들은 한국당이 협상장에 들어오지 않을 경우,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하겠다며 한국당을 압박 중이다.
이에 심 의원은 "민주당이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현실 앞에선 협상을 외면할 수만은 없다"면서도 "협상이 잘 안되고 공수처법이 원래 괴물 모습 그대로 라면 차라리 (한국당을) 밟고 넘어가라고 하겠다"고 강온 전략을 꺼내든 셈이다.
◇"황심 없다, 황 대표에게 직언할 것"…견제론 시사'나경원 불신임' 사태로 황 대표 친정 체제 구축이 도마에 오른 가운데, '황심'엔 선을 그으며 황 대표 견제론에 힘을 실었다. 전날까지 김선동 의원이 황 대표의 지지를 받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있었지만, 득실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심 원내대표는 당 대표에게 "직언을 하겠다"며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심 원내대표는 " 제가 당선된다면 계파 논쟁은 더 이상 발을 못 붙일 것"이라며 "이번 경선과정에서 이른바 황심이 언급됐지만, 황심은 없고 황심은 절대 중립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황심을 거론하며 표를 구하는 것은 당을 분열시키고 망치는 행동"이라며 "원내대표가 되면 여러 의원들의 말씀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황 대표에게 전달하고, 직언도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총선을 앞두고 당 총선기획단이 50% 이상 물갈이를 천명한 것을 두고 인적쇄신에 결이 다른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황 대표가 추진 중인 보수통합과 관련해서도 신중론을 폈다.
그는 "쇄신도 결국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것이지 쇄신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라며 "새로운 인물이라도 그 사람이 각 지역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수도권에서는 보수가 갈라져 몇 퍼센트만 가져가도 위협이 되기에 보수대통합은 당연히 해야 한다"면서도 "무조건 합친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것 잘 알고 있고, 현장과 맞아 떨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재원 "적폐수사 고통, 욕실에 노끈 두고"…지원사격 주효
정책위의장 후보로 나선 김재원 의원이 정견발표에서 현 정권이 들어선 이후 검찰 수사를 받는 과정의 심정을 구체적으로 토로한 점도 경선 승리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의장은 정견발표에서 "2년 전 이맘 때, 딸이 수능시험을 치는 날 저는 서울중앙지검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며 "이후 수없이 이어진 수사와 재판에서 영혼이 탈탈 털리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노끈을 욕실에 넣어두고 언제든 죽을 땐 망설이지 않으려고 했다"며 "그때 한 식당에서 '내가 내 편이 돼주지 않는데 누가 내 편이 되어 주겠냐'는 낙서를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김 의장은 "저는 제 자신을 너무 학대하고 있었다"며 "요즘 우리당이 쇄신과 반성을 말하는데 우리가 우리 편을 안 들고 회초리만 드니까 서로에게 매질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쇄신을 하더라도 우리 스스로를 존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과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 등 요직을 역임한 친박 핵심인 김 의장이 감성적인 연설로 의원들의 표심을 자극했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