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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서해평화수역 달리는 바다 위 '황금마차'

    연평도∼우도 부식수송선 '한바다호'…매년 100여차례 수송
    좁은 선착장 때문에 응급환자·기상악화시 해결사 역할 '톡톡'

    해병대와 해군 장병들이 연평도와 우도를 오가는 수송선 한바다호에 부식을 싣는 모습. (사진=주영민 기자)

     

    "지난 주에는 날씨가 안 좋아서 못 들어갔어. 오늘도 못 들어가면 열흘 이상 부식과 바깥 소식을 못 전하는거지. 다들 목 빠지게 이 배만 기다리고 있을거야."

    강한 바람으로 선박 출항이 쉽지 않았던 지난 10일 아침. 인천 옹진군 연평도 선착장에서는 해군‧해병대 장병들이 1톤 트럭을 가득 채운 짐들을 선박에 싣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우도경비대에 보내는 부식과 위문편지, 소포 등을 보내기 위해서다.

    우도(隅島)는 서해5도 중 유일하게 민간인이 살지 않는 곳이다. 크기는 0.4㎢, 둘레는 2.3㎞에 불과해 섬 전체를 걸어서 둘러봐도 1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는다. 고립된 곳이니 이곳에서의 군복무는 흡사 유배생활과 비교될 만하다.

    연평도에는 1주일 2번 연평도와 우도를 오가며 부식과 장병을 싣고 나르는 민간선박이 있다. 우도를 출‧입항하는 민간선박은 이 배가 유일하다. 바로 '한바다호'다.

    우도경비대는 한바다호를 통해서만 부식과 우편물을 공급받는다. 우도의 장병들과 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인 한바다호는 장병들에게 '황금마차'인 셈이다.

    최전방 부대나 해안경계 소초처럼 장병이 적거나 부지,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PX(군대 내 식품이나 일용품 등을 파는 면세된 가격으로 파는 매점)가 없는 곳을 순회하는 이동식 PX차량을 황금마차라고 부른다. 장병들이 먹고 싶은 간식과 생필품 등을 잔뜩 싣고 오는 반가운 차라는 의미다.

    우도에 군이 주둔한건 6·25전쟁이 한창 진행됐던 1952년부터다. 당시에는 해병대 소대가 근무했다. 이후 배치 병력이 늘면서 해군과 해병대가 같이 복무하고 규모도 중대로 커졌다.

    우도는 중요한 군사요충지 중 하나다. 우도에서 가장 가까운 북한의 섬은 함박도다. 이곳은 조수간만의 차이가 커 썰물 때는 우도에서 함박도 사이가 갯벌로 연결된다. 지난 2011년에는 북한 주민 9명이 우도 해상을 통해 남한으로 귀순한 사례가 있다.

    또 북한군이 수도권 서측에서 침투하려면 우도를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즉 우도에서 적의 침투를 거의 다 감지할 수 있다. 서해5도 중 섬 크기는 가장 작지만 전략적으로 백령도와 연평도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다. 우도 인근에서는 일체의 어업·관광‧사진 촬영 등이 허용되지 않는다.

    장병들 사이에서도 외부와 철저하게 단절된 우도는 두려운 곳이다. 1970년대에는 우도에 배치되는 장병들이 고립된 복무에 대한 부담으로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한반도기와 태극기를 달고 항해하는 한바다호 모습. (사진 제공=박태원 선장)

     

    한바다호는 2017년부터 연평도와 우도를 오갔다. 이 배의 선장은 박태원(59) 전 연평도 어촌계장이다.

    박태원 선장이 우도와 인연은 2017년 해병대 연평부대가 당시 어촌계장이었던 박 선장을 찾아와 "부식운반 선박이 필요한 데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다른 선박을 소개하려 했지만 마땅한 배를 찾지 못했다.

    결국 해병대는 연평도 인근 바다를 가장 잘 이해하고 군부대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던 박 선장이 직접 부식운반선을 운영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이를 받아들이면서 지금까지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박 선장의 아버지는 실향민이었다. 황해도에 살던 아버지가 6‧25 전쟁 때 연평도로 피난하면서 터를 잡았던 터라 군의 제안을 선뜻 받아드릴 수 있었다. 남북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명감도 그의 결정에 한몫했다. 그가 '한반도기'를 달고 한바다호를 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초창기에는 군작전해역을 오간다는 부담이 컸지만 1년에 100여차례 가까이 연평도와 우도를 오가면서 많은 사연들이 쌓였다.

    박 선장은 "우도에서는 직접 면회가 불가하기 때문에 가족들이 장병 면회를 하려면 연평도까지 와야 한다"며 "가족을 만나기 전 설렘과 면회를 마친 뒤 아쉽게 복귀하는 장병의 얼굴을 보면 가슴 한 곳에서 찡한 기운이 올라오곤 했다"고 말했다.

    어려움도 많았다. 한강 하구와 가까워 민물의 특징이 있는 우도 인근 해변은 겨울이 되면 바닷물이 꽁꽁 언다. 낚싯배였던 한바다호가 얼음을 깨고 항해하는 건 침몰 위험마저 우려되는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짙은 안개가 낀 날의 출항도 마찬가지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어업용 레이더에 의지해 항해할 때면 모든 신경이 곤두선다.

    박 선장은 3년 가까이 장병들을 만나면서 보람이 더 컸다고 설명했다. 연평도 선착장과 우도 선착장의 규모가 작아 경비함정이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하는 상황에서 긴급상황이 벌어지면 한바다호가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올해 창설 70주년을 맞은 해병대의 축하 케이크를 우도에 배달한 것도, 훈련 중 중상을 입어 사경을 헤매는 장병을 직접 이송한 배도 한바다호였다. 그가 그동안 실어 나른 게 단순히 먹거리와 우편물이 아니었다.

    한바다호가 우도에 도착할 때가 되면 선착장에 우도경비대의 모든 장병이 일렬로 대기한다. 1톤 트럭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은 수송물들을 빨리 내리기 위한 이유도 있지만 박 선장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한 일종의 의례이기도 하다.

    해병대 관계자는 "한바다호는 우도경비대와 연평도 장병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라며 "마땅한 지원도 없는 열악한 상황에서 장병들을 위해 헌신하는 박 선장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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