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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의 '비창' 1악장이 끝났을 때,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담백한 슬픔이라도 느껴졌어야 했는데, 음악은 오히려 포근했다. 이탈리아 출신 지휘자 파비오 루이지가 직조하는 사운드 안에는 '슬픔의 뼈대'가 없었다.
지난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루이지가 객원 지휘하는 KBS교향악단은 러시아 음악으로 관객들을 맞이했다. 이들은 글린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6번 '비창'을 잇달아 선보였다.
기대와는 달리 첫 연주부터 삐걱거렸다.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은 처음부터 끌까지 질주하는 곡이다. 특히 현의 합이 상당히 중요한 곡인데, 합이 다소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을 줬다.
이날의 하이라이트인 '비창'은 색깔이 불분명했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웠다. 물론 객원 지휘이기 때문에 연습량이 부족해 세밀한 부분은 틀리거나 맞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추구하는 음악의 방향성, 즉 '디렉션'을 찾기가 어려웠다는 게 최대 문제였다. 이는 '대가'인 루이지의 이력을 봤을 때, 이례적이라고 할 만했다.
그는 지난 2009년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이끌고 내한해 엄청난 연주력으로 청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독일 음악(슈트라우스 '영웅의 생애')을 지중해 빛깔로 채색했을 때, 얼마나 깊고, 화려해질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줬다. 지난해 KBS교향악단과 함께 연주한 브루크너 교향곡도 대단한 호평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번 내한 연주에서는 디렉션이 약하다 보니 음악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았다. 차이콥스키가 선사하는 러시아의 '황량한' 풍경은 음악이 진행될수록 밋밋해졌다. 현보다 목관이나 금관 등 관악기가 약한 부분도 아쉬운 대목이었다. 다만 3악장에서 현의 폭주는 귓가를 자극했다.
'비창'에 비해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은 색깔이 선명했다. 유망한 바이올리니스트인 김봄소리는 감정을 담아 열심히 연주했다. 전체적으로 감정의 과잉이 느껴졌지만, 상당히 고전적인 연주였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다만 좀 더 힘을 빼고, 간결하게 연주를 했다면 하는 점에서 그의 연주는 약간의 아쉬움도 남겼다.